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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하구 장항읍 소박한 소바집 ‘대박분식’

7년 전 의상실서 전업...섬세한 손맵시가 손맛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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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았다. 지난 22, 23일 좋은 날씨를 등에 업고 1박2일 동안 충남 서천군과 전북 군산시 일대를 돌았다. 이번 칼럼은 서천 기록이다. 용산서 내달린 KTX는 한 시간여 만에 익산에 다다랐다. 눈 좀 붙이려 했지만 재빠른 기차는 틈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을 들판은 녹색이 가시고 서서히 황금물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생종 논은 이미 벼 베기가 끝나고 볏짚 원형 곤포 사일리지가 드러누워 있다. 거대한 마시멜로처럼 생긴 사일리지는 볏짚을 비닐로 싸서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낟알을 턴 볏짚을 원형 곤포기를 이용해 둥근 모양으로 압축한 후 첨가제를 넣고 비닐로 포장해서 만든다.       


6개월 이하로 보관할 경우 비닐 4겹, 그 이상일 경우 6겹 이상 두른다. 120평 정도 논 면적 당 지름이 1~1.5m, 약 500kg 무게의 원형 곤포 사일리지를 만들 수 있다. 가격은 4~6만 원으로 소 먹이로 활용해 사료비를 줄일 수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관한 작은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적어봤다. 


익산에 내려 군산 은파유원지에서 일행을 태우고 동백대교를 건너 서천군 장항읍으로 향했다. 동백대교 입구 군산횟집 빌딩이 폐허로 변했다. 올 초까지 방문객의 블로그 포스팅이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하루아침에 폐허처럼 변한 것이 믿기지 않는다. 40년 업력이란 것이 녹록한 것이 아닐진대, 코로나19 앞에선 힘들었던 모양이다. 군산의 명소 식당 하나가 사라져 식객으로서 아쉽다. 동행한 지인들도 저마다 군산회집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내고는 아쉬워했다.   

         

해양생물자원관‧장항송림산림욕장 등 가 볼만  

   

장항 랜드마크인 옛 장항제련소와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자원관 씨큐 리움 로비 상징조형물 ‘생명의 탑’ 앞에서 황선도 관장과 방문 기념사진을 찍었다.장항 랜드마크인 옛 장항제련소와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자원관 씨큐 리움 로비 상징조형물 ‘생명의 탑’ 앞에서 황선도 관장과 방문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백대교를 건너자 충남 땅이 반겼다. 먼저 충남의 땅끝 옛 장항제련소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하고 높이 솟은 굴뚝 때문에 멀리서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장항의 랜드마크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된 비철금속제련 시설이다. 일제가 금, 은 등 비철금속 수탈을 위해 만든 건식 제련소로 네거티브 헤리티지다.      


주변지역이 장항브라운필드 재생사업 이름으로 변모하고 있다. 장항이 서천을 먹여 살리는 자원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 기로에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장항의 생존과는 직결된 사업이다. 모범답안이 없는 도시재생사업이라 실패할 가능성도 있단 점에서 지혜를 잘 모으길 바랄 뿐이다. 한편 제련소는 굴뚝만으로도 위용이 대단하다. 일행은 장항의 신 랜드마크인 국립해양생물자원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우리나라 해양생물자원의 효율적 보존과 국가자산화를 위한 총괄 책임기관으로 설립했다. 물고기 연구 전문가 황선도 박사가 관장을 맡고 있다. 전시교육실 최홍인 책임이 일행을 데리고 전시관 일대를 돌면서 친절하고 명료하게 전시해설을 했다. 전시관은 일명 씨큐리움이라고 하는 데 이는 바다(sea)+질문(question)+공간(rium)의 합성어다. 바다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며 해답을 찾는 전시교육 공간이란 의미다. 약 7000점 이상의 해양표본 생물이 전시돼 있다. 물론 수장고에는 이보다 몇 백배 많은 자원들이 있다.      


거의 모든 게 표본이지만 바다뱀 한 종만 살아있는 생물로 보여주고 있다. 전에는 연근해서 안 보이던 것이 바닷물 수온 상승으로 이제는 제주에서 발견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 여파로 생물 전시는 이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자원관 바로 옆 바닷가에는 장항송림산림욕장이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곰솔림과 맥문동이 흐드러진 곳이다. 보라색 맥문동 꽃은 8~9월에 피기 때문에 장관을 접하는 데는 실패했다. 다만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를 벗 삼아 솔바람길을 걸을 때 낙조라도 만나면 황홀 무아지경에 빠질 것만 같은 소중한 풍경임은 틀림없다. 산림욕장은 솔바람길과 스카이워크 등 산림을 이용한 종합 산림휴양지로 산림청에서 지정한 국가산림문화자산이다.    

  

옛 장항역 리모델링 복합문화공간 활용  

옛 장항역사는 리모델링을 통해 ‘장항선도시탐험역’이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 끝에는 전차대라는 종착역을 알리는 명물이 남아있다.옛 장항역사는 리모델링을 통해 ‘장항선도시탐험역’이란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 끝에는 전차대라는 종착역을 알리는 명물이 남아있다.

자원관을 나와 장항읍내에 있는 ‘대박분식’에 식사를 하러 갔지만 마침 점심시간이라 7명이 들어갈 자리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식당 인근에 있는 옛 장항역사를 둘러봤다. 이곳은 천안과 장항을 잇는 옛 장항선 기착지다. 장항선은 조선경남(京南)철도주식회사의 사설 철도로 1922년 천안역-온양온천역 구간을 시작으로 1931년 남포-판교 구간까지 단선(單線)으로 개통했다.      


당시 명칭은 충남선. 해방과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 장항선으로 개칭됐다. 군산선 일부를 흡수하면서 종착역이 익산으로 바뀌었다. 장항역은 그 사이 화물역으로 격하됐다가 2017년 모든 운송업무가 중단된다. 지금은 복합문화 공간 '장항선도시탐험역'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항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장항이야기뮤지엄’,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시공간’, 여행자와 주민에게 휴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도시탐험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마침 김선재 사진작가의 장항선을 달리던 비둘기호에 관한 사진전 ‘장항선 비둘기’가 열리고 있었다. 옥상 전망대에 오르니 장항이 한눈에 들어왔다. 장항을 가면 꼭 들를 곳이다.      


장항선 폐선로 끝에는 전차대라는 명물이 있다. 종착역에서 기차의 방향을 180도 돌리는 장치다. 기계식주차장 입구 공지의 방향전환장치와 같은 설비다. 장항역이 종착역이었다는 증거인 셈이다. 식당에서 자리가 비었다고 연락이 왔다. 일행들은 식사 후 문헌서원이란 곳을 둘러보기 위해 기사면 영모리로 향했다.     

 

목은 이색 제향 ‘문헌서원’서 해설에 감명 

목은 이색 영모영당본과 가정목은선생문집판 등을 보유한 문헌서원에서 이규선 충남도 문화관광해설사의 똑 부러지는 해설에 감명을 받았다. 신성리갈대밭은 색깔이 아직 제철이 아니었다.목은 이색 영모영당본과 가정목은선생문집판 등을 보유한 문헌서원에서 이규선 충남도 문화관광해설사의 똑 부러지는 해설에 감명을 받았다. 신성리갈대밭은 색깔이 아직 제철이 아니었다.

문헌서원은 이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한산 이 씨 명조 선현 8위를 제향 하는 서원이다. 서원은 지방 사학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과정. 기록상 1594년(선조 27)에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처음 이름은 ‘효정사(孝靖祠)’였다. 1611년(광해군 3)에 ‘문헌(文獻)’으로 사액을 받았다.      


제향인물은 목은 이색의 부친인 이곡, 이색 등 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노론 영수이자 주자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은 이색의 행적을 재평가한 인물로 ‘문헌서원’이라는 액호를 썼다. 서체에서 우암의 호방함과 강직함, 한편으론 날카로움도 엿보인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됐다가 1969년 지금 자리로 옮겨지었다. 목은이색영정도가 보물(제1215-2호)로 지정돼 있는 곳이다.      


이날은 이규선 충남도 문화관광해설사가 내방객을 맞아 ‘똑 부러지게’ 해설을 해 주셨다. 정확하고 절도 있는 해설 이면에는 이 해설사가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전력이 숨어 있다. 30년 가까운 직업군인 생활을 통해 체득한 ‘브리핑’ 내공이 저절로 드러난 명료한 해설이었다. 차가 떠날 때까지 주차장에 서서 인사하던 친절한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문헌서원 입구에는 한옥으로 된 문헌전통호텔이 있다. 한옥체험과 제철 먹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영모리부녀회가 힘을 합쳐 운영하는 곳이다. 하루 묵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계획한 일정 때문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차를 신성리갈대밭으로 돌렸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같대밭은 아직 제철이 안됐다. 갈대와 억새 순에 푸릇함이 남았고 갈대꽃이 아직 제대로 피지 않았다. 갈대순이 메마르고 꽃이 피어야 바람이 불 때면 서걱대는 소리와 햇볕을 잘게 부수는 갈대꽃의 춤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신성리갈대밭은 우리나라 4대 갈대밭 중의 하나다.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드라마 ‘킹덤’을 비롯해 TV드라마 ‘추노’, 영화 ‘자이언트’ 등도 이곳에서 찍었다.    

  

서천에는 풍광이 좋은 9경이 있다. 마량리동백나무숲해돋이, 신성리갈대밭, 한산모시마을, 문헌서원, 춘장대해수욕장, 국립생태원과 해양생물자원관, 금강하굿둑철새도래지, 장항송림산림욕장과 스카이워크, 유부도와 서천갯벌 등이다. 반나절 만에 5곳의 경치를 둘러봤으니 꽤나 알찬 여정이었다.    


장항과 군산을 가르는 금강 하구 넘어 서쪽 바다로 선홍빛이 번진다. 석양이 제법 좋을 것 같은 예감이다. 이번 투어를 기획한 김태휘 전국역사지도사모임 대표가 차를 급히 군산 오성산으로 몰았다. 서천을 넘어올 땐 동백대교를 넘었지만 군산으로 되돌아갈 땐 금강갑문 다리를 건넜다. 김 대표는 최근 표석 시리즈 네 번째 책인 ‘표석을 따라 서울을 걷다’를 출간한 표석 전문가다. 물론 프랑스에서 조경과 건축을 전공했지만 역사에도 해박하다. 아무튼 서천에서의 반나절은 그렇게 갔다. 


기대하지 않았다가 깜짝 놀란 소바 

   

충남도 최서남단 서천군 장항읍 신창리 옛 장항역사 근처 분식집서 만난 소바 가성비 집 ‘대박분식’. 수제비도 먹음직스럽다.충남도 최서남단 서천군 장항읍 신창리 옛 장항역사 근처 분식집서 만난 소바 가성비 집 ‘대박분식’. 수제비도 먹음직스럽다.

한편 이날 서천에서는 ‘대박분식’에서 소바를 먹었다. ‘대박분식’은 충남도 최서남단 서천군 장항읍 신창리 옛 장항역사 근처 분식집이다. 냉온 소바와 수제비가 인기가 많아 잘 팔리는 곳이다. 조 씨 자매가 옷, 침구류를 팔다가 몸이 아파 쉬었다가 7년 전 식당으로 전업했다. 지금도 식당 안엔 손수 놓은 수(繡) 제품이 인테리어로 사용되고 있고 '쪼갤러리'란 상호의 의상실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쪼’는 조 씨 자매의 성인 조 씨를 두 개 합친 모양이다. 우애가 남다르다는 것이 엿보인다. 이날도 동생이 잠시 나와 언니 일을 돕고 있었다. 조 씨 자매 모친이 국수장사를 했던 터라 요리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랬기에 의상실에서 외식업으로 전업을 결심하기 쉬웠다.       


소바 1인분에 네 타래가 나온다. 사리를 달라면 더 내준다. 쯔유가 너무 달지도 짜지도 않은 게 ‘아사달달’ 맛있다. 그냥 쓰지 않고 손님들 입맛에 맞게 레시피에 살짝 변화를 준 맛이다. 무, 대파 등 뭐든 더 달라면 듬뿍듬뿍 내준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 인심이 읽힌다. 특히 김치가 풋풋하니 맛있다. 소바와 김치가 잘 어울린다. 이 집서는 면발이 이러쿵저러쿵 논하면 안된다. 7000원짜리 소바에 대한 모욕이다.    

  

대신 무와 대파, 김가루, 와사비를 차례로 풀어가며 맛을 보는 나만의 쯔유를 만들어 먹는 재미를 느끼면 된다. 장항에서 소바 구경을 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매우 정겹고 따뜻한 한 끼였다. 오랜만에 7명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니 음식 맛이 배가 됐다. 디저트는 ‘어매니티 서천’의 청명한 가을 햇살과 맑은 바람으로 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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