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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맞은 김중업과 그를 품은 안양의 맛집

원양 참치선단 직영 ‘단골참치‘ㆍ영산포 홍어 맛 그대로 ‘나주홍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올해가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김중업은 일본 요코하마 관립 공업 고등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 학교는 대부분의 일본 학교가 건축공학과인데 반해 유일하게 건축학과를 가진 학교였다. 당시 주임교수로는 에꼴 드 보자르 출신의 나카무라 준페이가 재직하고 있었다. 김중업은 1942년부터 마츠다 히라다 사무실에서 근무한 후 1944년 귀국,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1946년 월남, 미군 24군단 사령부에서 설계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서울대 공대 전임강사를 지내다가 1952년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예술가대회에 참석차 베니스로 갔다. 이곳에서  프랑스 파리 출신의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와 운명적인 만남을 한다. 르코르뷔지에는 세계예술가회의 명예위원으로 참석한 터다. 대회가 끝난 후 김중업은 귀국하지 않고 르코르뷔지에의 사무실 설계원으로 1952년부터 1956년까지 약 3년 2개월 간 근무하게 된다.     


김중업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선진적인 현대건축을 배웠다. 이후 1956년 귀국해 서울 종로구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한 뒤 르코르뷔지에에게 배운 내용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재해석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사람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김중업은 그의 이름으로 설계사무소를 차린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건축가였다.      


김중업은 예술 기반의 건축을 추구했다.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김중업 건축 작품전’이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건축가의 작가적 입지를 알리는 데 힘썼다. ‘김중업 건축 작품전’은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한 후 1년가량이 지난 시점인 1957년 4월에 열렸다. 당시 건축 작품을 전시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전시 감상이 언론에 실리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4월 19일 자 4면 머리기사로 ‘신선한 현대적 감각’이란 제목의 이경성의 감상문을 실었다. 이경성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미술평론가다. 이경성은 이틀에 걸쳐 상‧하로 감상을 내보내는 등 건축가의 작품전을 미술평론가가 들여다본 희귀한 기록을 남겼다. 물론 글은 매우 현학적이고 한자가 뒤섞여 문해가 쉽지 않다. 요는 한국의 근대건축이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이 식상하던 차에 김중업의 작품은 귀한 작품이란 것이다.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러 함께 국가 개발을 제안했지만 김중업은 거절했다. 이후 광주대단지 사건을 비판한 필화로 1971년 프랑스로 추방당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에서 머물면서 설계 작업을 계속했다. 세실극장이 있는 성공회 별관 건물의 설계도 그런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 도면을 우편으로 받아서 한국의 김중업설계사무소 직원이 감리와 건축을 했다. 김중업의 처남이었던 안병의가 세실극장 현장에서 감리와 건축을 지휘했을 것이라고 추측이 있다.     


10.26으로 인해 박정희 서거 후 김중업은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첫 해에 부산대학교 본관, 명보극장(현 명보아트홀), 건국대학교 도서관(현 언어교육원)을 설계했다. 또 인천해무청사 등의 계획안을 진행했다. 이때 건축계는 그에 대해 “한국전쟁 후 부족한 물질적 기반 위에 세워진 한국 건축계의 한계를 넘어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옛 유유산업 건물 김중업건축박물관 

  

현대 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과 그가 설계한 옛 유유산업 건물. 지금은 안양시에서 매입해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쓰인다.

그의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이다. 안양시는 김중업이 설계한 유유산업 안양공장을 리모델링해서 박물관으로 꾸몄다. 유유산업 공장은 그의 초기 작품이다. 공장건물에 조각 작품을 접목시키는 등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지금은 그의 작품 중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 교육관, 수위실 등이 남아 있다.      


부지 내에는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 등 문화재가 있다. 4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안양(安養)이란 지명 유래가 된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기와가 출토됐다. 유적은 공장시설 밑에 위치해 있고 외부 대지 아래에도 묻혀 있다. 여기에 김중업의 건축유산까지 시차를 두고 수직적으로 유적들이 중첩돼 있다. 그래서 발굴과 보존, 복원이라는 정반대 입장이 충돌하는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이 들어선 부지는 과거 50년 간 유유산업이란 제약회사 공장으로 사용되어왔다. 김중업의 건축유산이 남아 있는데다가 2009~2010년 사이 진행된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안양사 위치와 지층, 유적이 발견됐다. 계획대지인 유유산업 부지에는 보물 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경기도 유형문화재 164호인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남아있어 관련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평가 받아왔다. 그리고 1959년에 지어진 건축물부터 1998년 개축한 건축물까지 다양한 시기에 걸쳐 증개축 된 19개 동의 산업 시설이 있었다. 

    

2007년 안양시는 유유산업으로부터 안양 공장 부지를 매입했다. 안양박물관, 김중업건축박물관을 비롯한 복합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전 2회에 걸친 문화재지표조사가 이뤄졌다. 2009년 6월 18일부터 10월 6일까지 실시된 1차 발굴조사에서 강당지와 승방지, 동회랑지, 남회랑지 등이 확인됐다. 2010년 6월 8일부터 진행된 2차 발굴조사에서는 금당지, 전탑지, 답도, 중문지 등이 추가로 확인됐다. 두 차례 발굴조사를 통해서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위치한 지역이 안양의 지명유래가 된 고려 태조가 세운 안양사라는 것을 실증했다. 아울러 중문, 전탑, 금당, 강당, 승방으로 이어지는 안양사 가람배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련의 조사를 마치고 들어선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지난해 말 다시 한 번 1층 리모델링을 시행했다.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 때문이다. 구랍 16일부터 ‘김중업, 더 비기닝-건축예술의 문을 열다’란 주제로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이 전시는 청년 김중업이 예술로서의 건축관을 확립한 국제적 여정 및 초기 주요 작품을 조망하고 건축모형, 도면, 자필엽서, 스케치, 브로슈어, 사진 등 300여점 유물을 한 곳에 모아 보여주고 있다. 또 김중업의 뉴욕 세계박람회 한국관 자료과 주한 프랑스 대사관 3D 영상을 최초로 공개하고 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청년, 꿈을 키우다’에서는 김중업이 평양 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現 요코하마국립대)에서 수학하며 예술로서의 건축관을 다진 후, 해방 후 한국에서 문화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던 여정을 확인할 수 있다.     


2부 ‘건축가의 여정과 도약’에서는 김중업이 1952년 베니스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 한국 대표로 참여한 후, 파리 아틀리에 르코르뷔지에에서 서구 근대건축 실무를 익히고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선보인 1950년대의 건축 작품과 김중업 건축 작품 전시회(1957)를 소개한다. 3부 ‘한국 건축예술을 대표하다’에서는 김중업이 서구 근대 건축과 한국 전통문화를 재해석하여 제시한 한국 현대건축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는 지난 22일 박물관을 찾아 김태원 박물관장의 안내로 전시물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원양선단 운용사가 체인사업 벌여

    

‘단골참치’는 원양선단을 운용하는 두성튜나가 체인사업을 하는 곳이다. 안양점은 그 중 직영점이다.

관람을 마치고 일행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만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향했다, 필자에게 좋은 기억을 남긴 안양 식당에 여럿 있다. 그 중 한 곳은 칼럼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단골참치’란 곳이다. 이곳을 처음 알았을 때는 한 곳뿐이었는데 지금은 서울 사당을 비롯해 의왕, 안산, 용인, 광명, 군포 등에도 생겼다. 가맹점을 속도감 있게 늘릴 수 있는 배경은 본사인 두성튜나가 원양선단을 운용하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질 좋은 참치를 높은 가성비로 맛볼 수 있다.     


참치는 일반적으로 원양어선을 이용해 6개월에서 1년 이상에 걸쳐 잡는다. 시중 유통되는 참치 대부분이 선내에서 급속 냉동시키는 냉동 참치다. 중서부 태평양은 세계 최대 참치어장으로 알려져 있다. 총 어획량의 50%가 이곳에서 잡힌다. 우리나라 전체 어획량의 90% 이상이 이 해역에서 나온다. 단골참치는 참다랑어와 눈다랑어, 황새치를 주로 사용한다. 참다랑어 배꼽살, 뱃살, 적신 등 단품을 추가할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매력은 썰지 않은 바(bar) 형태 냉동 참치를 구입할 수도 있다. 집 냉동실에 넣어 두고 조금씩 썰어 먹을 수 있다.    

 

냉동 참치는 30∼40℃ 정도 되는 온수에 소금을 풀어 염도를 3~4% 정도로 맞춰 녹이면 된다. 물에 소금을 넣는 이유는 해동 시에 맛과 성분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소금을 넣지 않으면 체액이 밖으로 흘러나와 맛이 변한다. 수온이 너무 높아도 맛이 없어진다. 코로로가 장기화 되면서 테이크아웃 전문인 ‘단골참치’의 단골손님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외식업의 성패를 두고 흔히들 ‘운칠기삼’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단골참치’는 운이 좋았다.  


홍어 강세인 안양 동서 분할

   

안양시 박달동 위치한 ‘나주홍어’는 정갈한 홍어삼합이 인기 있는 곳이다.

안양에는 100년 가까이 된 안양중앙시장이 있다. 시장 근처엔 홍어집이 유명한 곳이 꽤나 많다. ‘흑산도홍어’, ‘신안홍탁집’이 나란히 영업하면서 시장 서쪽을 지키고 동쪽으로는 ‘나주홍어’가 동서 분할을 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안양3대 홍어집이라 한다. 흑산도, 신안, 나주 등 지명이 제각각인 것도 재미있지만 맛도 조금씩 다르다.      


홍어는 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고 신선한 회로 먹어도 쫄깃하고 담백하지만 삭혀 먹으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어종이다. 특히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먹는 삼합이 유명하다. ‘나주홍어’ 집 삼합은 정갈하고 차분하다. 그러나 입안에서는 맛이 요동치며 알싸하게 다가온다.       


나주 영산포는 목포와 달리 삭힌 홍어가 강세인 곳이다.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영산포에 홍어가 발달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왜구 때문이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섬 주민들이 강을 따라 뭍으로 거슬러 피란을 해서 정착한 곳이 나주 영산포였다. 안양의 ‘나주홍어’도 사전에 주문하면 알싸하게 매운 삭힌 홍어를 맛볼 수 있다.      


이번 주말은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김중업건축박물관의 기획전시도 보고 가성비 좋은 안양의 참치나 홍어 맛도 보는 일정,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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