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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도 변치 말아다오! 을지로 식당노포의 맛이여!

을지로 노포식당 탐방 시리즈② 양대창구이 '양미옥'ㆍ마늘닭도리탕 '계림'

요즘 을지로를 지날 때면 높다란 타워크레인들이 잔뜩 목격된다. 타워크레인 밑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하늘을 향해 쌓이는 콘크리트 건축물과 공사 가림막 등이 어지럽다. 그동안 도로변 야트막한 건축물로 인해 안정감 있게 걸었던 길이 이젠 점점 위압적으로 다가온다. 낙후된 을지로 지역을 세운재정비촉진이란 이름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환경변화와 필자의 느낌이다.


정부와 지자체 정책, 타인의 재산권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변화의 속도와 정도 측면에서 보면 너무 급격하고 규모가 크다. 특히 그동안 5층 이하 건물들로 빼곡했던 이곳이 지상 20층 건물로 채워진다고 하니 답답한 시야와 망가진 스카이라인으로 인한 도시인들의 정서적 허탈감은 크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그동안 골목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던 노포식당들이 품고 있던 정취까지 사라지고 있으니 헛헛함이 더하리라.

을지로 세운상가를 기준으로 동서 편으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정해지고 순차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다.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주변을 내려다보면 사실 눈 아래 건축물들이 목불인견이다. 녹슨 양철지붕과 허물어져 가는 2층 건축물, 손대면 바스러질 것만 같은 슬레이트 지붕 등이 다닥다닥 붙어서 흉물스럽다. 지상에서는 볼 수 없고 높은 곳에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도시의 속살이다.


세운상가 좌우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개발 가속화

1.jpg 세운상가에서 내려다본 을지로 일대. 세운재정비촉진 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세운상가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공지, 즉 빈 땅이었다. 일제 강점기 을지로 일대는 목조주택이 많았다. 일제강점기는 2차 세계대전 기간과 맞물려 공중 폭격에 따른 화재가 우려됐다. 일본에게는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의 악몽이 있었다. ‘미팅하우스2호작전’으로 불리던 대공습은 초저고도·야간·소이탄 공격이라는 새 전술을 사용한 최초의 공습이었다. 주목적은 목조 가옥이 대거 밀집한 시타마치 시가지를 불태우는 데 있었다.

이날 공습은 일본에 충격을 주었다. 소이탄이 목조건물을 몽땅 태웠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군의 폭격이 계속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폭격에 대비해 건물을 짓지 않고 공터로 남겨두는 소개공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한반도에서도 이 사업을 적용했다. 이때 조성된 경성부 내 소개공지는 모두 19곳이었다. 그중 한 곳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너비 50 m, 길이 1180m의 현 세운상가 지대였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개공지에는 전쟁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 월남한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1966년 ‘불도저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이 서울시장이 됐다. 이 지역 정비사업을 시 주도로 하면서 전면 철거를 진행했다. 그리고 김 시장은 ‘세계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란 의미에서 대규모 세운(世運)상가를 짓는다.


세운상가는 전자제품 상가로 인기를 구가했다. 그러다가 1987년 정부는 용산역 서부청과물시장을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시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용산전자상가를 짓고 세운상가 상점들을 이전시켰다. 청계천 복개를 하면서 주변 공구상을 장지동 가든파이브로 이전시키려는 계획과 같은 것이다. 용산전자상가 이전은 실제로 많은 수가 이전을 해서 성공적인 사례로 남았다.


1995년 한 때 공원화 계획도 있었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철거가 미뤄졌다.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철거와 일대 공원화를 공약으로 발표해 다시금 이 문제에 불을 지폈다. 오 시장은 2008년 12월 17일 북쪽에 있는 현대상가부터 일부 철거를 시작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모든 라인의 상가를 철거할 계획이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미뤄졌다. 결과론적으로 세운상가는 IMF와 금융위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 시장에 이어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보존형 개발’ 계획을 2014년 발표했다. 이후 3년 여 간의 공사 끝에 2017년 9월 19일 새로 단장한 세운상가를 개장했다. 리모델링된 공간에는 청년창업·벤처기업이 입주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세운상가는 건축 1세대 김수근 건축유산


2.jpg 세운상가 전경. 과거 현대상가에서 지금은 종로세운상가로 불린다.

사실 세운상가의 보존은 건축유산 측면에서 다행스러운 일이다. 현대 건축 1세대면서 거장으로 불리는 김수근에 의해 설계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김수근의 설계는 획기적이었다. 주상복합에 학교까지 들여서 모든 일상이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건설은 설계와 많이 달랐다. 이유는 시공주체가 여러 기업으로 분할되고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됐다. 특히 시대를 앞서간 설계를 건설이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행에는 현대건설·대림산업·삼풍건설산업·풍전산업·신성공업·진양종합건설 등 6개 건설사가 참여했다. 이들 건설사 이름을 따서 종묘 쪽부터 남산 쪽으로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 풍전호텔(현 HOTEL PJ), 신성상가, 진양상가라는 이름을 붙었다. 지금은 일대서 제법 덩치 큰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지역이 개발되면 소박한(?) 모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대가 개발되면 골목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랜 식당들도 이전이 불가피하다. 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공간성, 장소성이 맛에 영향을 미친다. 한 공간에 오래도록 쌓인 저력과 입지 해 있는 지역의 역사적 장소성 등은 맛에 영향을 주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그런 면에서 세운재정비촉진사업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이전하는 노포식당에 대한 맛의 변화가 비단 필자만의 걱정일까.


세운재정비촉진 3-3구역 ‘양미옥’


3.jpg 양미옥의 주력 메뉴인 양‧대창구이.

양‧대창구이 전문점 ‘양미옥’은 원래 부산발 브랜드다. ‘오막집’의 서울 분점으로 시작했다가 브랜드가 팔리는 바람에 20년 전 ‘양미옥’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양미옥’(良味屋)은 양질이 맛을 제공하는 식당이란 의미다. 양‧대창 구이가 전문이다. 양(羘)은 위를 4개 가진 소의 1,2번째 위다. 1,2번째 위는 반추위라고 해서 되새김용으로 쓰인다. 이곳에서 되새김해서 3번 위로 넘긴다. 1번 위가 흔히 양으로 불리는데 전체 위의 8할가량 차지하는 큰 부위다. 사료를 저장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크다.


양은 짙은 갈색 융기들이 굵은 털처럼 발달해 있는데 양곰탕에 들어 있는 양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를 받치고 있는 단단한 조직을 깃머리 또는 양깃머리라고 한다. 양 구이라고 하면 이 위를 말한다. 양깃머리는 기름기가 거의 없어서 담백하고 식감이 쫄깃하다. 구이, 전골, 볶음, 탕 등에 두루 쓰이는 데, 구이가 가장 인기가 좋다. 근조직이 두꺼운 부분을 특양이라고 한다.


참고로 소의 2번 위는 벌집양, 3번 위는 겹주름위 또는 처녑(천엽), 4번 위는 일반 동물의 위와 같은 작용을 해 진위라고 한다. 붉은색을 띠어 홍창, 위의 마지막이란 뜻으로 막창이라 고도 부른다. 곱창은 소의 작은창자(소장), 대창은 큰창자다. 지방이 거의 없는 양과 내장지방 덩어리 대창은 극과 극이지만 메뉴 조합으로는 조합이 좋다. 극과 극은 통하는 셈이다.


‘양미옥’의 음식은 한마디로 ‘맛있다’로 표현된다. 최근 1세대 대표 외식사업가인 오진권 회장과 함께 방문한 ‘양미옥’이 보여준 맛의 퍼포먼스는 매우 훌륭했다. 오 회장과 ‘양미옥’ 탁승호 대표는 연세대 외식산업최고위과정을 통한 인연이 깊다. 이날은 탁 대표가 부재중이어서 카운터를 지키는 오래된 점장과 인사를 나눴다.

주문을 하자니 2명인데 양 2인분, 대창 1인분을 권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식성이 좋으면 3인분이 꿀맛이고 소식하는 분들은 2인분만 시켜도 충분한 양이다. 특히 양(羘)의 양(量)이 제법 많다. 다양한 밑반찬 모두 맛을 잘 냈다. 특히 된장찌개는 추억을 소환하는 맛이다. 여름날 외갓집 툇마루서 풋고추에 된장 찍어먹을 때 할머니가 끓여주던 수수한 맛이다. 조미료 대신 듬뿍 집어넣은 멸치의 감칠맛과 배춧잎서 우러나온 채수가 합쳐져서 혀에 와닿는 맛이 일품이다.


양‧대창 양념은 이 집의 최대 비밀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맛을 보면 제법을 따라 할 것도 같지만 쉽지 않은 것이 양념(소스)다. 양, 대창 손질도 좋고 무엇보다 원재료가 실하다. 30년 노포의 저력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 때 이희호 여사와 함께 다녀가면서 탁 대표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이 식당 입구에 걸려 있다. 현직 대통령의 맛집이란 자부심이 가득 담겼음을 느낄 수 있다.


김 대통령은 활홍어 같은 목포 신안 지역 식단과 중국요리를 즐겨했다. 그런 분이 이 집을 몸소 찾았다고 하니 맛 하나만큼은 보장받은 셈이다. 물냉면 육수와 면발도 웬만한 함흥냉면 전문점보다 뛰어나다. 사무실 밀집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도 손님이 많은 이유다. 양곰탕은 그릇이 부민옥 보단 작지만 육수가 농후하다. 양곰탕은 포장 테이크아웃으로 제격이다.


마늘 듬뿍 닭도리탕 강자 ‘계림’

4.jpg 다진 마늘이 듬뿍 들어가 시원하고 달달한 맛을 내는 ‘계림’ 닭도리탕.

종묘 쪽에서 바라본 세운상가 우측으로는 ‘종로맛골목’이 시작한다. 이 골목 안에서 가장 긴 대기줄을 세우는 곳이 닭도리탕 전문점 ‘계림’이다. 닭도리탕이냐 닭볶음탕이냐에 대한 논쟁이 더 필요 없다. 닭을 도리 쳐서 해 먹는다는 닭도리탕에 필자도 한 표를 보탠다. 아무튼 그동안 긴 웨이팅으로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행사가 세운상가서 끝나서 찾았는데 때가 때인지라 빈자리가 제법 있다.


닭도리탕 양을 2,3,4인분으로 아주 디테일하게 구분해서 먹기 편하게 했다. 구미 당기는 빨간 육수에 담긴 도리 친 닭 위로 다진 마늘이 족히 서너 숟갈 얹혀 있다. 육개장에 넣을 때 길이로 길쭉하게 썰어 넣은 대파가 육수의 달근한 맛을 짐작케 한다. 양계닭을 쓰는데 2인용 2만4000원, 4인용 4만7000원으로 ‘2인 식사’가 많은 시대 수익을 고려해 절묘하게 가격을 책정했다. 강서구 유림보신원의 토종닭 한마리가 4만5000원인데 비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가격이나 소주 한잔에 국물 한 숟갈을 걸치면 “계림과 유림은 달라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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