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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화영 Jan 11. 2021

희망고문이 고문이 아닌 이유

가짜약이 고쳐준 마음의 병



"희망을 가지세요."

"잘 될 거라고 믿으세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세요."



인생이 고단한 사람에게 이런 말은 사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단함이라는 문제에 있어 실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조금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희망을 가지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있던 병도 없어질까? 나로선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 마음가짐만으로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다. 사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희망 하나로 삶이 변화하진 않았다. 이 변화에는 속임수가 있었다.



로렌 슬레이터, <블루 드림스>


약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바꾸는가


책 <블루 드림스>는 '정신과 약 역사서'이다. 저자는 30년 넘게 정신과 약을 먹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복용한 약의 정보가 턱없이 부족함을 느꼈고, 정신과 약에 대한 책을 쓰겠노라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블루 드림스>는 정신과 약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폭넓게 다루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플라세보, 즉 속임약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속임약은 우리가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밀어주는 힘이다. 등을 떠밀려 일단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치유가 시작된다.

로렌 슬레이터, <블루 드림스>


말기 림프암 환자였던 라이트라는 남자의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그는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오렌지 크기의 종양들이 뼈에 박혀 있었으며 장기로 전이되어 걸어 다니는 암 덩어리라고 불렸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크레비오젠이라는 새로운 암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약을 투여받았다. 그는 3일 후부터 몇 달만에 처음으로 바닥을 딛고 꼿꼿이 설 수 있었고 10일 후에는 아침내 완치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한다. 라이트의 종양은 전부 사라졌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개월 후 미국의사협회가 크레비오젠이 암 치료에 아무 효과가 없음을 공식 발표하면서 라이트는 다시 종양이 생겼다. 그는 재입원을 했고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치료제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가져다준 극단적인 사례이다.



속임약의 효과와 처방법


속임약은 뇌의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이 엔도르핀이 고통 완화에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엔도르핀은 천연 아편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간의 고통을 확실하게 진정시켜 준다.


어떤 속임약은 약의 형태에 따라서도 기능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파란색 속임약은 사람을 졸리게 하고, 붉은색이나 분홍색 속임약은 각성 효과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속임약 두 알을 먹은 사람은 한 알을 먹은 사람보다 반응이 강력했다고 한다.


두통을 치료할 때에는 속임주사가 더 신뢰감을 주기도 하는데, 거듭 연구를 반복해도 가짜 약을 주사로 맞은 환자가 약을 먹은 환자보다 고통이 더 줄었다. 약의 색깔, 또는 처방법에 따라서도 속임약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안타깝게도 속임약이 전혀 소용없는 병을 지닌 환자도 있다. 알츠하이머에는 속임약이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알려진 미래를 대비하고 고통을 느낄 경우에는 엔도르핀을 분비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는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환자의 뇌와 신경전달물질도 치료에 대비하지 못한다고 한다.





속임약에 더 잘 반응하는 사람도 있을까?


가짜 약으로도 병이 낫는 사람, 진짜 진통제를 투여해야만 하는 사람이 구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속임약에 반응하는 성격 유형을 예측하는 연구가 많았지만 어떤 패턴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속임약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인구의 30~60퍼센트가 색깔만 다른 알약, 식염수 주사와 같은 단순한 속임수에 쉽게 넘어간다는 점이다.



가장 순수한 속임약


심리치료를 받고 좋아지는 이유는 환자 자신이 심리치료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서 희망과 치유를 보기 때문이다. 설탕 약과 똑같다. 이두박근에 놓는 주사, 가짜 수술과 다를 바가 없다.

로렌 슬레이터, <블루 드림스>


만약 속임약이 윤리에 매우 어긋나는 치료법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속임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바로 심리치료이다. 대화만으로 삶에 의욕이 생기고 자신을 더 아끼게 된다면 치료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을 올해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심리상담을 받아 보고, 결과가 만족스럽다면 정신적으로 힘든 지인들에게 적극적으로 권하려고 한다.




속임약은 옳은가, 나쁜가?


속임약은 병을 고칠 확률을 높여주기 때문에 무조건 좋다든가, 어쨌든 환자를 속이는 행위이므로 정당하지 않기에 절대적으로 나쁘다든가 그런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이분법적인 논조는 모두를 피곤하게 할 뿐이다. 100퍼센트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 또한 선택은 자유다. 다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만이 예상치 못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을 뿐이다.


속임약은 단순히 설탕으로 만든 약이나 가짜 봉합이 아니다. 어떤 사건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거나 사건을 경험해 의미를 찾았을 때 그 사람은 따스하게 안기는 느낌을 받는다. 꿈, 희망, 기대가 있기에 존재하는 뭔가의 도움을 받는다.

속임약의 힘은 상처를 받은 사람 자신에게서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병에 걸린 상태에서 발휘하는 순수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다.

아프고 다 끝났다 싶을 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라. 가장 약한 순간에도 우리는 강하다. 우리의 뇌는 언제든 믿음을 찾아 줄 준비가 돼 있다.

로렌 슬레이터, <블루 드림스>


나는 이 책을 통해 희망의 위대함을 보았다. 추상적인 희망이 아닌 눈에 보이는 희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속임약은 희망이며, 희망은 안심으로 연결된다.


연세가 많아 병원 갈 일이 잦은 엄마 아빠가 좋은 약을 처방받는 것은 물론 너무나 중요하지만, 가족에 대한 나의 관심과 희망적인 대화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연락을 자주 드릴수록 부모님이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겠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되고, 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역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 콘텐츠는 로크미디어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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