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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Aug 28. 2023

33. 꼭 꿈이나 목표같은 게 있을 필요는 없어요

"그럼 다음주부터 출근해. 가능하지?"


면접 마지막에 들은 말. 내 사수였던 PD가 심드렁하게 물어보았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즉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2012년 1월, 한 케이블 방송국에 입사했다. 내 역할은 TV제작국의 계약직 조연출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 우연치 않게 들어간 회사였다. 내 나이 스물 넷. 드디어 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구나. 


한동안 백수로 지낼 줄 알았던 나는 기쁨 반, 두려움 반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두려운 마음이 따르는 건 당연지사. 경력이라고는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했던 게 4~5개월 남짓. 사실상 학생 신분을 벗어나 직장인이 되는 건 처음이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맨몸으로 부딪혀 월급쟁이로 지냈다. 지금 생각하면 낯부끄러운 실수를 밥먹듯이 했다. 예를 들면 이랬다. 촬영에 따라가서 블루레이 디스크(촬영본을 저장하는 메모리 카드)를 사무실에 두고 온다든가, 편집한 비디오 소스의 경로가 다 틀어져서 경로 정리하느라 종합편집 감독님이 야근을 했다든가, 그리고 그 실수를 똑같이 또 한다든가, 녹화 날짜를 잘못 알고 있던 출연자가 스튜디오에 등장하지 않아 결국 녹화를 못 했다든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나고 살이 떨리는데, 어떻게 그 수모를 다 견뎌냈나 싶다. 나 말고, 사수와 감독님들 말이다.


실수의 연속인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내가 맡은 프로그램의 출연자인 회계학과 교수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송국 앞에 다다르자 사수는 볼일이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안 친하고(=교수님), 불편한 사람(=교수님)과 단 둘이 있는 5분 간의 시간이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던 그때, 어색한 침묵을 깨고 교수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일한지 얼마나 됐어요?"

"저...이제 두 달 조금 넘었어요."


일은 할 만한지, 전공은 무엇인지,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는지 등 질문과 답변이 몇 번 오간 후에 교수님은 지나가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반드시 꿈이나 목표같은 게 있을 필요는 없어요. 꼭 그런 걸 쫓지 않아도, 무엇이든 하고 살게 돼요. 난 내가 교수로 살지 몰랐어."


볼일이 끝나고 사수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제 (건물 안으로) 들어가실까요?"라고 말하며 교수님을 의전했다. 뒤따라 걷던 나는 교수님의 말에 멍해져 있었다. 교수님의 말이 조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각인되어 잊지 못하는 한 마디가 된 이유는 뭘까? 첫째로는 사회적 지위가 높고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이 해준 말씀을 가까이서 들은 게 그때가 처음이었고, 둘째로는 "인생,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자동번역되어 들렸기 때문이었다고 추측해 본다. 


아직 제철을 맞지 않아서 푸르스름한 채소나 과일처럼 설 익은 시절이었다. 경험이 많지 않아서 가치관 정립이 되지 않았던 나에게 교수님의 말은 불현듯 긴장으로 딱딱했던 마음에 유연함을 더해주었다. '꿈이 없어도 사는 데 별 문제 없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위안을 얻었다. 꿈과 목표가 없어서 고민이던 내게,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도 벅찼던 내게, 녹초가 되어 동태눈깔로 퇴근하던 내게, 실수를 되뇌며 자책하던 내게는 너무도 필요했던 말. 진심으로, 진심으로 듣고 싶은 말이었다.


최근 사회초년생인 회사 동료에게 이 일화를 가볍게 던진 적이 있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냐며 까맣게 잊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좋다. 교수님도 그 일을 이렇게 글까지 남길지 몰랐을 테니까. 적어도 가깝고도 먼 미래에 이 글을 다시 읽으며, 나는 다시 2012년의 나를 만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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