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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의 서재 Sep 29. 2020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라진 마음들

서평 시리즈 #51 : <갈라진 마음들> by 김성경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걸 타 봤었다. 조그마한 시골 도시에서 자랐던 터라 각 고등학교마다 신입생 몇 명을 선발하여 유럽 대학 탐방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해당 프로그램에 선발된 덕분이었다. 사실 바다를 건너는 여행도 처음이고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던 식이라 '좋았겠지?' 정도의 감흥만 기억날 뿐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몇 가지의 기억을 꺼내자면 한 외국인 남성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꼽을 수 있겠다.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니 언제쯤 통일이 될 것 같냐고 묻는 그 남자. 평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라 당황해서 20년 정도...?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자 그렇게 빨리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남자. 어쩌면 한 세기는 걸리지 않을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까마득히 잊고 살던 그와의 대화가 다시 떠오른 건 군대를 갈 때쯤이었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는 통일이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는 이전의 수십 동안 그래왔듯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났지만 남북의 관계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갈라진 마음들>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찢겨 나간 상처들을 심리학에 기반하여 풀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지나치게 편집된 이미지, 잘 알지 못했던 북한의 사상 교육, 북한 주민들의 실체, 그리고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출신 새터민의 현실 등 항상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기에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분단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분단이라는 상흔을 마음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지닌 채 살아간다. 군 복무의 의무가 있는 사람들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 가기 전까지는 통일될 거야' 등의 우스갯소리를 나누기도 하지만 청춘의 시기에 긴 시간 공백기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언제든 군사적으로 동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남북 관계가 고조되면 태연한 척하는 순간에도 마음에 걱정이라는 글자가 주기적으로 새겨진다.


비단 군과 관련된 사람들만 남북 관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한 형태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소비되어 왔다. 어떤 매체는 북한의 안타까운 현실과 탈북민의 실상을 강하게 조명하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북한'이라는 적대 관계에 놓인 국가라는 거대한 존재 자체에 대해 강력한 적대 의식을 심어주기도 한다. 저자인 김성경 박사는 해당 측면에서 우리가 북한의 이미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봐야 함을 강조한다.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여성 탈북민이 탈북 과정에서 겪는 성적인 요소를 포함한 폭력이나 탈북 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생활을 위해 해야만 하는 일 등의 이미지는 만드는 이의 편의적인 의도가 개입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굳이 조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관음증적인 시각을 이용해 컨텐츠로 만든다는 주장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부분이다.


<갈라진 마음들>에서는 영화를 통해서 남한이 바라보는, 또는 바라보고 싶은 북한의 이미지를 설명하기도 한다. 정권에 따라, 추구하는 정책 노선 등에 따라 <쉬리>를 시작으로 다양한 남북 관계와 관련된 영화가 대중들을 찾아갔다. 영화의 흥행은 당대의 사람들이 북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북한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클 때에는 그러한 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남한은 절대선이고 북한은 절대악이라는 실제 사실을 떠나 표상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를 사용한 영화는 경우에 따라 철저히 외면받기도 했다. 또한 영화라는 매개체를 설명하는 장을 통해 확실히 남북한 모두 상대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수십 년의 시간을 노력했다는 사실이 불현듯 느낄 수 있었다.


남북의 문제는 단순히 남과 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처음 분단이 되었던 계기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가 남북문제를 고조시키기도 완화시키기도 한다. <갈라진 마음들>은 해당 국제 정세를 각국의 심리학적 요인을 기반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덕분에 남북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실 그동안 내재화된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갈라진 마음들>에 나오는 주장처럼 일정 부분 편향된 측면이 있어서인지 읽는 동안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상반된 이미지가 등장하는 경우가 특히 그랬다. 하지만, 책을 읽는 이유는 보다 다양한 시선을 접하기 위함이고 책을 읽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선과 이미지의 충돌은 독자가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기에 더욱 편견 없이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공감할 수 있는 말이 많았기에 편견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북한 출신 여성에 대한 미디어의 편집된 이미지 형성, 분단국가의 시민들의 기저에 깔린 마음의 상처. 이와 같은 사실들은 분명 충분히 생각을 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젊은 층들은 이제 통일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북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분단국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 전쟁, 갈등 등의 어렵고 복잡한 단어를 넘어서 우리는 마치 운동선수들이 머리를 맞대며 신경전을 벌이듯 머리를 맞대고 있는 북쪽의 사람들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을 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과 관련된 거대한 담론을 논할 때 올바른 생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이기에 더욱 알아야만 하는 존재인 것이다.


가장 가깝기만 가장 먼 북녘의 사람들, <갈라진 마음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창비의 도서 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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