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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19. 2020

여성운동가의 쓸쓸하지만 강인한 자서전

서평 시리즈 #37 :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by 게일 캘드웰

쓸쓸하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든 생각이었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작가가 일부러 독자들에게 고독함을 선물하기 위해 만든 픽션도 아닌데 글을 읽으며

거의 처음으로 글이 황량하다고 느꼈다. 많은 것들이 떠나갔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저자 주위의,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이' 점차로 사라져만 갔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의 작가 게일 캘드웰은 작가이자 문학 평론가이다. 20년이 넘도록 '보스턴 글로브'에서 북 리뷰 편집자로 일했으며 2001년 비평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는 동시에 여성운동가이다. 그녀는 차분했다. 하지만 강인했다. 하지만 끈기 있었다. 여성을 향한 부조리에 분노했고, 분노를 마음에만 두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은 저자가 '여성'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겪어왔던 인생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자서전이다. 살면서 앓아왔던 것들, 후회했던 것들, 지켜왔던 것들, 지킬 수 없었던 것들을 때로는 다소 격정적으로 때로는 다소 쓸쓸하게 써 내려간다. 


1950년대에 태어난 저자는 60년대와 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다. 지금보다도 여성의 인권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 작게는 여자는 수학을 하면 안 된다는 교수의 말을 듣기도 하고 크게는 수도 없는 데이트 성폭력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하고, 이에 대한 자기혐오, 반성, 후회 등의 감정을 경험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설정하기도 한다. 

무술 유단자인 여성과 함께 텍사스의 어느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들은 어느 순간 차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내 외딴곳에 차를 멈추고선 남자가 하는 말, '나는 보증금을 낸 것 같은데?'. 게일은 사지가 얼어붙는 감정에도 차에서 잠깐 동안 나눈 대화를 통해 남성이 속한 부대의 부대장 등에게 해당 사실을 알릴 것이라며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다. 20대 초반이었던 게일은 이 모든 것이 등 뒤에 '검은띠' 유단자가 있었기 때문이라 했지만 아이러리하게도 검은띠는 게일이 몇 번씩 말을 걸고서야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그녀는 강인했다. 프랑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를 지우기 위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낙태 수술을 받으러 가고 돌아오는 길에 국경 수비대의 여성 검문관에게 하혈하는 알몸을 수색당해야 했지만 그녀는 끝끝내 자기 자신을 꽉 붙잡는다. 참담하고 암울한 이야기들이 쓰여 있기에 내내 쓸쓸한 기운이 감돌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철학을 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강인했다. 


여성으로서 겪었던,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후반부는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 즉, 주변의 소중한 존재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 썼던 그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이 떠나갔다. 그렇기에 책의 마지막은 조금 휑하리라 생각되기도 한다. 게일은 책의 말미에 한 무덤의 묘비에 새겨진 공집합 기호를 보고 무한대로 착각하고 만다. 어쩌면 그건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통해 얻은 결론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들이 떠나가지만 그러한 공집합 속 수평선에서 무한대를 봐야 한다는 것을. 삶의 모든 것들이 타인의 선의는 물론, 타인의 덧없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조금은 어려운 책이었다. 아직 내게 쌓여 있는 인생의 쓸쓸한 낙엽들이 부족하여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은가 생각이 든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연히 다시 꺼내본다면 작가가 담아냈던 쓸쓸함과 은근히 나오는 강인함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될까. 언젠가는 떠나간 소중한 것들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리뷰는 유노북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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