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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pr 24. 2022

어느 날 친구가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내 장례식에 와줄래?" 그렇게 묻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제목과 부제목을 한참 동안 고민했다. 서평에 이런 이야기를 써도 괜찮은 걸까? 내 친구를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었다. 자꾸만 생각나는 친구에게 미안해서였다. 어리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지 못한 내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여러 번 반성했다. 고백하건대 이 글은 한 친구를 떠올리며 쓰는 애도의 글이 될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전학하면서 그 친구를 처음 만났다. 우리는 절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같은 반인 적도 없었고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로, 복도에서 만나면 "안녕"하고 인사하는 정도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친구는 만날 때마다 한 번도 어두운 표정인 적이 없었다는 것. 무표정인 적도 거의 없었다. 늘 밝았고, 미소를 짓고 있어서 만날 때마다 같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 아이였다. 문자를 주고받은 적은 있어도 통화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어서 무슨 일로 전화를 했을까 조금 의아했다.


  "여보세요?"

  "화영아, 나야."


  무슨 일이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별생각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서로 대화거리가 떨어져 정적이 잠깐 흘렀다.


  친구는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있잖아. 내가 만약에 죽으면, 너는 내 장례식에 와 줄 거야?"


  나는 당황했다. 갑작스러웠고 왜 그 말을 꺼냈는지 이유를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 그 이야기를 한 건지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그런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또래 아이들이 세상 다 산 것처럼 자살이나 죽음에 대해 너무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농담이건 진담이건 상관없이 "죽고 싶다"라고 말하거나, 온라인으로 죽음과 관련한 글을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리고 미숙해서 철없이 하는 생각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나 역시 똑같은 어린애였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왜 그런 소릴 해? 그런 말을 지금 왜 하는 거야?"


  나는 불편하다는 걸 노골적으로 티 냈다. 날카로운 목소리와 질문으로 받아치며 그런 말하는 거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쏘아붙였다. 왠지 나는 화가 났고 내 감정을 앞세웠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친구는 알겠다고,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 친구는 집에 일이 좀 있어서, 힘들어서 그냥 한번 해 본 말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던 것 같다.

  친구는 민망했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이제 와 친구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친구를 헤아려 볼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조금 지나서였을까, 한 달 조금 못 돼서였을까. 학교에 갔더니 옆반 친구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에게 다가왔다.


  "들었어? OO이가 죽었대. 자살이래..."


  아침에 그 소식을 접하고 하루 종일 멍했다. 무슨 상황인지 가늠이 잘 안 됐다. 급격히 침울해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멍했다. 나는 울지도 않았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 겪는 상황에 그저 멍할 뿐이었다.


  며칠간 그 친구 이야기로 학교는 떠들썩했다.

  나는 한 달 전쯤 통화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내가 한 말과 그 친구가 한 말을 여러 차례 되뇌었다. 뒤늦게 듣기로 친구는 어머니가 큰 병으로 집에 몸져누워 계시고, 아버지는 안 계셨다. 아픈 어머니와 한 살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오랫동안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복도에서 만나면, 급식실에서 함께 밥을 먹을 때면, 등하굣길에 만날 때면, 항상 웃고 다녔던 거다.


  나는 장례식에 가는 게 무서웠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장례식이라는 곳이 무서웠고 갈 엄두가 안 났다. 게다가 내가 한 말들에 상처받았을 그날의 친구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괴로웠다. 고민하다 나는 친구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를 떠나보냈고 19년이 흘렀다.


  책 <인생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를 읽으며 친구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고, 지금까지 내 인생 사느라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 친구를 말이다.


“우린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마샤. 네가 정상이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심의회 같은 건 절차상 필요한 일일 뿐이니까. 곧 끝날 거야. 가능한 한 빨리 다시 위원장을 만나서 네가 건강하다고 말하고 이 보호감호 조치를 끝내버리자. 너한테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저자 마샤 리네한은 '경계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고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을 잃었다. 십 대의 그녀는 정신병원에 고립된 채 지옥 같은 상황을 감내해야 했다.

  몇 년 후 마샤가 겨우 일상을 되찾게 됐을 때, 오해가 생겨 정신병원에 또다시 입원하게 될 뻔했던 아찔한 상황 속에서 친오빠 얼은 위처럼 말하며 마샤를 안심시켰다. 우린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너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내가 다 알고 있다고. 너를 이해하고 있다고. 그 말에 마샤는 자신을 생각하는 다정한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치기로 했어요."

  한때 정신병동에서 매일 자살충동을 느껴 자해를 하고, 오직 자살만이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을 돕는 데에 일생을 마치겠다고 신 앞에 맹세했다.


  현재 그녀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포함해 심각한 자살 충동, 섭식 장애, 약물의존, 우울증, PTSD처럼 복합적이고 고통스러운 정신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치료법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 챙김과 수용을 기반한 변증법적 행동 치료(DBT, Dialectical Behavior Therapy)를 창시했고, 정신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수여받았다. <타임>지에는 '우리 세상을 바꾼 천재와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친구 생각으로 한참이나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던 책 속 구절과 저자 마샤 리네한의 모습


  저자 마샤 리네한의 영적 경험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 관심이 모여 지옥에 빠져 있던 그녀는 이제 자신과 같이 지옥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뭉클했던 건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었다.


  "당신이 튤립이라면 장미가 되려 애쓰지 마요. 대신 튤립 정원을 찾아가세요."
  내 모든 내담자들이 튤립이면서 장미가 되려는 절박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밀어붙인다. 개중에는 물론 스스로 튤립 정원을 가꿀 능력이 미숙한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나 정원 가꾸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녀는 지옥 같은 순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수용하는 법을 일깨운다.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며 반드시 장미 정원 속 장미가 되려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언제나 스스로를 믿어야 함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그리고 또 이야기한다.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 힘들다면 언제든 내가 가르쳐 주겠노라고. 당신이 튤립임을 내가 알고 있으니 튤립 정원 가꾸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이다.


  친구가 내게 걸었던 전화 한 통은 괴로운 현실 속에서, 어쩌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던 와중에 SOS를 보냈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차가운 말로 상처를 줬던 나의 어리석음은 아마 평생을 가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다. 너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음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끝으로 글을 마친다.



  수연아 안녕. 나 화영이야. 잘 지내니? 너의 마지막 모습은 15살이었는데 그게 벌써 19년이나 흘렀네.

  여긴 지독한 바이러스가 몇 년 간 지속되고 있고 여전히 전 세계가 골치 아픈 싸움을 계속하고 있어. 그래서 마스크를 쓰는 게 일상인 세상이 됐어. 그래도 요즘은 완연한 봄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은 늘어났고,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웃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생기를 찾고 있는 것 같아.


  우연히 좋은 책을 만나 그 계기로 너를 떠올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다가 이렇게 편지를 쓴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울게 되더라. 이 책을 쓴 사람처럼 너 역시도 어린 나이에 주변의 도움 하나 없이 이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 싶어서. 그때 네 전화를 받고 내가 조금 더 너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해서. 그럼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아.

 

  수연아. 난 네가 좋았어. 네가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거든. 너는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웠어. 그래서 너를 지금껏 웃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너에게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서 미안해. 그때 사과하지 못했던 게 항상 후회로 남아 있었어. 너의 어려움들에 관심 가지지 못했던 것도, 너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가지 않은 것도 너무 후회가 돼. 그래서 이렇게나마 너에게 마음을 전해. 정말 미안해.


  언젠가 너를 다시 만나면 말해주고 싶어. 너는 누구보다 맑고 예뻐서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마법을 지닌 친구였다고. 더 많은 추억을 공유하지 못해서 아쉬웠다고. 네가 어디에서든 웃음을 잃지 않는 존재이길 바란다고. 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꼭 내게 이야기해달라고. 마음껏 울어도 되고, 누군가를 탓하고 화를 내도 좋다고. 그 상대가 나여도 좋다고. 너의 힘듦을 내가 알고 있다고. 그러니 언제든 네 손을 잡아주겠다고 말하고 싶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해도 할 말 없지만, 그런 네 말이라도 언젠가는 꼭 듣고 싶다. 네가 나를 보고 싶어 하지 않더라도 말이야. 이기적인 나를 이해해 줘. 오랫동안 무심했던 내 잘못을 꼭 들어줘.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그날은, 학교 복도에서 만났을 때처럼 밝게 인사하자. 그때까지 너를 잊지 않을게. 그곳에서 행복해. 수연아, 안녕.



*본 콘텐츠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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