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누의 서재 Sep 22. 2020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지치지 않는 건 아니야

서평 시리즈 #43 :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  손미나

10년 동안 KBS의 아나운서로 마이크를 잡았다. 알랭 드 보통의 인생 학교 서울지부 교장을 맡기도 했었다.

일에 푹 빠져 사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원한 길이었기에 성장한다는 기분과 성취감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모처럼 만에 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은 휴양지, 기분을 내고자 멋진 리조트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조금은 사치스러운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마음이 말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아'


전 아나운서이자 여러 편의 여행 에세이를 낸 작가이기도 한 손미나 작가는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이 불행하다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책의 제목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처럼 수십 년 바쁘게 걸어왔던 길의 한 가운데에서 문득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던 것이다.



잘 살고 있다고 믿었었는데, 1초의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왔기에 행복하다고 믿었는데, 왜 갑자기 불안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걸까. 복잡한 마음을 터놓기 위해 무작정 찾아간 인도인 구루 '루드라'. 저자에게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루드라의 눈에는 다정함과 집중력이 가득했다. 살아온 이야기와 자신의 마음이 왜 갑자기 흔들리는지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추측하며 꺼내기 시작한 순간 이내 터져 나오는 눈물.


이제 충분히 되었다며 자신이 이야기를 할 차례인 것 같다는 루드라의 말을 저자는 물론 나 또한 흥미로운 읽을 수 있었다. 사람은 '정신', '마음', '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루드라. '정신'은 일종의 욕구와 같은 부분으로 성취를 중요시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든다. 이제 따라 '정신'이 강하게 작용하면 사람은 의욕적으로 삶을 바쁘게 살아가게 된다. '마음'은 '정신'이 추구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평온, 안정과 같은 것들이다. 몸은 정신과 마음이 추구하는 것들을 행할 수 있게 하는 그릇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정신'과 '마음'이라는 용어 때문에 다소 헷갈리는 감은 있었지만 그가 설명하는 부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와 같이 매사에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워커 홀릭들이나 아시아권, 특히나 한국 사회처럼 성취, 성공에 대한 문화가 강한 국가에서는 '정신'이 3가지 요소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균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저자는 '정신'이 너무 강한 탓에 마음과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몸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는 루드라의 말.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았다는 말에 훌쩍 아무런 고민도 고통도 없는 여행을 떠나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는 법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무작정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마음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춤과 흥이 가득한 도시 쿠바 아바나에서도 삶의 번뇌는 존재했고 2달을 넘게 머물렀던 코스타리카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있었다.

<어느 날, 마음이 불행하다고 말했다>는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가 사랑해서 하는 일이라 해도 마음은 지치고 망가질 수 있음을 알려준다. 미친 듯이 무언가에 열중했던 경험이 많지 않아서 속단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면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지내는 것은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잠시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열정적이었던 손미나라는 사람이 어느 날 문득 번아웃에 허우적대는 것을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 구루가 전한 '사랑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바닥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 듣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꺼내봤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오히려 들여다보는 일이 자주 없을지도 모른다. 책 속 루드라의 말처럼 '정신'이 하는 말에 휩싸여 몸과 마음은 간절히 잠깐의 여유와 균형을 요구하는 상황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소진되어 지쳐버린 사람이 자신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흔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신', '마음', '몸'이라는 3가지 요소로 우리를 바라보는 관점, '정신'이 폭군처럼 자신의 힘을 마구 휘두르는 경향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이 소진될 가능성은 자연히 높다는 점,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마음이 자칫 모두 닳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점은 한 번쯤 곱씹어 보고픈 이야기였다.


100일 정도의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루드라를 만난 저자가 마음 챙김의 미학과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혔듯 그 어느 때보다 거칠고 험난 시대를 꿋꿋이 강인하게 헤쳐 나가는 우리들은 자신을 잘 돌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늘 잘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사랑받아도 괜찮은 존재가 아닐까.




 * 본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ko/photos/%EC%9D%BC%EC%B6%9C-%EB%B3%B4%ED%8A%B8-%EB%A1%9C-%EC%9E%89-%EB%B3%B4%ED%8A%B8-1014712/

2) https://unsplash.com/photos/NTyBbu66_SI?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unsplash.com/photos/dlBXwGlzfcs?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매거진의 이전글 1년 동안 옷을 안 사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