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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Aug 27. 2020

풍요로운 인간들의 지구 멸망 보고서

서평 시리즈 #10 :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 본 리뷰는 김영사의 가제본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60년 전에 <침묵의 봄>이 있었다. DDT라 불리는 화학 살충제가 미국 전역에 뿌려지던 시대. 드넓은 대지를 살충제로 뒤덮기 위해 '붕' 소리를 대며 날아다니는 경비행기로 공중에 흩뿌려진 독극물은 우량한 생산량을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던 밭과 과수원뿐만 아니라 가정집의 상공에서 내려앉게 되었다. 강물은 기름이 떠다니며 햇빛을 영롱하게 반사해내듯 온통 얼룩덜룩 해졌다. 그리고 벌이 사라졌고, 새가 사라졌고, 건강한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중반 무렵부터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과학 기술의 '독성'을 폭로한 거의 첫 번째 투서였던 <침묵의 봄> 이후로 전 세계는 DDT의 사용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내 '지구의 날'이 만들어졌고 인간이 만들어낸 끔찍한 독약은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그로부터 60년이 흐른 이 시대의 <침묵의 봄>이다. 다만 저자인 <랩 걸>의 호프 자런이 태어났을 무렵 쓰였던 <침묵의 봄>과 달리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지구와 이 세대의 멸망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에도 식량의 증가라는 인간의 풍요를 위해 당대의 현란한 기술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이 파괴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벌이 사라져 꽃이 수분의 결과를 맺지 못하고 하늘과 강, 바다와 대륙 할 것 없이 그 속에 모여든 인간보다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생물들이 무참히 죽음을 맞이하는 참상을 경험했음에도 인간은 교훈을 얻지 못한 존재였다. 60여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인간은 그 수가 2배 증가했으며 에너지는 그 배로 사용하게 되었다. 맬서스의 말처럼 인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등장할 때, 식량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먹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 감춰진 수치들은 무자비하다. 고기를 1kg 얻기 위해 가축이 소비하는 곡물은 대략적으로 3kg에 달한다. 똑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식량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걸쳐 10억 이상이 하루 섭취해야 하는 칼로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 미국의 드넓은 목장에서 뛰노는 가축 소는 배가 부르지 않은 기억이 없다. 식량,  에너지, 지구의 변화 측면에서 인간은 복부 아래에 도톰한 지방층을 너도나도 가지게 될 만큼 풍요로워졌지만 지구는 말 그대로 달라졌다.

전 세계 음식물의 3분의 1 가량이 버려진다. 미국 내에서 쓰레기장으로 버려지는 음식물의 20%는 먹어도 아무 상관없는 것들이다.

노르웨이의 대서양 연안에서 양식되는 6kg의 연어들이 하루에 5번씩 만들어내는 배설물은 24개월 동안 5천 톤에 달한다. 하나의 양식장에는 3~4천 마리의 연어가 빼곡히 모여있고 노르웨이에는 이런 양식장이 수만 개에 이른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특별 관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더러운 배설물은 당연히 바다로 버려진다.  


미국인이 자동차로 주행하는 거리는 1년에 700억 킬로미터 정도이다. 중국인은 500억 킬로미터로 인구수에 비하면 적은 비중을 보태고 있다. 이 분야에서 새롭게 떠오른 강국인 인도는 1600억 킬로미터를 보태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동차들은 화석연료 중에서도 석유를 정제한 그 액체를 에너지원 삼아 움직인다. 아랍 국가를 황금의 국가로 만들어준 검은 액체는 불행히도 연소되면서 지구의 대기,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에게까지 완전히 무해한 결과물을 내놓지는 않는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식량과 에너지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풍요로워진 인간의 모습을 예전의 상황과 함께 보여준다. 곡식/가축/물고기/설탕의 화려한 변천사와 결국엔 그것이 모두 '버려지는' 상황을 조명한다. 에너지 소비가 변해온 상황은 어떨까? 전기/화석 연료 등을 통해 한없이 풍요로워진 인간과 한계선을 넘어버린 지구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해당 파트를 읽고 있자면 지구는 마치 어머니와 같아서 자녀들이 어머니의 젖과 피를 빨아먹으며 볼살을 두둑이 불리는 동안 당신은 쇠약해진 모습으로 병상에 누워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인간 세상의 어머니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인간 어머니는 젖을 물린다고 몸져눕지는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4부에서는 달라진 지구를 이야기한다. 언제쯤 멈출지 모르는 인간의 욕망 덕분에 기후 변화는 한계를 넘어섰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 이러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들어서 소위 '넌더리'가 날 지경이지만 여전히 인간들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 바싹 메마른 땅바닥 위에서 어느 어린이가 뱃가죽이 홀쭉하게 등에 붙은 채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물을 갈구하며 죽는 것이 일상이 되어야 멈추려나. 아니, 그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개개인으로 보면 참으로 현명한 인간일지 모르나 인간 군상으로 그 존재의 범위를 확장하는 순간 한껏 비이성적이고 근시안적인 '지구 상 최고의 생물'이 되어버리니까.


<침묵의 봄>은 화학 살충제를 기반으로 새, 토양, 풀벌레, 물고기, 나무들, 그리고 마침내는 인간 스스로까지 그 독극물을 흡입하고 고통받는 작은 존재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담아냈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작은 단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달라진 큰 존재들을 이야기한다. 곡물, 가축과 같은 식량 자원이 있었고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존재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을 등장시켰다. 마지막엔 그것들이 모두 발 딛고 있는 지구의 주름진 얼굴을 그려냈다. 읽는 내내 다시금 가슴이 섬찟해졌다. 어쩌면 나의 세대가, 우리의 세대가 지구에서 숨 쉬는 마지막 인류가 되지는 않을까. 지구는 태양이 팽창해 당신을 완전히 삼켜버릴 때까지 결코 부서지거나 증발하는 일은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인류는 이번의 50년이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


인간은 경이로운 존재이다. 적어도 우리 태양계 내에서 현재까지는 가장 발달한 지성을 이리저리 만지고 조물닥거려 더 적은 토지에서 더 많은 곡식을 만들어냈다. 50년 전에도 이내 고갈된다는 석유를 지금도 한계 체굴량이 50년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왜 동시에 달려가는 걸까. 파멸의 길로 로켓의 주엔진이 불을 뿜어내듯 빠르게 가속하는 걸까. 결국 호모 사피엔스의 '사피엔스'는 훗날 '어리석음'이라는 낱말로 그 뜻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 것일까.


한껏 풍요로운 이 시대의 이면에 놓인 위태한 인간의 미래를 보여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이다. 



*  리뷰는 김영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출처(reference)

1) https://unsplash.com/photos/li9JfUHQfOY?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qph7tJfcDy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Q1p7bh3SHj8?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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