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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2. 2020

1년 동안 옷을 안 사기로 했다

서평 시리즈 #42 :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옷 쇼핑이 아닐까 싶다.

팔다리가 짧고 굵은 나의 저주받은 체형을 커버해 주는 예쁜 새 옷은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휴식처였다. 


옷 모으는 재미는 끝이 없다. 분명 얼마 전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샀는데 다른 브랜드라는 이유로 또 눈이 간다.

그렇게 사 모은 옷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있다. 취향이 확고하면 확고한 대로 특정 스타일에 끌려 주구장창 같은 옷만 사 모으고 취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옷' 자체의 스타일만 보고 사 모은다. 중요한 건 자신의 몸에 잘 어울리는지 여부인데 말이다. 


일본에서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 예술가 '마쓰오 다이코'의 옷장도 그러한 이유로 터질 것 같았다. 늘 안 입은 옷은 버리고 옷장과 집안을 정리하겠다 마음먹지만 옷 정리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90%는 끝내 완수하지 못하는 과제가 아닐까.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는 마쓰오 다이코가 무로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생각을 담은 유쾌한 에세이이다. 담긴 내용면을 떠나서 일본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한 특유의 일본스러운 문체가 무척이나 매력으로 다가왔다. 맛깔나게 원문을 쓴 저자의 글솜씨도 있겠지만 번역자께서 일본의 감성을 잘 살려준 탓일 것이다. 

저자는 패션을 사랑하고 취미로 옷 쇼핑을 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원래부터 옷을 좋아했고 패스트패션 등의 등장으로 옷을 소비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져 어느새 난잡해진 자신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친구의 글을 보고 번쩍이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았다는 SNS 문장. 


무언가 도전의식이 가득 찬 저자는 먼저 '100일'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한다. 옷을 워낙 좋아했던 저자에게는 100일이라는 시간마저도 길게 느껴질 수 있기에 이 '도전'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 몇 가지 룰도 정한다. 쇼룸에 보이는 어여쁜 드레스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고 가끔 업무 핑계로 옷을 입어보면 유혹이 잔뜩 느껴졌지만  이미 도전을 시작하는 날 여러 사람들에게 공표한 도전! 사람들과 약속한 부분이기도 하고 스스로가 지키고 싶은 부분이라 꾸준히 하루를 버텨가다 보니 어느새 도달한 100일이었다. 


100일의 과정을 통해 저자는 이미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100일 동안은 이미 있는 옷으로 코디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예쁜 옷을 고를 수 있었다. 늘 입게 되는 옷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취향이라는 것이다. 액세서리에 눈을 뜨기도 했다. 처음에 정했던 룰 중에서 옷 대신 액세서리는 괜찮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이에 맞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액세서리를 하나 둘 모을 수 있었다. 새로운 취향을 찾게 된 것이다. 


생각보다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가득한 이 도전을 저자는 조금 더 이어가고 싶어진다. 무려 1년이나!

그리고 아예 매일의 코디, 옷을 샀는지 안 샀는지 도전의 유지 여부 등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를 개설하기로 한다. 만천하에 자신의 도전을 알린 것이다. 물론 이때에도 몇 가지 세세한 규칙들은 있었다. 더욱 긴 기간을 진행하기 때문에, 너무나 엄격하게 한다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도전이었다. 본업인 예술을 할 때를 위해 입는 옷 등은 그녀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덕분에 꽤나 많은 옷과 신발을 사 모으긴 했다. 

저자는 옷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발견한다. 그동안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소비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뚜렷한 취향을 발견하는 것 또한 큰 의미가 있었다. 40대였던 저자는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취향을 선택할 나름의 '의무'가 있다고 저자는 생각했던 것이다. 지나치게 파여 있는 옷이나, 살갗이 노출되는 옷, 너무나 개성이 넘치는 옷, 주름이나 찢어짐처럼 데미지가 심한 옷 등은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얼굴과 몸에도 하나둘씩 주름이 늘어가는데 옷 또한 주름살이 가득한 옷은 자칫 사람을 궁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논리였는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트렌드를 불나방처럼 따르는 사람이 패셔니스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매일같이 검은색, 또는 흰색 옷을 입고 다녀도 자신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이 있는 사람이 패션을 진정으로 아는 '패셔니스타'라는 것이다. 삶을 중요한 것과 아닌 것, 좋아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 정리하게 된 것은 크나큰 축복이었다. 정리를 통해 저자는 보다 여유 있고 풍성한 마음으로 삶에 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100일을 지나 6개월 8개월 10개월 그리고 마침내 1년에 이르는 도전 과정에서 저자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옷 사지 않기' 도전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젖혀두었던 인생의 목표들을 마음속에서 꺼내게 된 것이었다. 몇 해 전에 잠깐 공부했었던 영어 공부를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이전의 작은 도전을 조금씩 조금씩 성공해왔기 때문에 이후의 작은 도전들을 그녀의 인생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처럼 '옷장을 비우는 프로젝트'를 통해 그녀는 자신을 보다 잘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옷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2년 동안 안 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소한 도전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다. 전에 없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과제였다. 나의 경우는 책에 애착이 심한 편이고, 누군가는 낚시 도구를 모으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생활 습관들을 조금씩 바꾸는 도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저자 마쓰오 다이코가 1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취향을 찾고 인생을 찾았던 것처럼 우리도 숨겨져 있던 인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거창한 결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언제나 옳다. 더구나 그것이 '옷 사지 않기' 와 같은 특별하면서도, 쉬울 것 같으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라면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도전이 될 것이다. 


옷장 비우기를 통해 자신의 취향, 자신의 성격,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행,

<옷장은 터질 것 같은데 입을 옷이 없어!>였습니다. 




* 본 리뷰는 메디치미디어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ko/photos/%EC%9C%A0%ED%96%89-%EC%9D%98%EB%A5%98-%EA%B0%80%EA%B2%8C-%EC%98%B7-%EB%93%9C%EB%A0%88%EC%8A%A4-1031469/

2) https://unsplash.com/photos/5gkYsrH_ebY?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aQfhbxailC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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