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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un 26. 2023

1.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중학교 때 나의 꿈이 뭔지 적어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 소설가‘라고 썼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작가도 없었고, 소설책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주인공 삼아 팬픽을 끄적이는 게 유일한 취미였을 뿐이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날이 15일이면 반 번호 15번인 아이에게 발표를 시키거나 나와서 수학 문제 풀게 하는 국룰 말이다. 번호에 딱 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꿈은 소설가입니다.“


그 말을 듣자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럼 소설책 읽는 거 좋아하겠네?”


책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는 어떻게 말할지 망설이다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더 묻지 않고 다른 아이에게 꿈을 물었다. 피아노였는지 플루트였는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해 온 아이였다. ”제 꿈은 음대 교수입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제자들을 잘 가르치고 싶습니다.“

똑 부러지게 발표하자 아이들은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선생님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내 꿈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나는 소설책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난 왜 내 꿈을 소설가로 적었을까?’ 팬픽은 그 후로도 계속 썼지만, 더는 내 꿈을 소설가라고 밝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큰 꿈을 꾸기엔 노력도 안 하고, 재능도 없다고 생각했다.


20년도 넘은 그 기억을 떠오르게 해 준 건 <유연함의 힘>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었다.


"당신은 더욱 포괄적인 정체성을 정립할 필요가 있어요. 특정 역할이나 직무에 깊이 연결되지 않은 정체성 말이에요. 그런 정체성이 확립되면 변화를 마주했을 때 저항감이 현저히 줄어들 거예요."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이렇게 옆에 적어두었다.


‘내 정체성을 넓히자.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만들고, 짓고, 쌓고, 반영하고, 쓰는 일을 하는 사람.’


소설가와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이렇게 글을 쓴다. 꿈이 소설가도 아니고, 재능이 있지도 않지만, 이제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기록은 정체성을 확장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니까.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


20년 후쯤 누가 내 직업을 물어보면 영상 제작자보다는 작가라고 답하고 싶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 만들고, 짓고, 쌓고, 반영하고, 쓰는 일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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