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화영 Jan 17. 2021

아버지가 변하고 우리집은 마스크를 벗었다

열심히 살아도 안 되는 게 있더라는 말

지난 주말 새해를 맞아서 본가에 다녀왔다. 집이 추워서 거실에 난로를  놓고 가족들이 한데 모여서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다. 전엔 대화를  나누지 않던 아버지도 같이.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어렸을 적부터 독단적이셨고 완강했으며 자식들의 말을 일절 듣지 않으셨다. 존경한 적은 있어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기억으론 없었다.

아버지는 1939년에 태어나셨고 팔순을 넘기셨다. 6.25 생생히 기억하고 계실 만큼 연세가 많으시고, 여느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산전수전을  겪으셨다. 나는 이런 배경 없이 아버지를 대했다. 늦둥이로 태어난 나는 공감대 형성이 전혀  되는 아버지가 미웠고  그만큼 철딱서니가 없었다.

내가 서른을 넘긴 후부터 아버지는 달라졌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오는데, 그렇게 모질고 강해 보이던 아버지가  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신 적이 있었다. 팔자소관이 있는  같다고. 발버둥 치며 열심히 살아도  되는  있더라고. 맏이 노릇 하느라 힘들었던 언니에게 너희가 잘해야 한다고. 지난날들을 참회하듯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모두가 거실에서 이야기꽃을 피워도 문을 닫고 안방에서 홀로 신문기사를 읽던 아버지는 이제 자식들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이야기를 먼저 건네신다.

어쩌면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절대 약해지면  된다고 생각하신  같다. 살갑게 대하는 것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같다고 단정 지으신  같다. 계기는   없지만 문득, 상냥한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으셨던  같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을 던져버리신  같다. 아버지는 어쩌면,  알고 있었지만 용기가 없으셨던  같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는  일상이 되었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우리집은 마음에 마스크를  채로 대화를 나눠왔다. 그게  인생에서 코로나보다  문제였는데,  걸어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물리적으로 답답하긴 하지만 마음의 마스크는 이제  써도 되겠다. 좋다. 날씨는 너무 추웠는데 그렇게 춥게 느껴지지가 않았던, 기억에 꼽을 만한 귀갓길이었다.


2021010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