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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9. 2020

미시의 세계에서 거시의 진리를 바라보다

서평 시리즈 #50 :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 by 김홍표

큰 것은 작은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작은 것은 더 작은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쩌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영원토록 이어갈 수 있는 이 말장난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가 말장난 같은 연결고리 속에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한국인의 평균 모발 굵기는 80마이크로 미터 정도라고 한다. 모발이 굵은 편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더 가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으로 1mm를 만들려면 머리카락이 몇 개나 필요할까? 무려 13개이다. 겨우 1밀리미터를 이루기 위해서 머리카락이 13개나 필요하다. 그런 머리카락 안에 5개나 들어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우리 몸의 세포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 작은 세포들이 어떻게 이렇게 딱딱한 피부가 되고 생명체가 되는 걸까. 세포 또한 원자로 구성된 것일 텐데 원자의 세계는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기에 젖혀 뒀던 세상을 잠시 생각해보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그 거대함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은 이처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존재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이 되고, 큰 것들을 쪼개어 작은 것들이 되는 미묘한 원리를 다룬 책이다. 과학 교양서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적지 않게 읽어봤지만 문장마저 아름다운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저자인 김홍표 박사님은 글의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분이었다.


책은 작으면서도 거대한 것들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리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생명과 역사, 지구, 지구 속 존재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함께 담고 있다. 알고 있던 내용이어도 다루는 시각이 달랐기에 특별했고 몰랐던 내용을 무척 친절하게 설명하는 문체가 특별했다.


하루에도 수만 가지 감정을 마주하는 인간이다. 무언가를 보고 소리를 지를 만큼 분노하거나 흐뭇한 미소를 지을 만큼 행복해지지만 그러한 감정은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화학물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절기에 의해 밤이 더 길어지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늘어나지만 반대로 낮이 더 길어지면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 더 많이 나온다. 겨울에서 봄이 되었으니 더 활기찬 기운을 느껴 활동적으로 뛰어다니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호르몬의 균형을 위해 우리는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한 것 하나를 반드시 취해야 한다. 바로 잠이다. 주광성 동물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원래대로라면 밤에 자야 한다. 끼니를 먹는 것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모두 밤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인간이 불과 특히 전기를 통해 일주일 24시간을 깨어 있을 수 있게 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100년 전만 해도 평균 9시간은 잤을 거라고 추정되는 인간들은 이제 7시 반 정도만 자고 있다. 자연스레 호르몬 분비의 균형이 깨져 각종 질환이 발생하고 행복 지수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대단한 녀석이 관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존재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푸르른 존재들은 일 년에 100기가 톤의 탄소를 고정하고 있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통해 포도당을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기가톤이라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위이다. 하지만 인간은 푸르른 존재들을 베어 내고 이 땅에서 몰아내며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방법으로 방점을 찍은 것 또한 탄소와 같이 아주 작은 원소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3억 년 된 원소. 검은 물. 모두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마이크로의 세계에서 조명하기에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늘 거시의 세상을 바라보던 우리가 미시를 통해 더욱 거대한 존재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주 속의 거대한 원리와 진리를 마주한 것이다. 여기에 글 중간중간 전하는 작가의 따스한 철학, 인류를 위한 한 마디. 과학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이더라도 책에 매료되어 단숨에 독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논리와 이성만을 추구할 것 같은 과학이 때로는 문학 작품보다 더 큰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은 시점으로 바라보게 하고, 아예 익숙하지 않은 존재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것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에 가끔씩은 과학에 담긴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새침데기 아이가 갑자기 건네준 사탕에 마음은 더욱 따스하게 무너지는 것처럼 말이다.


눈에 보이는 않는 세계를 통해 거대한 우주의 진리를 마주하는 순간,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궁리출판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출처 :

1) https://pixabay.com/photos/splashing-splash-aqua-water-165192/

2) https://pixabay.com/illustrations/people-girl-woman-face-portrait-201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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