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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09. 2020

파멸을 향한 급발진

서평 시리즈 #28 : <폴터 : 휴먼게임의 위기, 기후변화와 레버리지>

'뉴요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자인 빌 맥키번이 전작 <자연의 종말>을 쓸 때까지만 해도 지구 온난화로 인한 피해는 '예상'되는 일이었다. 21세기의 말쯤, 즉 2100년쯤에는 지구가 무척 뜨거워져 문제가 될 테니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학자들은 예측했었다. <자연의 종말>은 1995년도에 나온 책이었고 그로부터 채 30년이 되지 않아 과학자들의 예측은 철저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구는 이미 그 옛날 할머니 댁의 아궁이 위에 놓인 가마솥 마냥 펄펄 끓고 있는 상태이고 어쩌면 지구상의 생명체를 모두 쓸어버릴지도 모를 수준의 온도가 되는 시점은 과학자의 예측이었던 세기말, 21세기의 말보다 최소한 50년은 당겨졌다. 

<폴터 : 휴먼 게임의 위기, 기후변화와 레버리지>는 단순히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류를 게임판 위의 대상으로 놓고, 이러한 휴먼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이야기하는, 인류 전반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자는 휴먼 게임을 기후 변화, 레버리지, 게임의 이름,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는 4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세밀한 설명을 제시한다.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기에 기후 변화라는 이슈에 집중하여 책을 선택하였는데 인류의 운명에 대한 색다른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 기후변화


기후 변화에 대한 부분은 절망적이다. 저자는 이런 표현을 한다. 인류라는 존재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보니 심장과 폐가 독소를 순환시키고 있는 셈이라고. 독소는 당연히 화석 연료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들을 의미한다. 중동을 황금의 제국으로 만들어준 검은 액체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화석 연료가 없으면 인류는 성장을 멈추는 것은 물론 생존할 수도 없다. 화석 연료를 이용하면서 스스로가 발붙이고 있는 터전을 하나하나, 아니 열 개 열 개 천 개 천 개 회복 불능의 상태로 박살 내고 있는 것 또한 맞다. 


기후 변화에 대한 몇 가지 충격적인 수치(수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와닿는 가장 좋은 지표이므로)를 소개하자면, 


- 2017년 멕시코 만을 거쳐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 규모를 안겨준 카트리나와 동급으로 취급받았다. 바람이 아닌 강수량만으로. 이때 내린 비는 약 128조 리터로 뉴올리언스의 슈퍼 돔 2만 6,00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무게로는 1,270억에 달해 휴스턴을 약 2센티미터 가라앉힐 수 있었다.

(p.44~45) 

슈퍼 돔의 크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축구 경기장 2만 6천 개를 상상해보자. 어쩌면 이번 장마 동안 내린 비가 단 며칠 동안 내렸다고 상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이것은 단지 휴스턴에만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1,400만 명이 거주하지만 석유 재벌이 단 한 명도 없는 캘커타에는 인구의 3분의 1이 범람하기 쉬운 슬럼가에 살고 있다. 이곳은 지난 50년간 '집중 호우가 발생한 날'이 3배로 늘었다. 노숙을 하는 네 아이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 있어요. 만약 폭풍이 와서 우리가 죽게 된다면 아이들도 한 번에 데려가 남아서 고통받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p.45) 


- 2018년 세계은행의 한 연구는 기후 변화가 더 심해지면 2050년까지 무려 1억 4,300만 명이나 되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고향에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p.48)


 기후 변화는 단순히 지구의 온도만 높이는 것이 아니다.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건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가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는데, 매년 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 44억 톤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고 있다. 이 탄소를 지름 25미터의 원기둥으로 응축시키면 지구와 달 사이를 잇는 38만 km 멋진 기둥이 만들어진다. 탄소는 지구가 패딩 점퍼를 입은 것처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바다에 녹아들어 간다. 콜라나 사이다가 톡 쏘는 느낌을 주는 건 탄산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탄소가 바다에 녹아들어 가면 '탄산'이 된다. 바닷물의 ph 농도가 변화하는 것이다. 고대에도 오늘날처럼 엄청난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해양 생물의 90%가 멸종했다. 그때 배출된 탄소의 양이 더 많긴 하지만 오늘날 탄소가 배출되는 속도는 그 옛날 대멸종 때의 그것과 비교하여 1만 2천 배 더 빠르다. 

당연히, 이것 말고도 인간이 지구에 가하는 가학적인 폭력은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많다. 태평양에 떠 있는 쓰레기 섬은 해류의 흐름을 말 그대로 바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대기 상태가 좋지 않기로 유명한 델리에서는 하늘이 회색빛이다.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면 2000이라는 숫자가 표시되는데, 2000은 측정기의 한계 수치이다. 호주를 수개월 동안 불바다로 만들었던 들불, 한국을 덮친 최악의 장마, 집중호우 등 거의 모든 것은 기후 변화와 연관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구는 놀랍도록 정교한 장치라 실제로 나비효과의 그것처럼 아주 작은 변화도 특정한 결과로 산출되어 나오곤 한다. 


레버리지


동물도 복잡하게 정치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인류는 굉장히 복잡하게 자신들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정치적인 활동을 한다. 기후 변화에는 다양한 정치적 이슈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이고 폐기물 배출을 줄이고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취약층에 적절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하지만 정치적인 이슈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수십 년 전부터 반복되어 온 이러한 행위들이 레버리지가 되어 인류를 파멸의 길로 몰아붙이고 있다. 마치 지수함수의 그래프를 보는 듯이 처음 몇 년 동안은 무탈하다며 지켜봤던 결과들이 시간이 지나 폭발적으로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예전에 처리해야 할 기후 변화 문제가 1이었다면 1년 만에 2가 되고 2년 만에 10이 되고 5년 만에 1000이 되어, 현재 누군가 초능력으로 간신히 1km 짜리 해일을 막고 있는듯한 형세가 되어버렸다. 터지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레버리지라는 장을 설명할 때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에 더해 인류의 미래 생활상까지 함께 설명한다. AI가 현재는 약(weak) AI로서 이를테면 운전과 같은 특정 분야에 대한 일만 처리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류 전체의 지성을 합친 것보다 우수한 지능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을 소개한다. 레버리지는 이토록 강력한 것이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레버리지가 작용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저자 빌 맥키번은 1995년도에 출간한 저서인 <자연의 종말>에서도 줄곧 인류의 멸망에 대한 비관적 시나리오를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줄곧 인류에게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품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기대와는 달리 지난 25년간 인간은 어리석게도 멸망을 향해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얹고 그 위를 아주 무거운 돌덩이로 고정하여 달려갈 수밖에 없는 형국으로 만들었다. 그래프로 봤을 때 천장에 '파멸'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다면 로켓이 발사되듯 시간이 갈수록 수직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인류는 여전히 믿는다. (난 안 믿는다.) 휴먼 게임이라는 게임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여전히 게임이기에 게임의 판을 확연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번에는 10년, 아니 더 빠르게 5년 뒤에 다른 책을 써서 과연 그 게임의 판도가 바뀌었는지 확인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넷플릭스의 어떤 영화처럼 사후에 천국이 있다고 생각하여 다 함께 천국으로 가고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것일까요. 레버리지라는 개념과 기후 변화, 그리고 인류의 존속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옛날에도 속았으면서 또 인간을 믿고 있는 환경운동자의 이야기 <폴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생각이음 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처

1) https://unsplash.com/photos/7RtM37cLJ3c?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yPjEpP9Du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pixabay.com/ko/photos/%EC%82%AC%EB%A7%89-%EA%B0%80%EB%AD%84-%EC%9E%91%EA%B3%A1-%ED%83%88%EC%88%98%ED%95%98%EB%8A%94-279862/

4) https://unsplash.com/photos/ktPKyUs3Qj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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