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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04. 2020

남겨진 죽음의 흔적들

서평 시리즈 #23 : <시간이 멈춘 방> by 고지마 미유


* 본 리뷰는 더숲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본 리뷰는 사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며 유쾌하지 않은 표현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혼자 산지 5년쯤 됐어요.

대학교 신입생 때부터 군대 가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긴 했어도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지냈었는데

제대 후에는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원체 겁이 많아 조심조심 행동하지만 가끔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젖어있는 화장실 바닥을 밟고 슬리퍼가 미끄러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간신히 균형을 잡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심장과 간을 줍고선 드는 생각 '머리라도 부딪혔으면...'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게 된 고독사 문제는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하는 '고독사'. 사고나 지병 등으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안타까운 문제이지만 고독사의 대부분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사람들에게 발견됩니다.


사람의 몸이 부패하며 내뿜는 독특한 악취, 들끓는 벌레 등으로 인해 이웃집에서도 뭔가 변고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죽은 자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 참담한 모습으로 변한 상태입니다. 유족들과 연락이 닿아도 정신적인 충격 등으로 인해 그 공간을 원래의 공간으로 직접 돌려놓기는 쉽지 않죠.


<시간이 멈춘 방>은 한 사람의 생명이 마쳐진 후 남겨진 흔적들을 정리하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일본에서 5년째 유품 정리사로 활동 중인 '고지마 미유'씨는 '고독사'가 가지는 의미와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그 현장이 지니는 의미를 담아내면 모자이크 처리가 되며 밖으로 전달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미니어처 작업.


떠나간 사람의 개인적 특성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여러 사례의 공통점 등을 모아 유형별로 만들어 나간 미니어처가 벌써 9개입니다. 그중 8개를 <시간이 멈춘 방>에 담아 고독사의 사례, 죽음에 대한 그녀의 생각, 사회적 의미 등을 풀어냈습니다.


대개 이불이 쓰레기 더미로 에워싸여 있고 사람 하나가 앉고 누울 만큼의 공간만 빠끔히 비어 있다.

마치 그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라도 보여 주듯이 말이다.

(p.20~21)

고독사 현장을 방문하면 떠나간 사람의 대부분이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독신, 무직, 마권, 베팅에 실패한 도박 티켓... 그들은 스스로 사회와의 관계를 차단합니다. 끼니는 편의점 음식으로 대충 해결하고 이불 위에서만 생활한 듯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모든 생필품이 놓여 있습니다.

잔뜩 쌓인 술병도 놓인 물건 중 하나입니다. 그들이 지병 등으로 생을 쓸쓸히 마감하는 것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소중한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방 주인이 우울증에 걸린 경우다. 가족의 사고사, 이혼, 해고... 이처럼 누구에나 일어날 수 있는 갑작스런 상실이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이럴 때 누군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 주지 않으면 쓰레기 집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p.44)

가끔 TV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집안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 집. 고독사의 현장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독사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미니어처를 전시한 박람회에서 쓰레기로 뒤덮인 집의 미니어처를 보고서 어느 아주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말.

'난 깔끔하니 저렇게는 안 될 거야.'


저자 고지마 미유 씨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스토킹을 당해 집 밖을 나갈 수 없고, 일터에서 에너지를 소진하여 집안을 돌볼 여력이 없고, 누군가를 잃어 살아갈 힘을 잃은 사람의 사정을 모르고서, 그렇게 이야기해도 될까.


놀랍게도 내가 의뢰받는 고독사 현장의 열 번 중 여덟 번은 이런 '친구'들이 나타난다. 이웃에 사는 중년 여성들이 단체로 몰려든 경우도 있었다. '뭐, 보석 같은 없어?'라고 청소 중인 우리에게 다짜고짜 말을 거는가 하면, '이 가구, 가져가도 되나?' 하면서 자신이 쓸 만한 물건을 챙기려는 유형이 많다.

(p.81)

이 일을 하면서 괴로운 점은 오물도, 극심한 악취도, 벌레도 아니다. 인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저 물건이 되고, 돈이 되어 버리는 걸까?

(p.83)


'친구'들은 유품 정리사들이 진심을 다해 청소하고 있는 현장을 기웃거립니다. 몇 번을 흘깃 훔쳐보다 슬쩍 들어와선 말하죠. '그거 살아있을 때 나한테 주기로 약속한 거야.' 유족과의 어떠한 상의도 없이 '돈'으로서의 가치로만 남겨진 죽은 자의 흔적을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갑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사람다움이 없는 현실. <시간이 멈춘 방> 중에서 가장 마음이 서늘하게 내려앉는 구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나쁘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주위에 있는 소중한 이들의 마음까지도 함께 죽인다는 사실이다. 본인이 느끼지 못할지라도 이 세상에는 누군가 한 사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이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p.92~93)


고독사 현장에는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끝낸 사람도 많습니다. 죽음을 결심한 사람들은 집안이 깔끔하게 정리된 경우가 많다고 해요. 체액이 주변에 스미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방수비닐을 바닥에 깔기도 하고 옷가지며 가구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문 유품 정리사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들이 마지막까지 정리하지 못한 남겨진 자의 마음. 떠나는 이가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도 그들을 마음에 묻고 삶을 고통 속에서 이겨내야 하는 산 자들의 마음은 정리할 수 없습니다.


책 표지에 쓰인 글귀 하나까지 완벽하게 재현한 미니어처에 가슴이 섬찟할 때가 많았습니다. 떠나간 자들의 몸이 흙이라는 자연이 아닌 그들의 공간 속에서 변이 하며 남겨놓은 갈색, 그리고 짙은 회색의 자욱들은 처참했습니다.

그 미니어처 속에 저의 모습을 잠시 겹쳐 보기도 했어요. 저자가 책 속에서 말한 것처럼 고독사는 누구만의 것이 아니기에 저 또한 쓸쓸히 세상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소중하다는 의미 말고도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또한 '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을 떠나갈 때 누군가의 곁에서 마지막 순간을 나누며 삶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남겨진 자들이 떠난 자의 삶과 육신, 그 흔적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한 번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그 행위가 감사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130페이지의 짧은 책이지만 저자의 생각이 곳곳에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삶과 죽음, 어쩌면 저 또한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의 한 형태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독사로 대변되는 현대의 인간관계의 모습까지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고령인구와 1인 가구가 점차 늘어나는 우리나라도 고독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던 이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떠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떠나간 자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 <시간이 멈춘 방>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더숲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reference) :

1) https://pixabay.com/ko/photos/%EB%AC%BC-%EB%B8%94%EB%A3%A8-%ED%91%9C%EB%A9%B4-%EB%B0%94%EB%8B%A4-%EC%95%A1%EC%B2%B4-768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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