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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ug 29. 2021

돌다리를 두들겨 보지 않으면 망하는 이유

나는 왜 죄송할 짓을 했는가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반성문을 슬랙으로 쓴다. 내 글을 읽은 상사의 마음속을 헤아려 본다. '그러게 죄송할 짓을 애초에 왜 한 겁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나를 꾸짖는다. 조금만 신중했으면 될 일을 왜 안일하게 대처해서 이 사단이 나게 만들었는가.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변수를 접하게 된다. 업무에 착수해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생길 때, 특히 그 결과가 좋지 않은 쪽일 때를 포커싱해서 오늘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프로에게 '생산적 피해망상'은 필수다


  책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서는 동종 업계의 주가 지수를 최소 10배 이상으로 앞지른, 일명 '10X 기업'의 공통점으로 '생산적 피해망상'을 꼽는다.

  그들은 이렇게 자문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를 대비할 계획이 있는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위험은 무엇일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10X 기업의 생산적 피해망상 예시는 다음과 같다.


1.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급격히 변할 수 있다고 늘 가정한다.

2. 그들은 끊임없이 "만약에?"라고 질문하면서 상황 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3. 그들은 한 발 앞서 준비하고 예비자금을 비축했으며 '비합리적으로' 큰 안전마진을 유지하고 리스크의 성격을 규정한다.

4. 좋은 시기든 나쁜 시기든 자신들만의 규율을 정비해감으로써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위치에서 혼란에 대처한다.

5. 그들은 실수하더라도 살아남아야 그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위 예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음(-)의 블랙스완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스완이란 나심 탈레브가 고안한 용어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며 발생 확률은 낮지만 큰 혼란을 초래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10X 기업은 특정 블랙스완이 발생활 확률은 1퍼센트도 안 되지만 어떤 사건이든 블랙스완이 발생할 확률은 100퍼센트에 가깝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95퍼센트의 시기에는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일 수 있는 이 전략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는 5퍼센트의 시기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된다.



생산적 피해망상의 3가지 활용법


1. 여분의 산소통을 준비한다.


  여기서 말하는 산소통이란 산 정상에 올라가는 데 필요한 산소를 담은 물건을 말한다. 10X 기업은 예상치 못한 사건과 불운이 발생하기 전에 이에 대비해서 여유자금과 충격흡수 방안(산소통)을 준비한다.


  연구에 따르면 87,117개의 회사 중 자산 대비 현금비율을 비교했을 때 10X 기업들은 중간값보다 3~10배 높았다. 혹자는 재무이론 상 현금 보유액이 많으면 자본 운영에 비효율적이라고 말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처해 있을 때를 회사를 지키려면 사내에 현금을 많이 보유해 두어야 한다.


2. 리스크를 규명한다.


  10X 기업들은 리스크의 성격을 규정하고 시간에 따라 리스크를 관리한다.

  리스크의 성격은 데스라인 리스크, 비대칭 리스크, 통제 불가능 리스크 이렇게 3가지로 분류된다. 데스라인 리스크는 기업이 망하거나 심각하게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위험을 뜻한다. 비대칭 리스크는 잠재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는 정도가 유리해질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큰 위험을 말한다. 통제 불가능 리스크는 관리하거나 통제할 능력이 없는 영향력과 사건에 기업이 노출될 위험이다.

  10X 기업을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보면 리스크를 덜 부담했다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10X 리더들은 데스라인 리스크를 몹시 싫어했고, 비대칭 리스크와 통제 불가능 리스크를 회피해갔다.


  여기에 덧붙여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리스크 유형으로 '시간 기준 리스크'가 있다. 리스크의 수준이 사건 진행 속도, 의사결정 속도, 실행 속도와 연계되어 있을 때 발생하는 위험이다. 비교 기업들은 다가오는 리스크와 혼란에 너무 느리게 대응해 손실을 입는 반면 10X 기업들은 매우 신속하게 리스크를 감소시킨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가, 천천히 대응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리스크 속성이 변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가이다. 10X 기업과 비교 기업의 분석을 통해 도출한 결론은 변화나 위협을 조기에 인식하고 길든 짧든 가용한 시간 동안 철저하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이 신속한 의사결정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이었다. 즉 신속하고 빠른 대처만이 능사가 아니라 리스크 속성의 변화 시간을 파악한 후 현안을 내는 침착성과 신중함이 가장 중요함을 알 수 있는 실험이었다.


3. 줌아웃하고 줌인한다.


  10X 리더들은 우선 목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신들의 환경에서 변화를 감지한다. 그들은 완벽한 실행을 추구하며 상황 변화에 맞춰 이를 조정한다. 위험을 느낄 때는 위협이 얼마나 빨리 다가오는지, 그리고 계획에 변화가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해 즉각적으로 줌아웃한다. '리스트 속성이 변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새로운 상황 때문에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고 나서 목표 실행에 다시 초점을 맞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면서 줌인한다.



내가 했던 실수들


미리 확인하지 못해 발생한 실수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포지션이다 보니 촬영할 일이 잦다. 촬영하면서 겪었던 아찔한 상황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는 3년 전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이다. 촬영장비를 챙겨 개방형 오피스에서 막 세팅을 시작하려던 찰나, 카메라 가방 앞주머니에 늘 있던 것이 없는 걸 발견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세상에 SD 메모리 카드가 없었다. 당연히 그 안에 넣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었다. 30초 동안 뇌 정지가 온 것 같다. 식은땀이 뻘뻘 났다. '지금 다시 회사에 가서 메모리 카드를 가져와야 하나? 아니면 근처에 메모리 카드를 살 만한 곳이 있을까? 그보다 촬영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오피스 예약 시간도 고려해야 하고... 어떻게 하지?'

  그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지난 촬영 때 가방 앞주머니가 아닌 안쪽 작은 주머니에 메모리를 넣어놨었다는 걸 말이다. 다행히 메모리를 찾아 머나먼 여정을 떠나지 않아도 됐기에 망정이었다. 사전에 5분만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체감 상 수명이 30분 정도 준 것 같은 그 아찔함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는 통제 불가능 리스크로 외부 스튜디오에서의 변수였다. 중요한 촬영이라 프롬프터를 대여했다. 기존에는 사용하지 않던 장비였다. 스튜디오 담당자와 통화할 때 다루기 쉽다고 설명해 주었기에 그 말에 안심하고 말았다.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가 보니 프롬프터가 보이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전화해 보니 내가 통화하던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스튜디오 담당자가 여럿 있었고, 시간별 교대 체제였다. 촬영 당일 통화한 담당자는 내가 프롬프터를 찾지 못해 답답해했고 잘 찾아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촬영에 프롬프터를 사용하지 못했고, 스튜디오에 있던 대형 TV로 프롬프터 역할을 대체해 진행하게 되었다. 이 상황 역시 사전에 철저히 체크하지 못해 생긴 큰 실수였다.


미리 조언을 구하지 못해 발생한 실수


  줌아웃의 부재.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미련한 책임감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기획 영상을 제작하면서 러프한 구성은 팀장님에게 이야기했지만 디테일은 조언을 구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 후 편집을 진행했다. 생각해 둔 구성처럼 그림이 잘 붙지 않아서 시간이 더 걸렸지만, 이 영상을 재구성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던 것 같다. 피드백을 받는 순간 느꼈다. 내가 만든 영상이지만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빨리 만들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미리 조언을 구했더라면, 팀장님 뿐만 아니라 다른 PD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내가 만드는 영상이 나 혼자 보고 말 거라면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영상을 보여주고 싶은 소명의식이 있었다면 송출일을 미루는 일이 있더라도 질 높은 영상을 만드려고 하지 않았을까?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게 실망스러워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실수를 최소화하려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1. 체크리스트 만들기


  체크리스트는 내가 앞서 말했던 실수들을 최소화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처음 하는 일도 루틴하게 돌아가는 일도 잠깐 방심하는 순간 디테일을 놓쳐 음의 블랙스완을 겪게 될 확률을 높인다. 촬영 시 챙겨야 할 필수 장비 체크리스트, 영상 편집 시 주의해야 할 체크리스트 등을 만들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


2. 크로스 체크


  "제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검토 부탁드립니다."

  자막 작업이나 영상의 흐름을 한 명이 반복해서 보면 눈이 익숙해져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고 객관성도 떨어진다. 피드백을 요청해 크로스 체크하면 놓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영상 송출 전 반드시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앞으로는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프로세스에서도 블랙스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생산적 피해망상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면 좋을 것 같다.


3. 진행사항 보고


  "00일 00시까지 이렇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특이사항은 00입니다."

  보고의 생활화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누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얼마나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면 다른 구성원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고, 긴급하고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면 최대한 해당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백업을 해줄 수도 있다.



마치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널 것, 급할수록 돌아갈 것.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안일한 대처가 음의 블랙스완을 일으킬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을 유념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데스라인 리스크(망하는 길)에 노출될 수 있다.


  모든 실수와 실패는 몰랐거나(공부 부족) 크리티컬하다고 인지하지 못했거나(경험 부족) 문제없을 거라고 여기기 때문(신중함 부족) 발생한다.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나 고통받은 대가로 얻은 귀중한 실패들을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활용할  아는 , 그리고 당신이라면 성장의 기쁨을 제대로 맛볼  있지 않을까? 그때부터가 실패를 딛고 일어난 진짜 프로가 되는 것일테니 말이다.



<참고> 짐 콜린스&모든 한센, <위대한 기업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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