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지뜰' 구례 농촌유학 이야기 11편
국가가 보장하는 유일한 백수 기간인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니, 슬슬 일하고 싶어졌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도망치듯 퇴사하고 온 농촌유학인데…일하고 싶다니!’
나도 놀고먹을 팔자는 아닌가 보다 싶다. 취미 생활로 이것저것 배우는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집에서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까워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골에는 나의 경력에 맞는 일은 아예 없고, 원격으로도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는 내가 그토록 안간힘을 쓰며 쌓아 왔던 경력과 학력이 말 그대로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다.
이렇다 할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고생 없이 돈을 쉽게 벌었던 게 아닌가 싶다. 관광지인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식당이나 카페 일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워낙 성격이 느긋하고 손끝이 야물지 못해 오히려 가게에 피해를 줄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 동네에 유일한 편의점에 들렀다.
“요즘 뭐혀? 놀아?”
“네, 그냥 집에 있어요.”
“젊은 사람이 놀면 뭐해! 일해!”
그렇게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장님은 4대 보험도 가입해주시고, 무엇보다 아이와 관련된 일이 있을 때 일정을 조정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면 아이를 데리고 나와 같이 있어도 된다는 제안을 했다.
실제로 아이가 아프거나 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 편의를 봐주시고, 종종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출퇴근 거리가 차로 단 3분이라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 거리가 멀지 않아 때때로 아이가 집이나 학교에서 일하는 곳으로 걸어오기도 한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은 월급이 너무 적다. ‘최저 시급’이 얼마나 적은지 매달 체감하고 있다. 월급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작은 시골 마을 편의점이라 평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 몸과 마음에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다. 밀린 일에 치여 휴일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직장 생활과는 달리, 오늘 일은 오늘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퇴근할 수 있다.
아침에도 출근에 대한 심리적 부담 없이 집을 나설 수 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10년 넘게 출퇴근할 때는 출근을 하면서 이미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남편은 어떻게 일을 하는데 스트레스가 없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 이유는 편의점이라는 작은 공간에 제한된 일이라는 점에 있다. 편의점에는 대략 2~3천 가지의 제품이 있지만, 보통 한 달이면 거의 매장 구석구석까지 파악할 수 있다. 간혹 신상품이 들어오고 매달 행사 제품이 달라지긴 해도 그 정도는 큰 에너지를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정도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계획대로 순조롭게 잘 진행되는 일도 있었지만, 대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 일쑤였고 이를 순조롭게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편의점에서는 거의 혼자 일을 한다. 손님들도 가능한 한 빨리 물건을 사고 매장을 나가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도 나에게는 좋은 근무 환경이다.
직장에서는 늘 시간에 쫓기면서 일을 해서 한 번 앉으면 3시간 이상 꼼짝할 수 없었다. 그래서 퇴근 즈음에는 다리 부종이 심해 지하철역에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병원에서는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누워서 다리를 벽에 올리고 최대한 피가 하체에 쏠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오래 앉지 않는 직업으로 바꾸라는 황당한 처방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한 짝에 몇만 원이나 하는 고가의 압박 스타킹을 사서 신기도 하고, 서서 일할 수 있는 개인용 책상을 회사에 가져갈 정도로 오래 앉아 있는 것이 괴로웠다. 하지만 편의점에서는 내가 앉고 싶을 때 앉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다. 근무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내가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자율’이 있다.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하면 일명 ‘진상 손님’ 때문에 힘들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 실제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시골 편의점에는 외지인들보다 마을 분들이 자주 오신다.
젊은 아줌마가 아이 반찬값 벌려고 고생한다며 음료수를 사주시거나 동네 이모님들께 김치를 얻어먹기도 하고 주변 상인분들이 친근하게 대해주신다. 이전에는 내가 이곳에 관광객으로 있었다면, 이제는 비로소 마을의 일원으로 사는 느낌이다.
얼마 전 이사를 했는데, 편의점에서 자주 뵙는 집배원님이 이전 주소로 온 우편물에 적힌 이름을 보시고 이사한 집으로 배달해 주셨다. 만약, 내가 편의점에서 일하지 않다면 이름과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편지는 그냥 이전 주소에 외롭게 방치되었을지도 모른다. 편지 잘 받았냐며 웃으면서 말을 건네주시는 집배원님처럼 이제는 어디에 가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편의점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의 손을 보게 된다. 시골 어르신들의 손은 온전한 경우가 거의 없다. 종종 손가락이 몇 개 없는 분도 있고 손가락이 구부러지거나 마디가 굵어지고 거칠기가 그지없다. 손만 보아도 그분이 어떻게 생업을 이어 오셨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나도 편의점에서 일한 지 이틀 정도 지나니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손 쓸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동안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4년 차 주부지만 친정엄마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도와주셨고 육아할 때도 관절 상할 걱정에 아이 안아 주는 것도 남편 몫이었다. 40년 동안 무거운 것 한번 들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물건이 들어 온 날이었다. 평소에 물건을 배달해 주는 젊은 남자분들이 아니라 나이가 지긋하고 왜소해 보이는 어르신이 대신 오셨다.
트럭 가득 실린 물건을 보고 최대한 힘을 덜 들이고 물건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여기에 놓아 달라 저기에 놓아 달라’ 요청을 했다. 그분은 많은 양의 물건을 옮기면서도 나의 요청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흔쾌히 들어 주셨다. 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건이 이렇게 많은데,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으시네요?”
아저씨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 정도는 힘든 것도 아니에요. 2~3층 식당에 계단으로 음료 배달을 했었거든요.”
순간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건장한 젊은 남자 둘이서 이보다 적은 물건을 낑낑대면서 힘겹게 옮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음료나 술 등 편의점에 들어오는 물건은 무겁다. 그래서 으레 물건을 배달하는 일은 괴롭고 힘들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더 힘든 일을 했었던 사람에게는 콧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 경험은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때때로 손가락이나 팔이 아프지만 이런 경험도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한 달을 일해도 두 식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시간을 활용해서 생활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편의점에 일하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이 바로 ‘물건값’이다. 도시에서 쇼핑할 때는 물건값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트에 가면 으레 몇십만 원은 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가격을 안 보고 소비를 하다 보니 점차 돈 쓰는 것에 무뎌졌다. 부끄럽게도 매달 나가는 카드값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어서 계좌에 돈이 부족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물건을 살 때 한 번 더 고민한다.
‘시간당 만 원 남짓을 버는데, 이것을 사는 것이 아깝지 않은가?’
그렇게 돈을 쓰는데,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적은 돈을 버는 노동의 경험이 인생에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정신 승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이전의 소비 습관을 바꾸고 싶었다. 그러나, 소비 습관도 오랫동안 몸과 마음에 밴 ‘습관’이라 의식적으로 노력을 해도 바꾸는 것이 매우 어렵다.
돈을 개념 없이 쓰지 않겠다고 며칠은 참다가도 어느새 기분에 휩쓸려 예상치 못한 지출을 하고 나서 밀려오는 후회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써버려야 끝나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 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 아이에게는 절대 물려 주고 싶지 않다. 아직도 소비를 통해 만족을 얻는 ‘소비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삶의 만족을 유지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소비를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을 때는 스스로가 어색했다. 대걸레질이나 쓰레기를 정리는 하는 일 모두 손에 익지 않았다. 일에 적응하는 것뿐만 ‘편의점에서 일하는 나를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타인의 시선에 적응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인들에게 편의점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면 놀라거나 어색한 정적이 흐르곤 했다. 아이도 학교에서 친구들이 편의점에서 엄마를 봤다고 말하는 게 싫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남편도 언제 또 아이와 함께 편의점에서 일을 해보겠냐며 흔쾌히 지지해 주었지만, 은근히 미안하고 민망한 눈치였다.
‘편의점 앞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더 부끄러운 것이 아닌가?’
이제는 일도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적응되고 있다. 단기간의 농촌유학 생활 동안 전적으로 남편의 원조를 받아 살 수도 있지만, 적지만 스스로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언제나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