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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바다를 통째로 먹는 계절

고소한 전어 이어 방어 꿈틀…굴·꼬막 등 패류도 제철

얼마 전 노량진수산물도매시장 새벽시장을 다녀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미 경매가 한창이었고 낙찰된 어류는 바로 옆 도매시장에서 날개돋인 듯 팔렸다. 식재료를 준비하는 식당 주인, 싸게 횟감을 사려는 일반인들로 새벽 도매시장은 생동감 있게 북적였다. 겨울로 가는 길목인 가을엔 유난히 바다생물 맛이 좋을 때다. 다양한 종류가 나올뿐더러 선도도 좋기 때문에 시장도 사람도 바다생물도 모두 활기 넘친다.      


전어 요리 명소 성북천변 ‘구룡포계절회집’ 

        

‘구룡포계절회집’의 전어 세꼬시(뼈째회)와 구이, 무침.[사진=음식사이트 종합]

이날 주로 많이 눈에 띄었던 것은 제철을 맞은 전어였다. 전어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란 관용적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가을을 대표하는 어종이다. 전어는 추석 전후해서 가장 많이 잡힌다. 이 무렵엔 어느 횟집엘 가나 전어 세꼬시(뼈째회)와 구이, 무침 메뉴가 등장한다. 가을 전어가 맛있는 이유는 지방 함량이 다른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생선이 가장 맛없을 때는 산란기 직전이다. 영양분이 알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전어는 5~7월 산란을 마치고 먹이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8월부터 살이 차올라 추석을 전후 해 기름진 맛이 절정에 이른다. 가을 전어는 초장보다는 된장과 잘 어울린다. 된장을 찍은 전어 두세 점을 쌈에 올리고 청양고추와 마늘 한 조각씩 얹은 후 한 쌈 꼬불쳐서 입안으로 밀어 넣고 우물거리면 단맛, 고소한 맛, 알싸한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성북천변 천주교돈암동성당 옆에 위치한 ‘구룡포계절회집’은 전어 철만 되면 식객들이 몰리는 전어요리 성지다. ‘조금 더 맛있게, 조금 더 청결하게’가 이 식당 모토다. 전어는 잔가시가 많이 때문에 뼈 채 썰어 먹는 세꼬시를 할 때는 칼을 비스듬히 넣는 ‘어슷썰기’를 해야 한다. 이 식당은 어슷 썰기를 한 전어를 먹음직스럽게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어구이는 씨알이 제법 굵다. 구이는 맨손으로 집고 뜨거울 때 뜯고 발라먹어야 제 맛이다. ‘전어 대가리는 깨가 서 말’이랄 정도니 그냥 버리면 손해가 아닐까. 상호에 구룡포가 들어간 곳이라 과메기도 유명하다.      

             

대방어 철 되면 장사진 ‘바다회사랑’...혜화수산’도 가 볼만  


대방어 맛집 ‘바다회사랑’과 ‘혜화수산’의 개성 있는 담음새.

마치 전차 포탄처럼 강해 보이고 나선형으로 미끈하게 잘생긴 물고기, 대방어 철이 왔다. 물 좋은 방어의 몸 빛깔은 등 쪽은 어두운 청색, 배 쪽은 은백색이며 몸 중앙부에는 희미한 황색 세로띠가 있다. 대방어는 일반적으로 9kg 이상 되는 대물을 말한다. 5kg까지를 소방어, 5~8kg 정도를 중방어로 분류한다. 노량진수산시장 같은 곳에서 대방어를 고르는 팁은 몸매가 날렵한 것보다 배가 불룩한 것이 좋다. 그만큼 뱃살에 기름이 차 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또 입 꼬리를 잘 살펴서 방어와 부시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방어는 입 꼬리가 직각 모양, 부시리는 둥글게 발달했다.        

   

방어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2월 산란까지 몸에 영양을 축적하면서 기름져 간다. 그래서 11월부터 2월까지가 가장 맛있는 시기다. 일반적으로 바다 생선은 육류나 민물고기에 비해 맛이 풍부하다. 이유는 바닷물과 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감칠맛 나는 아미노산을 축적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선뿐 아니라 바다생물 모두가 그렇다.           


방어는 비타민D가 풍부한데, 이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다. 식약처 조사 결과 우리나라 남성 86%, 여성 93%가 비타민D 결핍이다. 비타민D는 면역력 증가와 우울증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 특히 더 부족해지기 때문에 겨울 방어는 꼭 필요한 영양소이기도 하다.    

            

겨울 대방어회 하면 손꼽히는 집이 있다. 서교동과 연남동에 있는 전통의 강자 ‘바다회사랑’이다. 한 겨울 ‘웨이팅 지옥’을 맛보고 싶다면 피크타임 때 ‘바다회사랑’을 가란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다. 이곳의 특징은 둥그런 큰 접시에 대방어를 부위별로 먹음직스럽게 탑처럼 쌓아주는 것이다.       

          

커다란 레몬 슬라이스 두세 쪽을 대충 회 위에 올려서 내오는 것은 트레이드마크다. 대방어 살을 다른 데에 비해 두툼하게 썰어 내온다. 배꼽살의 경우 아삭하고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다. 배꼽살은 대방어의 훈장 같은 부위다. 소방어, 중방어에서 느낄 수 없는 맛이기 때문이다. 밑반찬으로 내주는 마른 김을 깔고 방어 한 점, 묵은지, 밥, 날치알을 차례로 조합해서 싸 먹으면 별미 식사가 되기도 한다.          

 

창덕궁 버금가게 단풍이 아름다운 창경궁에 들렀다가 근처 ‘혜화수산’을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혜화수산’서는 대방어가 날렵하게 해체된 채 접시에 가지런하게 담겨 나온다. 가마살, 배꼽살, 뱃살, 등살, 사잇살, 꼬리살 등 거의 전 부위를 맛볼 수 있다. ‘바다회사랑’ 사랑보다 덜 붐비고 야간 개장을 하는 창경궁의 야경 감상 옵션이 있다. 좀 더 좋은 와사비를 요청하면 가져다준다.        

    

생굴과 굴보쌈은 헌법재판소 근처 ‘천하보쌈’  

 

‘천하보쌈’은 생굴 단품도 팔고 모둠보쌈을 시키면 겨울철에는 굴이 곁들여 나온다.

11월부터는 굴, 꼬막, 홍합 등이 본격적인 제철이다. 이들은 날것일 때 맛이 더 뚜렷하다. 이러한 맛은 외부 염도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몸속에 축적한 맛 물질 때문이다. 굴을 비롯한 연체동물 대부분은 아미노산을 이용해 삼투압 균형을 잡는다. 껍질이 쌍을 이뤄진 쌍각류는 글루탐산염이 풍부하다. 특히 이들은 에너지원을 지방으로 저장하지 않고 아미노산 종류로 저장하기 때문에 단맛이 난다.       

    

서양에서는 영어의 알파벳 알(R)이 없는 달은 굴을 먹지 않았다. May, June, July, August 등 5월부터 8월까지다. 이 시기는 산란기라 영양분도 줄고 독소가 생긴다. 게다가 계절로 치면 동서양 공히 더운 시기다. 가공하지 않은 생물은 변질되기 쉬운 때라 먹기를 자제했다는데 나름 재미난 해석이다.      

     

서양 사람들은 굴을 ‘바다의 우유’, 우리나라서는 ‘바다의 인삼’이라고 했다. 몸에 좋은 강장제란 시각에서 해석한 것이다. 희대의 바람둥이 카사노바, ‘정력’적인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한 나폴레옹이 모두 굴 마니아였단 사실은 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회자된다. 실제로 굴 안에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생성에 관여하는 아미노산과 아연(Zn)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이밖에도 셀레늄, 철분, 칼슘은 물론 비타민 A‧D 등이 풍부한 영양의 보고다.          


생굴을 석화로 따로 파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굴 보쌈, 굴전, 굴찜 등 요리로 즐긴다. 재판소 인근 몽양 여운형 집터 표석을 지나 창덕궁 쪽으로 넘어가면 용수산 못 미처 시원한 간판을 이고 선 ‘천하보쌈’이 나온다. 낮엔 보쌈정식과 2인분 낙지불고기가 인기인 보쌈전문점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엔 굴보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생굴만 따로 팔기도 하고 모둠보쌈을 주문하면 보쌈에 겨울엔 굴, 여름에는 삶은 낙지를 곁들여 준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밑반찬 맛도 정갈하다. 다만 100% 좌식이라 불편을 느낄 수도 있다.          

벌교 참꼬막 맛보려면 ‘순천집’과 ‘순천만’ 

남도음식전문점 노량진 ‘순천집’의 참꼬막과 생굴.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등으로 나뉜다. 이 중 참꼬막이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고 전라남도 벌교서 채취한 것을 으뜸으로 쳤다. 부채꼴 모양의 주름(방사륵) 개수로 꼬막을 구분한다. 참꼬막은 17~18개, 새꼬막은 32개, 피꼬막은 40여 개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듬해 봄 알 품기 전까지가 가장 맛이 오르는 시기이다. 참꼬막은 보름 무렵에 비해 그믐 때에 살이 많이 오르고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노량진 유한양행 빌딩 옆 남도음식전문점 ‘순천집’은 벌교 참꼬막이 유명한 곳이다. 데친 참꼬막 껍질을 제거하면 새까만 멍울이 보인다. 새꼬막과 피꼬막에서는 볼 수 없는 참꼬막 만의 특징이다. 양념장 없이 그냥 먹으면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대치동에 있는 남도음식전문점 ‘순천만’은 찬바람이 불면 꼬막 정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데친 참꼬막과 함께 꼬막전, 꼬막무침 등 꼬막요리와 매생이탕, 양태찜, 기본 반찬이 제공된다. 꼬막 이외에도 굴전, 굴미역국 등 다양한 제철 남도음식을 접할 수 있다.              

대치동 ‘순천만’의 참꼬막과 굴전. 갑오징어숙회초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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