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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2. 2020

자폐아의 부모로 산다는 것

서평 시리즈 #41 :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by 마쓰나가 다다시

2000년대 초중반 조승우 배우 주연의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화제였던 적이 있다.

20대 초반의 나이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원이'를 연기한 조승우 배우의 연기력과 함께 자폐증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초원이의 모습이 평범하지는 않다. 얼룩말 무늬에 지나치게 집착하기도 하고 운동장을 100바퀴 뛰라는 코치의 주문에 정말 100바퀴를 뛴다.


하지만 처음에는 초원이의 특별한 모습 덕분에 '자폐증'에 관심을 가진다면, 차츰 초원이의 어머니로 나오는 김미숙 배우의 연기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자녀의 모습에 절망하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하며 때로는 사소한 일에 기뻐하기도 한다.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는 현실판 말아톤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주인공이 되는 모자가 일본인이라는 점 정도가 다를 것이다. 저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저자는 주인공 모자의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담아낸 발달장애 전문가이자 소아외과 전문의 마쓰나가 다다시이다. 그렇기에 책에는 '나'가 나오고 '엄마'가 나오고 '훈이(가명)'가 나온다.  


자신의 자녀가 자폐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은 마치 오랜 시간 사랑한 연인이 이별하는 과정과 닮기도 했다.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 '훈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훈이는 웃지 않았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어도 엄마가 아닌 바위에 안겨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고 보니 옹알이도 하지 않는다. 이때쯤이면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엄마는 한 병원을 찾는다. 그리 오랜 시간 진찰하지도 않고 의사가 내뱉는 말. '아이가 자폐증인 것 같습니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평생 고칠 수 없는 자폐증이라는 말에 놀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성을 내며 병원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후로 유아와 관련된 발달 전문의를 모두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자폐증으로 의심됩니다' 뿐이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진료 시스템 때문에 병원에서 진찰만 받았는데 훌쩍 지나간 1년이라는 시간. 결국 엄마는 다시 처음의 그 의사에게 돌아간다. 훈이가 자폐인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의사의 '1년이면 빠른 편입니다'라는 말이 더욱 가슴 시리게 들리는 건 열 달을 자기 배를 앓아 품은 자식에 대한 미안함에 어머니들의 마음이 모두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이 그만큼이나 길었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녀의 자폐증이라는 명제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생각한다. 훈이가 자폐증일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한편에 품고 있었기에 엄마는 동시에 자폐아를 위한 학습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훈이에 대한 양육 방식을 다시 세우기 시작한다.


훈이는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훈이는 어느 정도의 자폐증일까?

훈이는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언젠가는 자신이 먼저 떠날 수 있다는 근원적인 걱정에 엄마는 훈이를 최대한 잘 교육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았다. 훈이의 자폐증 정도는 중증도 수준이었다. 자칫하면 평생 동안 말을 못 할 수도 있는 상황. 엄마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때로는 조바심이 나 훈이에게 덜컥 성을 내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이 또한 모두 자식을 위한 모성의 발현일 터. 그 마음이 느껴졌기에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 넘쳐흘렀다.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에는 자폐아를 둔 부모의 시점이 무척이나 잘 드러나 있다. 자폐아의 경우 특정 순간에 분노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잦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경우도 많다. 지하철도 특정 지하철만 타고 한번 앉은 자리에만 집착한다. 문제는 그곳에 사람이 앉아 있을 때에도 계속 안으려 든다는 것이다. 그럴 수 없을 경우 때때로 나타나는 발작은 엄마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특정한 소리도 훈이에게는 거슬리는 존재였다. 큰 눈동자에 시원하고 잘생긴 이목구비를 가진 훈이는 머리를 시원하게 밀고 다닌다. 드라이어 소리를 강박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머리를 말리는 것부터 신경 쓸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엄마는 얼마나 고된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훈이와의 일상에서 성장하는 자신을 보며 감사함을 느낀다. 훈이에게 말을 학습시키려 애쓰고, 특정 행동을 교정하려 들 때, 애써 최대한의 교육을 받은 후에도 훈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사를 봉투에 넣거나 칼로 무언가를 자르는 일밖에 없을 때, 이 사실들에 아쉬워하고 화를 냈던 자신을 돌아본다. 어찌 됐든 훈이가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자신의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다른 아이들과 닮길 바라는 욕심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훈이가 함께 한 17년이 흘렀다. 훈이는 여전히 많은 일에 서툴고 발작을 일으키고 집착하기도 하지만 엄마는 이제 신경 쓰지 않는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를 내며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훈이에게 맞는 훈육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훈이'는 여전히 엄마의 자식이고 사랑스러운 자식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고마운 자녀이기 때문이다.


자녀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어긋나는 모습도 애쓰는 모습도 진심이 가득 느껴져 읽기가 힘들었던 책이다. 혼을 내고 화가 나는 것이 어찌 자식이 미워서였겠는가. 5년의 불임 치료 끝에 38살의 늦은 나이에 훈이를 가졌기에 모든 것이 다 자신의 탓은 아닐까 항상 훈이에게 미안해했던 엄마였다.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의 모든 면을 사랑할 수는 없지만 엄마는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줬고 훈이 또한 이에 반응하며 점차 모자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자폐와 발달 장애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자폐증이라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특정한 특징들이 있는데 자폐는 그 증상의 스펙트럼이 무척 넓어 지적 장애가 동반되지 않는 자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리는 해당 스펙트럼은 학습에는 문제가 없기에 오히려 발견이 늦어 2차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여전히 사회성이 무척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눈치가 없다', '사회생활을 못한다' 등의 이유로 타박 받고 학대받는 경우가 발생하는 데 이에 따라 정신적인 충격으로 추가적인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오랫동안 인간 군상의 또 다른 면 하나를 놓치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다름'에 대해서 생각이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특성 때문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속하지 않는 듯한 존재들은 본능적으로 배척하고 멸시하는 것일까?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에서도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담한 차별과 따돌림 등을 엿볼 수 있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도 그러한 차별은 형태만 조금 달라질 뿐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몸과 마음 중 어느 한 곳이 조금 다르더라도 분명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다름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은 자신 말고는 결국 모두 조금씩 다른 존재들과 살아간다. '다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다른 존재들이 같이 함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던 책이었다.


조금 특별한 아이와 특별한 어머니의 이야기,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였습니다.




* 본 리뷰는 마음책방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ko/photos/%EC%8B%A4%EB%A3%A8%EC%97%A3-%EC%95%84%EB%B2%84%EC%A7%80%EC%99%80-%EC%95%84%EB%93%A4-%EC%9D%BC%EB%AA%B0-1082129/

2) https://unsplash.com/photos/xP_AGmeEa6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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