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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송화영 Mar 21. 2021

윤여정이 진짜 멋있어 보이는 이유

매력적이고 닮고 싶은 사람의 특징

<윤스테이>를 재밌게 보고 있다. 외국 손님에게 한식을 대접하고 전통 고택에서 1박을 하도록 돕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의 80퍼센트는 윤여정이라는 사람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러블리한 행동과 입담을 보고 듣노라면 다른 채널로 돌릴 수가 없다. 그만큼 그녀는 유쾌하고 재미있다.

일례로 호주 청년 두 명과의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호주 청년이 오징어 먹물로 만든 요리를 보고 눈을 의심하며 "혹시 저희를 독살하려는 건 아니죠?"라고 농담을 던졌더니 거기에 받아친 게 기가 막혔다. "체크아웃 후에는 장담 못 하지."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했거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대답을 했더라면 내 기억에서 사라졌을 장면이었다.

출처: tvN <윤스테이>

7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윤여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내가 꼽은 윤여정의 매력은 유머와 솔직함이다. 내가 '당장 친구하고 싶은 귀여운 할머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녀가 지닌 유머러스함과 솔직한 말투 때문이다.

나도 윤여정 같은 어른이고 싶었다. 저 몸에 밴 센스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그보다 센스라는 걸 배울 순 있는 걸까.

연륜이 묻어나는 재치와 솔직함을 100퍼센트 내 몸에 장착하기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또 어느 정도의 경지까지는 오를 수가 있더라. 유머도 배우고자 하면 습득할 수 있는 하나의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유머를 가르치는 강좌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생각에 확신이 든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이런 강좌가 있다고 한다. '유머: 진지한 비즈니스'. 의심스럽겠지만 실제로 있는 강좌이다. 이 강좌를 만든 사람이 쓴 책도 있다. 바로 <유머의 마법>이다.

이 책은 행동과학을 이용해 유머가 우리의 직업과 비즈니스와 삶에 주는 혜택을 분석하기 위해 쓰여졌다. 사실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적용하기 좋은 내용과 사례가 다양하게 실려 있다. 고백하건대 낄낄거리면서 읽은 실용서는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기왕이면 인생을 더 많이 웃고 재밌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제니퍼 에이커&나오미 백도나스, <유머의 마법>

인생에서 유머가 가지는 의미

나는 웃음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방식을 정말 좋아한다. 당신이 숨이 넘어가도록 웃을 때 어떤 거리감이나 사회적 위계 의식을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존 클리즈

윤여정의 유머에는 억지스러움이 없다. 그저 그녀가 느낀 그대로 꾸밈없이 입밖에 내는 그 자체로서 재미가 있다.

윤여정의 유머는 대개 웃음을 머금고 있기보다는, 꽤 진지한 표정이다. <유머의 마법>에서 나온 원리 중 하나가 이 '진지함'이다. 저자는 '유머는 진지한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유머와 진지함이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진지함은 재미와 매우 잘 어울린다. 살면서 겪는 온갖 진지한 것들과 싸우려면 유머만큼 좋은 게 없다. 진지함과 재미가 균형을 이루면 그 두 가지가 모두 힘을 얻기 때문이다.

연기 생활만 햇수로 56년째인 그녀는 촬영 현장에서 수많은 스태프들과 호흡을 맞춰 왔다. 웬만큼 경력이 있는 연출자도 그녀를 어려워할 만큼 수십 년을 연예계에 몸담아 왔기에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현장을 압도할 만큼 무게감이 있다. 그런 곳에서 농담조로 툭하고 뱉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재용 영화감독은 윤여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월과 연륜에서 나오는 촌철살인 유머가 흥미로웠어요. 이런 매력을 사람들과 나눠야겠다 해서 기획한 영화가 <여배우들>이었죠." 윤여정은 감정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대신 툭툭 던지는 촌철살인의 말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웃게 만든다. 그녀 나름의 세심한 배려였으리라.

그녀는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독들이) 연출하려고 하질 않고 선생님 좋으실 대로 하시라고 해. 그런 환경에 있으면 나는 괴물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늘 상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윤여정이 했던 여러 인터뷰 중에 이 내용이 가장 좋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상황들에서 오히려 위기감을 느낀다는 그 마인드가 너무 멋져서. 관계에 있어서 우위를 두려고 하지 않는 것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녀의 솔직함과 유머러스함은 어쩌면 이번 책에서 나온 유머의 가치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과 인생이 진지해지고 힘들고 재미없고 스트레스로 가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유머감각은 단순히 그런 진지한 상태를 종결하거나 상쇄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회복시킨다.

- 제니퍼 에이커&나오미 백도나스, <유머의 마법>

실없는 농담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어떤 순간이나 관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 그저 실없는 농담 한 마디일 때가 있다. 어색하고 경직된 관계에서 농담 따먹기 몇 번으로 자연스럽게 친해진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유머와 웃음 같다.

비단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유머는 직장에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유머의 마법>에서 나온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다. 회사의 중역 수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4퍼센트가 유머 감각이 있는 직원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더 유능하다고 믿었으며, 유머는 리더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머러스한 직원에게 리더를 맡길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유머가 가지는 힘은 대단했다. "인류가 지닌 진짜 효과적인 무기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웃음이다." 마크 트웨인이 한 이 말이 매우 공감되는 대목이었다.

솔직한 유머를 하라

최근 선댄스 영화제에서 했던 윤여정의 영어 인터뷰는 진실된 유머의 표본처럼 느껴진다.

"저는 사실 이 영화(미나리)를 하기 싫었어요. 독립영화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독립영화라는 건 이 영화를 하면서 제가 고통받을 거라는 뜻이죠. (관객 웃음)
그런데 영화가 참 잘 나왔어요.
이제 늙어서 힘들게 일하기 싫어요. 그런데 이렇게 정이삭 감독이 기회를 줘서 감사해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저희 영화를 함께 즐겨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유튜브 <셀럽잉글리시>

윤여정의 유머에는 솔직함이 배어 있다. '가장 연기에 몰입이 잘 되는 순간은 돈이 필요할 때'라는 말은 지금도 여러 매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녀의 말에는 솔직함에서 나오는 멋과 재미가 있다. <유머의 마법>에서 저자는 '유머의 핵심에는 진실이 있다'고 설명한다. 진실은 모든 유머의 중심에 있다. 진실을 공유하면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공감하며 이야기에 빠져든다. 진실된 유머는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다.

마치며

유머는 마음의 빗장을 맥없이 풀어버린다. 저자 나오미 백도나스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사과를 판매하는 점원에게 화를 내는 대신 "마음에 드는 사과 하나 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빗장이 단단히 채워져 있던 점원은 "제가 마음에 드는 사과를요?" 하고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지만, 이내 피식 웃고 말았다. 이처럼 유머는 틈새를 만들고 봄바람 같은 기분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당신의 '사과 모멘트'는 언제인가? 나는 매일 그 순간을 찾는다. 유머는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나는 일상에 웃음이 메말라 있을 때 누군가 나를 웃겨주길 바라기보다 먼저 웃음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한 번이라도 더 웃길 바란다. 웃음은 전염된다. 상대방이 웃으면 나도 웃게 된다. 이보다 값진 일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