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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7. 2020

지구를 산산조각 내버리자!

서평 시리즈 #49 : <거의 모든 것의 종말> by 밥 버먼

지구상에는 여태까지 최소한 5번의 대멸종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어느 정도의 대멸종이었냐면 해양 생물의 90%를 휩쓸어버리거나 육상 동물의 80%를 화석으로 만드는(문학적인 비유이다) 말 그대로 대멸종이었다. 

번개로 옮겨붙은 불이 서울 크기만 한 숲을 태운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생명체의 입장에서 그것은 전 지구적인 재앙이었다. 대멸종은 지구적인 차원의 원인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우주적 차원의 무언가가 지구를 덮친 경우도 있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구와 지구를 품고 있는 우주라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앞에 지구의 생물권은 어쩌면 미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구의 생물권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거대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충분히 다가올 수 있다.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은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지구의 생물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종말'의 원인을 거대한 차원에서 분석한 책이다. 본디 그릇이 미약한 인간이기에 결코 품을 수 없는 거대한 대상인 우주의 존재들을 다룬 책을 좋아하기에 그 시작부터 끝까지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 다루는 케이스들은 수치에서부터 결코 범상치 않다. 대멸종이라 불리는 사건들은 단순히 1~2종의 생물을 멸종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전 지구상의 모든 생물 중 일정 퍼센트 이상을 완전히 지워버린 수준이다. 희생을 당한 대상을 인간으로 한정 지을 때에도 3천만 명이 그 단위가 된다. 1918년의 그 '스페인 독감'과 세계 2차 대전 등의 사건처럼 말이다. 

이러한 수치의 대격변을 일으키는 사건들은 결코 지엽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은 먼저 '우주'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정확한 진행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 그렇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아마 영원히 진실을 알아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위대한 시작, '빅뱅'부터 시작하여 광활한 우주 공간에 어느 순간 갑자기 원소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사건을 설명한다. 약 138억 년으로 추정되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심지어는 지구의 역사마저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하물며 잠깐 점을 찍고 스쳐가는 인간의 삶을 얼마나 덧없을까. 

그러한 인류가 태어나기 45억 년쯤 전 지구가 탄생을 하고 '테이아'라 불리는 거대한 존재가 지구와 충돌하여 지구를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지구의 크기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테이아는 지구의 맨틀층까지 거세게 뒤흔들어 놓았고 덕분에 지구는 어떤 관점에서는 '혼혈' 행성이 되었다. 달 또한 이와 같은 우주적 차원의 사건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얼마나 짜릿한 기록인가! 15년 전 청소년 과학 책을 볼 때는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여겨졌던 이야기를 다시 마주했을 때 그 설렘! 하지만 이제는 태양계의 다른 주요한 위성과 비교했을 때 달은 일반적인 위성이 아니라는 증거를 통해 상당한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지구의 달은 다른 위성(달)에 비해 그 크기가 너무 크다. 또한 23.5도 정도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축과 다르게 태양계라는 디스크판 위에 놓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만약 실제로 테이아라는 천체가 지구와 충돌할 때 하다못해 미생물이라도 태초의 바다에 존재했었다면 그들도 대멸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의 종말>에는 이러한 우주적 사건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우주 마니아들에게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로 풍덩 빠뜨려주는 고마운 책인 것이다. 

우리 세대에는 걱정할 일이 없지만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먼 미래에는 결국 파멸을 피할 수 없는 행성이다. 우리는 흔히 지구를 비롯한 행성만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태양계 자체가 우리 은하 내에서 회전을 하고 있다. 한 번 LP 판위를 순회하는 데에 2억 년이 훨씬 넘게 걸리는 태양은 한 바퀴 돌 때마다 약 10%씩 밝아졌다. 크기 또한 동시에 커지고 있는 상태이다. 태양이 동그란 원판을 2바퀴쯤 더 돌면 지구는 불바다가 된다. 지구를 무지막지하게 파괴하고 있는 인류가 과연 수 억 년 후까지 생존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된다면 인류는 지구가 아니라 다른 안전한 천체에 이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1장에서 우주의 이야기를 끝마치면 2장에서는 지구적 차원의 거대한 흐름이 펼쳐진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산소 대학살'이다. 많은 생물들은 산소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흔히 필수적이고 소중한 무언가를 산소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소는 실제로 무서운 존재이다. 실제로 인간에게도 산소 속에서 살아가는 행위는 심각한 도전이다. 시뻘겋게 녹이 슨 철처럼 우리 몸 또한 산소와 만나면 큰 부하를 겪어 산화된다. 지구를 뒤덮었던 생물 중에는 혐기성 생물, 즉 산소를 싫어하는 생물들도 많았다. 주기적으로 산소의 농도가 왔다 갔다 하면서 혐기성 생물을 비롯하여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고 또 그 자리를 메꾸는 다른 생물들은 번성하며 현재의 지구가 형성될 수 있었다. 

인간을 학살극의 피해자로 한정했을 때는 지금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중세 유럽에는 세기에 걸쳐 중세 유럽 인구의 60%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페스트, 흑사병이 있었다. 정확히는 쥐벼룩이 매개체였던 그 질병은 위생적으로 엉망이었던 중세 유럽을 무대로 중세인들의 생활 문화를 바꿔놓았다. 그리고 1917년부터 1919년, 갑자기 종식이 될 때까지 3000만 명을 휩쓸어간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스페인 독감은 사실 스페인에서 처음 발병하지도 않았고 스페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자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보도를 자제하던 타 유럽국과 달리 스페인은 당시 중립국이었기에 언론 통제가 없어 유럽을 휩쓸고 있던 독감 보도에 집중했기에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5억 명을 감염시키고 10명 당 1명꼴의 놀라운 치사율(에볼라와 같은 병이 아니라 독감이었다)을 보인 스페인 독감은 팬데믹이 세계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는 존재였다. 

2장의 주된 이야기로는 '핵'이 있다. 핵이라는 과학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서술에 덧붙여 저자는 핵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수많은 재앙을 함께 설명한다. 단지 '실수'였던 몇 가지 사건들로 '푸른 섬광'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몇몇의 사람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와 같은 엄청난 재앙을 낳은 원자력 발전소의 이야기, 탐욕을 버리지 못해 더더욱 위험한 길로 빠져드는 핵물리학의 세계처럼 인간의 오만함이 인간 스스로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시나리오를 수없이 밝히고 있다. 평소 핵의 원리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기에 한 모금 갈증을 해결할 수도 있었지만 동시에 섬뜩한 미래의 시나리오까지 함께 상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의 원제는 'Earth-Shattering', 본문 속에서도 한번 등장하는 이 제목의 본문 상 번역은 '지구 산산조각'이다. 말 그대로 지구를 물리적인 수준은 아니더라도 비유적으로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사건들의 총집합이라는 뜻이다. 제목처럼 이 책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섬뜩하다. 아니 사실 섬뜩하지는 않다. 한낱 인간의 수준에서는 쉽사리 초신성 폭발이나 태양의 플레어 폭발로 인한 감마선 폭풍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휩쓸어버리는 장면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막연히 영화의 어떤 장면들을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핵과 같은 이야기는 실제로 섬뜩하다. 실제로 내가 존재하는 역사 속에서도 몇 번씩이나 일어났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대종말의 원인들은 인간이 아무리 예측하고 방지하려 노력해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해야만 할지도. 

그럼에도 한바탕 재밌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는 분명히 인간의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았다. 핵 전쟁, 핵 발전소의 올바른 이용 방안이 있었고,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 등도 있었다. 대종말이 일어날 수 있는 수 십 가지 시나리오들 중 우주적 수준의 것들은 사실 우리의 세대 중에는 일어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인위적인 원인들이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우주적 사건과 비교를 통해 우주의 움직임에 비견될 수 있는 무서운 사건을 우리 인간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인간 문명의 이기심을 경계하는 입장으로서 한 줄기의 생각을 깊이 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주와 지구, 그리고 거대한 사건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두어 시간쯤 오랜만에 과학의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지구를 산산조각 낼 수도 있는 우주적 사건들, <거의 모든 것의 종말>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예문아카이브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C%9D%BC%EC%B6%9C-%EA%B3%B5%EA%B0%84-%EB%8C%80%EA%B8%B0%EA%B6%8C-%EB%B0%96%EC%9D%98-%EC%9A%B0%EC%A3%BC-1756274/

2) https://unsplash.com/photos/E0AHdsENmDg?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3) https://pixabay.com/ko/photos/%ED%83%9C%EC%96%91-%EB%B6%88%EB%8D%A9%EC%96%B4%EB%A6%AC-%ED%83%9C%EC%96%91-%ED%94%8C%EB%A0%88%EC%96%B4-11582/

4)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B%B0%95%ED%85%8C%EB%A6%AC%EC%95%84-%EC%A7%88%EB%B3%91-%EB%B0%94%EC%9D%B4%EB%9F%AC%EC%8A%A4-%EA%B0%90%EC%97%BC-163711/

5) https://unsplash.com/photos/Q1p7bh3SHj8?utm_source=naversmartedito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api-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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