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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19. 2020

자연주의적 고독 속에서 나를 돌아보다

서평 시리즈 #38 :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등학생 시절 국어 시간에 꽤나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작품이 있다.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10수씩 40수에 달하는 연시조는 가뜩이나 읽는 것도 혀가 배배 꼬이는 고전에

학을 떼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나는 해당 작품을 다 외우진 않았었는데, 일하던 학원에서 들어보니 요즘 학생들은 그걸 다 외운다고 한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벼슬을 내려놓고 한가로운 섬에 들어가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그렸던 그 작품,

'어부사시사'


<월든>을 보면서 유난히 어부사시사와 같은 작품들이 겹쳐 보였던 까닭은 <월든>의 전례 없던 자연주의적 서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명한 시인이었던 그의 작품을 모르는 이들은 많아도 어디선가 명언집이나 책에 삽입된 명언에서 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후세에 길이 남아 누군가의 메모장 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기억되며 또 다른 불씨를 당길 그의 사상과 말과 작품은, '월든' 호수에서의 고요하고 고독한 2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소로가 다녔던 하버드가 위치한 케임브리지와는 차로 달려서 25분 정도 걸린다는 월든 호수.

그가 작은 오두막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할 무렵 그곳은 사방이 자연이었다. 드넓은 호수와 우거진 삼림 속 인위적인 존재, 인간이라고는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는 곳.


소로는 그곳에서 고독을 만난다. 빵을 먹기 위해 근처 마을을 찾아 빵 가게를 들르는 것이 아닌 밀알을 뿌려 정성껏 밀을 기르고 때가 되면 수확을 하여 화덕에 구워 빵을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이뤄냈기에 살아가기 위해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고독을 만났다.


고독은 그에게 참된 친구였다. 더러는 그렇게 지내는 것이 괴롭지 않으냐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소로는 고독이야말로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을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벗이라 되물었다. 그는 또한 고독하지 않았다. 고독이란 무엇일까. 인간이기에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 고독함을 느끼는 것인가? 그에게는 2년이라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이라는 벗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결코 고독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월든>은 관찰과 사색의 책이다. 소로는 자신이 마주한 고독의 의미와 고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사색했다. 얼마 정도 떨어져 있는 철로를 정해진 시간마다 달리는 철마가 뿜는 기적소리를 사색했다. 호숫가의 새소리를 관찰했다. 동식물의 생태와 건너편 마을의 이야기, 마침내는 호수의 사계를 관찰하고 생각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관찰과 사색'이라는 주제는 흥미로운 문체에 의해 상쇄된다. 소로의 그것은 아름답다. 화려함을 담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지만 호숫가의 새 한 마리를 진심을 담아 바라보고 인생의 진리를 이끌어 내기에 그것을 담은 문장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기에 개인적으로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전에 없던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월든>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였다.


소로가 고독한 가운데에서 평소 생각지 않았던 것들을 사유하고 행동하지 않았던 것들을 실행하며 새로운 마음의 변화를 느꼈듯, 근원적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SNS를 들여다보고 친구들을 찾았던 과거와 달리 거의 온종일 혼자만의 일상을 보내며 나의 의미를 새로이 찾고 있다. 소로가 고독은 진정한 친구라 말한 것이 완벽히는 아니지만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이해가 되는 것은 어쩌면 사람에게는 고독으로 가득한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작은 단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과연 소로와 같은 삶을 택할 수 있을까. 소로 또한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허나 한편으론, 소로가 존재했던 200년 전이라 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미 '자연'이라는 존재에서는 많이 멀어진 존재였을 것이다. 인간끼리의 관계가 중요하고 소통이 필요했을 것이다. 굳이 밀알 뿌려 빵을 구워내지 않아도 시장에는 고를 수 있는 빵 수 십 종류가 있었을 터. '인간'이라는 편리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고 '월든'이라는 자연 그 자체로 훌쩍 뛰어든 모습은 당시의 시각으로 봐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로는 자연을 만끽하고 자신만의 철학과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어쩌면 현대인에게도 그와 같은 자연주의적 고독 속에서 무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반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나에게 한번 물어보자. 2년 동안 소양호의 한편에 작은 별채를 짓고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까?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러한 질문에 고민 대신 행동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간 소로, 그렇기에 그가 21세기까지도 위대한 사상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월든 호수에서의 고독 속에서 피어난 위대한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다연 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VGLCrXkuoFI?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qbTC7ZwJB64?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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