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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미식 도시가 아니라 과식 유발 도시

천년예향 전주 1박2일 문화유산답사와 맛집탐방기<1>

전주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 전문점 ‘전주왱이집’

2차는 전주 독특한 식문화 가맥 효자천변 ‘도예’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당일치기, 1박2일 등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한 도시를 돌아보는 것이 무리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천년 예향 전주는 짧은 시간 여행이 가능한 곳이다. 역사 문화자원이 인접해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한옥마을을 정점으로 경기전(어진박물관), 전주제일성 풍남문, 전동성당, 전라감영, 오목대, 이목대, 전주향교, 풍패진관(전주객사) 등이 반나절 도보로 돌아볼 수 있는 거리에 몰려있다.    

       

필자는 지난 5일부터 1박2일간 전주 구도심 일대와 용머리고개를 넘어 완산구 효자동에 있는 서도프라자까지 전 구간을 도보로 다니면서 전주의 속살 같은 골목과 역사문화공간을 접했다. 가급적 도시의 실핏줄 같은 공간인 골목을 걸었고 음식은 실패가 두려워 검증된 식당을 찾았다. 유명세에 걸맞은 명불허전인지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광명역을 출발한 KTX는 1시간 40여분 만에 전주에 도착했다. 기차를 이용해 전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처음이었다. 전주역은 두 차례에 걸쳐 자리를 옮긴다. 1914년 당시 전주군 이동면 상생리 25번지(현 태평SK뷰아파트)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다가 1929년 전주군 이동면 노송리 568번지(현 전주시청)로 역사를 신축 이전했다. 이를 다시 1981년 전라선 전주구간 이설로 현 위치인 덕진구 우아동3가 235번지에 역사를 신축하고 옮겼다. 옛 전주역에 들어선 시청은 요즘 신축 이전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전주역에서부터 지역 일간지인 ‘전주매일’까지 걸었다. 전주로 초대한 지인이 전주매일에 방문할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겸사로 들른 것이다. 전주매일은 지역 일간신문 편집국장이 신문사를 나와 만든 탄탄한 지방지다. 매일 16면을 발행하는 종합지로 전주를 비롯해 무주, 진안, 장수, 정읍, 익산 등 전북지역 주요 도시에 광역 취재망을 두고 있다.       

    

개교 100년 넘은 명문 전주고와 풍남초교      

       

전주고 교정에 있는 한국전쟁 당시 전주고 학도병을 기리는 충혼비와 그 뒤로 보이는 고풍스러운 벽돌조 건물인 유도관. 풍남초등학교 학교명패와 그것을 품고 있는 오래된 교문 기둥.

 전주매일에서 ‘다방커피’ 한잔을 마시고 전주고등학교 교정과 풍남초등학교를 둘러봤다. 지인이 전주고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서는 흔히들 ‘전고’라고 부르는 전주고는 매우 넓은 부지에 상당히 많은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전주고의 전신은 1919년 개교한 관립 전주고등보통학교다. 해방 후 6년제 전북공립중학교로 바뀌었다가 1951년 3년제 고등학교로 개칭했다.           


교정에 들어서자 충혼비 뒤로 고풍스러운 적색 벽돌 건물이 보인다. 이 소강당은 1940년 지어진 건축물로 전북도 등록문화재 1호다. 지금은 유도관으로 사용 중이다. 내부에는 기둥이 없어서 강당이나 운동시설로 적합하고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전주고와 같은 해 개교한 풍남초의 1936년 세워진 강당 또한 도 등록문화재 2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학교를 둘러본 후 ‘슬픈 목가(牧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의 목가시인 신석정 시인이 살았던 고택엘 가봤다. 시인은 1907년 전북 부안 출신으로 1952년(46세)에 이곳으로 이사해 옥호를 비사벌초사로 명했다, 전주고 국어교사와 전북대, 영생대에서 시론을 가르쳤다. 자연을 사랑한 목가시인이면서 창씨개명 거부와 절필,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에 대항해 시를 쓴 저항시인이기도 했다.            


어스름이 몰려와 도시가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릴 시간이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물색했다. 2년 전 전주행이 떠올랐다. 그때는 완산구 교동의 ‘화순집’엘 갔었다. 1944년 문을 연 노포로 오모가리(뚝배기의 전주 방언)에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피라미, 새우 등과 시래기, 들깻가루, 양념을 듬뿍 넣어 끓여 낸 오모가리탕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이번에는 전주의 대표적 음식 중 하나인 콩나물국밥으로 정했다.        

   

전주콩나물국밥 대표주자 ‘전주왱이집’     

   

‘전주왱이집’ 콩나물국밥 한상과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에 찾은 식당 외관

전주에는 도시 이름이 들어간 대표음식이 여럿이다. 전주비빔밥을 위시해서 전주콩나물국밥, 전주한정식, 전주가정식백반, 전주막걸리한상, 전주가맥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순대국밥, 오모가리탕, 풍년제과가 거들어 미식 도시 전주를 완성시킨다. 이들 메뉴를 1일 3식 기준 한 가지씩 맛보려고만 해도 꼬박 이틀이나 3일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진주는 미식의 도시를 넘어 과식의 도시가 된다. 맛에 흠뻑 취하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전주 생 지인은 골목을 걸으며 이런저런 설명을 곁들였다. 도시 유람의 묘미는 바로 스토리텔링에 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은 콩나물국밥 전문점인 ‘전주왱이집’에 다다랐다. 명성과는 달리 비교적 한산한 금요일 저녁이다. 여전히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식당가를 어둡게 짓누르고 있는 듯했다. 종업원이 따로 주문을 받을 필요가 없는 콩나물국밥 단일 메뉴집이다. 모주와 오징어 사리를 추가할 것인지 정도만 덧붙이면 주문 완료다.           

왱이집 상호는 벌 나비의 날개 짓 소리에서 따 왔다. 손님이 벌떼처럼 왱왱 거리며 오얏나무(李) 집으로 몰려오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육수는 미역, 다시마, 무, 고추, 명태, 멸치, 파 양파, 마늘, 콩나물에서 우러나오는 각각의 맛이 어우러져서 경쾌하게 시원하다. 은근히 맵싸한데 ‘뚜러뻥’ 같이 시원한 한방이 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 강자인 ‘현대옥’의 육수 맛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콩나물국밥은 전주 남부시장식으로 제공된다. 계란을 수란으로 제공하면 남부시장식, 뚝배기에 올리면 끓이는 식으로 구분한다. ‘현대옥’에서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만 ‘전주왱이집’은 따로 옵션 없이 수란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친절하게 수란 먹는 방법을 곳곳에 적어 놨다. 국물을 서너 숟가락 수란에 떠 넣고 김을 잘게 부숴서 섞어 먹으란다. 입맛을 돋우고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한다는 친절한 설명이다.                 


콩나물국밥은 토렴식으로 펄펄 끓이지 않고 먹기 좋게 뜨거운 채로 나오는 게 특징이다. 콩나물의 아삭 거리는 식감을 고려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독특하게 추가 주문 메뉴로 오징어사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사리를 추가하지 않은 보통 국밥에 오징어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김치, 깍두기는 국밥과 잘 어울리는 숙성도를 가지고 있다. 메뉴는 오로지 국밥 한 가지다. 전주에 가면 이곳엘 꼭 한번 가보라는 사람이 생각났다.           


식후엔 동문길을 따라 삼양다방, 홍지서림 등에 얽힌 추억을 들으며 풍남문으로 향했다. 풍남문은 전주부의 4대문과 성벽 중 유일하게 남은 남쪽 문이다. 전주부는 고려 공양왕 원년인 1388년에 축조됐다. 전주는 전라도와 제주를 관할하는 전라감영이 있던 도시이자 조선을 세우고 통치한 전주 이 씨 씨족의 발상지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진품 어진이 있는 경기전(慶基殿)이 성내에 있어서 중요성을 더한다.               

지금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모두가 훼철돼 흔적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성벽이 지난 자리는 대부분 도로가 됐다. 다행히 지적도상으로 성벽 자리가 남아있기 때문에 지도상 전주부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다. 풍남문의 이름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인 풍읍 패현에서 따온 것이다. 이를 풍패로 부르기도 하는데, 조선을 세운 이성계의 본관인 전주 역시 조선 왕조의 출발지란 의미에서 풍패라고 불렀다.           


풍남문은 풍패의 남쪽 문이라고 해서 풍남문, 서문은 패서문이라고 불렀다. 안쪽 현판에는 '호남제일성'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편액 글씨는 1842년(헌종 8)에 부임한 감사 서기순이 쓴 것이다. 서울의 종각처럼 제야의 종을 치는 행사도 한다. 풍남문을 지나 용머리고개로 발길을 옮겨 효자동1가에 있는 서도프라자로 향했다.           

가을밤 재즈 음악회 뒤풀이는 가맥      

음악회 뒤풀이로 가맥집 두 곳을 들렀다. 가맥포차 ‘도예’의 정선숙 대표와 골뱅이무침, 동태전. 먹태는 펀펀포차.

서도프라자 10층에 위치한 문화공간 이룸에서는 예향의 도시 가을밤에 어울리는 재즈 음악회가 준비돼 있었다. 러스트(LUST)란 예명의 재즈 보컬 최홍서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준비한 ‘German Leider’란 음악회다.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바흐, 바그너 등 독일 생 굵직한 작곡가들의 곡을 두 사람이 협업해 재즈로 편곡하고 목소리를 입혔다.           


버클리 음대 장학생다운 현란한 건반 테크닉을 가진 조윤성과 가을 감성이 충만한 보컬 최홍서의 조화는 가을밤을 그윽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최홍서의 스캣(재즈에서 가사 대신 즉흥으로 읊조리는 것)은 한마디로 ‘감미로운 폭풍’이다. 재즈 감성과 가을이란 계절이 잘 어울린 무대였다. 전주비빔밥처럼 클래식을 재즈로 잘 버무린 전주의 밤이 깊어갔다. 공연을 즐긴 청중들과 뒤풀이를 위해 가맥집으로 향했다.            


1차 가맥집 ‘펀펀포차’에 이어 2차로 간 가맥포차 ‘도예’. 상호가 예사롭지 않다. 정선숙 대표는 골뱅이와 소면을 손을 무치면서 ‘도망간 예쁜 마누라’의 준말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도예’에서는 전주에서나 가능한 압도적 가성비와 맛을 선사받았다.      


가맥은 ‘가게 맥주’, 또는 ‘가정용 맥주’의 준말이다. 1980년대 전주에서 생겨난 독특한 식문화의 한 종류다. 낮에는 슈퍼지만 밤에는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파는 형태다. 맥주를 소매가로 마시기 때문에 일반음식점보다 저렴한 게 매력이다. 2015년부터는 매해 가맥축제가 열릴 정도로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전주의 밤이 깊어졌다. 그 사이 꽤나 과식했다. 소화도 시킬 겸 다시 걸어서 용머리고개를 넘어 숙소인 구도심 전주관광호텔로 향했다. 다음 칼럼에 2부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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