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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1. 2020

분노와 혐오로 가득 찬 세상을 위해

서평 시리즈 #40 : <타인에 대한 연민> by 마사 누스바움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된 지 20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미국 사회에서 흑인을, 그리고 유색 인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온전히 평등하지 않다. 플로이드 사건을 인해 셀마에서의 대행진 이후 50년 만에 다시 흑인 인권 운동이 대대적으로 발발한 현대는 오히려 그 옛날보다 더욱 혐오와 차별이 만연해진 '혐오의 시대'라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글이 길어지고 본 리뷰의 맥락에서 벗어나게 될 경향이 크기에 생략한다.)


현대인들은 기본적으로 화가 나있다. 인종, (부의) 계급, 출신 국가 등 기존 세계에서 차별의 기준이 되었던 요소들에만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SNS 등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앵그리'처럼 적색 레버를 끝까지 밀어놓고 온통 화를 쏟아내는 것 같다. 


도대체 왜? 


<타인에 대한 연민>은 현대인들이 직면한 혐오의 시대를 두려움, 분노, 혐오, 시기 등의 감정을 통해 바라본다. 읽는 내내 소름이 돋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분노에 대한 그녀의 해석은 마치 풀릴 듯 말 듯 한 수학 문제를 풀다 해설지를 보는 순간, '아 맞아 이걸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시원했다. 결코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있는 문장들은 아니었다. 


두려움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감정이자 감각이라고 한다. <타인에 대한 연민>의 저자 마사 누스바움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 아이를 많이 보여준다. 두려움에 대한 근원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무언가를 학습한 적이 없는 아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학습되는 것이라 보기엔 어려운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이 낯선 환경과 물건, 동물 등으로부터 목숨을 잃을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의 뇌에는 편도체라 불리는 작은 아몬드 모양 기관이 자리 잡았다. (동명의 소설의 아몬드에서 '선윤재'를 온갖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그 기관이 맞다) '아미그달라'라고도 불리는 기관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곳이기에 수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우리의 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두려움은 고통을 낳는다. 나약해 빠진 아이가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손발만을 허우적거리며 공포에 떨고 있을 때 아이는 나약함에 좌절하고 공포를 느낀다.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무언가 자신의 생명, 안위, 또는 지위, 계급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된다면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내가 높다랗게 쌓인 돌로 만들어진 재단을 오르는 데 걸린 20년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생각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타자에게 나의 두려움을 전가하고 폭발시키고픈 욕망을 낳는다. 

분노는 무엇인가? 분노는 나쁜 것인가? 분노는 결코 나쁘지 않다. 

분노는 오히려 이롭다. 현재의 부당한 상태, 방금 내가 당한 중대한 해악에 대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정을 느끼고 분노하는 것은 상태를 뒤바꿀 수 있는 준비 단계이다. 상태를 뒤바꾸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음이다. 


하지만, 

분노가 응보적 감정, 즉 보복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저자는 부모의 분노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똥오줌조차 가리지 못하는 아이에게, 부모라고 해서 마냥 즐거운 감정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무언가 잘못된 행동을 취했을 때. 허나 부모가 아이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탈레스 법칙으로 징벌을 가하진 않는다. 최소한 아이가 모르고 부모의 등을 할퀴었을 때 똑같이 다섯 살배기 어린아이의 등에 생채기를 내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야기하고 행동을 교정하려 노력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이행 분노(Transition-Anger)'가 적절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지나간 사건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쉽게 징벌적 수단을 떠올린다. 응보적 분노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이유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분노의 오류를 이야기한다.  


먼저, 분노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도성의 여부, 누구를 위한 행동이었는지 등)가 부족한 채로 분노한다. 이는 자칫 엉뚱한 사람에게 분노하는 등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지위 오류, 상대적으로 상대와 나의 지위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발생한다. 

마지막 응보적 분노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대상에게 복수함으로써 '과거'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분노하고 분노하는 것을 넘어서 누군가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고 야구 방망이를 들어 차 유리창을 깨고 돌멩이를 집어던질 때 자신의 분노에 대해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어찌 되었든, 이 '분노'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쉽게 깊은 사고를 할 수 없는 순간이 분노하는 순간이기에 마음먹은 것처럼 위의 3가지, 아니 어쩌면 추가적으로 있을 수 있는 분노의 오류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우리는 나의 분노가 올바른 것이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혐오를 설명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마사 누스바움은 원초적인 원리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가? 혐오는 두려움과 달리 태초의 순수한 아이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학습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갓난아이들은 조금 나이가 먹어서 그래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여전히 아이인 대상'과 다르게 자신의 배설물을 가지고 장난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적인 대상들, 즉 부모를 포함한 여타의 인간들과 접촉하게 되며 인간은 혐오해야 할 것들은 배워간다. 그렇다면 어떤 대상일까? 이러한 가설을 세워보기도 했다.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일까? '독버섯'은 대표적으로 '아니오'라는 대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상이다. 저자는 '혐오'를 상징과 표상을 통해 설명하는 조금 어려운 방법을 사용한다. 원초적인 혐오는 죽음에 대한 것일 수 있지만, 결코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근원적인 부정적 감정들, 흔히들 뱃속에 나비가 있는 것만 같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두려움에 시작한 철학적 사유는 분노, 혐오, 시기심, 다른 존재에 대한 차별, 혐오로 만연한 시대로까지 이어진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울림이 큰 책이었다. 읽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감정과 때로는 행동을 표출하는 존재들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현대를 비춰주는 하나의 밝은 등대를 만난 느낌이다. 그 유명한 다른 철학자들의 책처럼 어려운 용어로 자신의 사상을 점철하지도 않는다. 분명 알기 쉬운 단어로, 친절한 문장으로 구성된 책은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현대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무언가를 혐오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지, 왜 모든 것들의 편을 갈라 끝없는 정쟁을 하려 드는지 사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연민>이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안식을 주었으면 한다. 


분노, 혐오, 차별로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이야기, <타인에 대한 연민>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RHK 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unsplash.com/photos/Odc4dcsjUBw?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2) https://unsplash.com/photos/VBe9zj-JHB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t_iC69Lc68I?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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