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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폰 사진서 부활한 구로역 맛집

오미크론 확산 시대 외식을 삼가는 맛칼럼니스트의 고육책

평양냉면 전문점으로 탕반도 수준급인 ‘평양옥’      

음식 맛과 손님응대 품위 겸비 ‘복먹고복받고’

‘구로맛골목’ 깊숙한 곳 돼지볼살 전문 ‘불통뽈’     


필자의 맛집 칼럼은 한 대중음식 애호가의 호구지책 기록이다. 고백하건대 특별한 것이 없고 다만 한 끼 식사를 하면서 느꼈던 식당 분위기와 식당의 미덕인 맛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얕은 간단한 기록이다. 거기에 식당이 있는 곳의 땅의 역사와 음식, 식재료에 대한 가벼운 고찰이 더해져서 완성된다.      


매주 목요일자 ‘맛집기행’이란 섹션이 정해져 있어서 한 호 쉬고 가는 요령을 피우기가 힘들다. 호구(糊口)를 빙자해 끊임없이 외식을 해야 하는 숙명이다. 요즘같이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일 때는 가급적 외식을 삼가는데, 그래서 글감 부족으로 고민이 많다. 이럴 때 고맙게도 그동안 간택(?)되지 못하고 지나쳤던 맛집이 모바일 폰 속에 사진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치 주전선수 부상으로 교체선수가 투입되는 운동경기처럼 이번 칼럼은 그간 모바일폰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쟁여 있던 교체선수들을 모아봤다. 절대 후보선수가 아니고 교체선수란 점을 밝힌다. 필자가 믿고 일식(一食)을 권하는 곳이다. 물론 땅의 역사도 살짝 곁들인다. 마치 애피타이저 같은 것이라 여기면 좋겠다.  

    

AK그룹 창업지 식당가서 발군 

      

‘평양옥’ NC신구로점의 다양한 메뉴들.

지하철1호선 구로역 동편에 NC신구로점이 들어서 있다. 원래 이곳은 AK백화점이던 곳이다. AK의 전신은 애경이다. 백화점이 들어서기 전에는 애경유지공업 공장이 있었다. 창업주는 무역회사 대륭산업과 전략수출품목인 중석을 생산했던 옥방광업 고 채몽인 회장(현 장영신 회장 부군)이다.      


1954년에 지금 자리에 애경유지를 세워 비누를 생산해 기반을 닦았고 1966년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주방세제 트리오로 대박을 쳐서 승승장구했다. 최근 들어 실적이 주춤하자 몸집을 줄이는 과정에서 AK구로점을 이랜드그룹에 매각해 지금은 간판이 NC신구로점으로 바뀌었다. 장 회장의 마음은 아마도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을 부영그룹에 매각한 삼성 심정과 비슷했으리라.      


이랜드에 매각되고도 한동안 문을 열지 않고 있던 이곳은 2020년 9월11일 전격적으로 오픈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오픈발’도 잠시 주춤하는 듯했지만, 근처에 쾌적한 쇼핑과 외식공간이 없기 때문에 선전하고 있다는 평이다. 특히 지하1층과 6층 식당가는 구색이 좋아 지역민들이 애용하는 곳이다. 이랜드 외식사업부가 직영하고 있는 이랜드이츠가 지하1층 식품관 옆에서 대형피자와 파스타, 핫도그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면서 외식고객 발길을 잡고 있다.              


지하1층은 델리그라운드로 회전초밥 전문점 도쿄이찌바, 스키야기·샤브샤브점 옥소반, 카레전문점 델리커리, 북촌사람들의 ‘원투펀치’ 제주면장 & 북촌손만두, 한옥마을 전주 비빔밥, 팔도음식을 내놓는 본우리반상, 오규당, 이름 없는 파스타, 롸버트치킨, 스테이크어스, 청담동마녀김밥, 에그드랍, 스트릿츄러스, 송사부 수제쌀고로케 등이 입점해 있다. 이들 중 옥소반은 지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경량급 스키야키, 샤부샤부 전문점으로 혼밥 하기 알맞은 곳이다.      


6층 식당가에는 일본 가정식 요리점 시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을 받은 황생가칼국수 분점, 이랜드 브랜드로 가맹사업을 하는 돈가스전문점 테루, 한옥집 김치찜, 중식 유방영 셰프의  명장반점, 평양냉면 전문점 평양옥, 비빔밥 전문점 궁채, 낙지요리 프랜차이즈 용호낙지, 베트남쌀국수 전문점 미분당 등이 들어서 있다. 6층 역시 외식 구색 라인업이 좋다. 각국 음식을 골고루 배치했다.      


이들 중 ‘평양옥’은 과거 부벽루에서 이름을 바꾼 곳으로 필자가 NC신구로점 평양냉면을 한번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로 종종 해장을 하거나 손님과 함께 가는 곳이다. 여럿이 가야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맛있는 집은 가급적 혼자 가는 것을 피한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동행이 있어서 평양냉면 이외에 몇 가지 메뉴를 접했다.     


다시 한번 소개하는 이유는 평양냉면 전문점의 탕반 메뉴 라인업이 매우 잘 갖춰진 곳이다. 봉피양, 배꼽집 등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지역에 걸맞게 가격을 가볍게 한 탕반과 세트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혼자 방문해서 맛보지 못했던 평양냉면과 석갈비 궁합을 맞춰봤고 다른 날엔 곰탕 베이스에 시래기를 넣은 한우장터국밥과 여기에 매콤한 다진 양념을 넣어 끓인 매콤한우국밥 등을 차례로 호출했다.      


몇 번 더 방문하면서 어복쟁반과 평양손만두, 들기름냉면도 섭렵했다. 평양옥 메뉴는 얼추 거의 다 맛본 듯하다. 탕 메뉴에 따라 나온 밥이 윤기가 제법 번쩍이는 게 좋은 쌀을 쓰거나 아니면 밥을 잘 짓는 곳이다. 맛을 보니 적당히 좋은 쌀로 맛있게 밥을 만들었다. 탕반 요리는 국물뿐 아니라 밥이 맛있어야 완성된다. 아울러 김치와 깍두기 같은 밑반찬이 뒷받침을 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최고의 맛집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친절한 응대로 기분 좋은 식사  

       

NC신구로점 맞은편 ‘복먹고복받고’는 음식 맛과 친절을 모두 잡은 곳이다.

구로 지역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연초에 아침나절 해장하러 갔다가 복국이 너무 시원해 반주 한잔 한다는 것이 역으로 무장해제 당한 ‘복먹고복받고’란 재미난 상호를 가진 복집이 떠올랐다. 모바일폰을 뒤져보니 ‘평양옥’엘 늘 같이 갔던 선배와 지난 1월4일에 함께한 흔적이 있다. 이 식당은 NC신구로점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 근처에 해장을 시원하게 할 만한 장소를 검색하다가 만난 곳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영업을 시작했으니 와도 좋다고 한다. ‘얼씨구나’ 하고 선배와 만나 들렀더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뿔싸 좀 전에 전화한 곳은 영등포 본점이었던 것이다. 당황했지만 친절한 응대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그리고 기민하게 주방이 움직여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식사가 나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원래는 10시30분에 영업 개시다. 그러나 이날은 9시에 상이 차려졌다. 


가성비 좋은 밀복냄비지리탕에 미나리를 추가로 시켜서 시원하고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음식으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지만 접객이 편안하고 진정성이 느껴졌다. 무려 1시간 반이나 일찍 들이닥친 손님을 무안하지 않게 자연스레 맞아주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네이버 플레이스에 소개 글을 보면 ‘귀하를 모시게 된 것을 저희 복먹고복받고 직원 모두는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외식문화의 선두자가 되고자 최고의 품질만 고집하고 있으며, 또한 이를 최고의 맛으로 평가받고자 저희 전 직원 일동은 항상 음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드리고자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문장이 매끄럽진 않지만 맛도 맛이지만 정성과 친절을 앞세우겠단 각오가 느껴진다.      


‘복먹고복받고’는 영등포구청역 부근서 20년 이상 업력을 가진 정통 복요리 전문점이다. 현재 구로점과 논현점 등 점포를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본점 강성곤 대표는 ‘100-1=0’ 철학으로 유명하다. 본점 문을 들어서면 커다란 목판에 새겨 놓은 ‘이상한’ 산수다. 이는 손님이 99번 맛있게 먹었어도 한번 실망하면 0점이란 의미다. 최고의 복요리를 내놓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구로점은 지금은 비록 상권이 애매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A급 상권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부근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직영 구로정비사업소 부지에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비 핵심자산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및 투자재원 확보의 일환으로 1만 8089㎡(5471평) 부지를 1800억원에 매각했다.      


매입사인 현재의 피아이에이자산운용은 부지 매입 당시부터 해당 부지를 지식산업센터로 확정해 놨다. 지식산업센터 지하에 푸드 코트가 생기겠지만 외부로 나오는 외식 인구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문에 인근에 있는 외식업체들은 지금의 난국을 잘 버티면 좋은 시절을 맞을 기회가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볼살과 파절이 조합이 좋은 곳

 

‘불통뽈’의 돼지 볼살과 파절이, 추억의 도시락.

NC구로점 뒤편은 작은 맛집촌이 형성돼 있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이 골목은 필자는 ‘구로맛골목’이라고 부른다. 제법 내공과 업력이 탄탄한 식당이 즐비하고 마치 섬처럼 들어앉은 곳이지만 유동인구가 제법 되는 곳이다.      


이 골목 최강자는 삼겹살김치전골을 앞세운 ‘고향마차’다. 순수 밥집으로는 골목 초입에 위치한 ‘통통김밥’이 늘 손님으로 북적이고 세원대구탕, 풍성양꼬치, 학골생선구이, 은하삼겹살 등이 있다. 대로변으로는 중식당 ‘진사향’과 횟집 ‘청해진수산’이 업종별 대표선수들이다.      


이 골목 안에는 ‘부드럽고 쫄깃한 통통한 뽈살과 파절이의 환상적인 조화를 맛볼 수 있어요’라고 홍보하는 ‘불통뽈’이란 돼지 볼살 전문점이 있다. 일종의 돼지특수부위인데, 아주 재미난 식재료다. 흐느적거리던 볼살이 숯불 위에서 몇 번 구르니 어느새 통통 해진다. 상호가 그래서 ‘불통뽈’이다. 꼬들살과는 또 다른 식감이다.      

골목 깊숙이 자리한 집이지만 기본 단골층이 탄탄하다. 분홍소시지가 들어 있는 추억의 도시락을 ‘쉐킷쉐킷’하는 재미가 있다. 친절한 주인 부부가 점포 안팎 공간을 할여해 길냥이를 돌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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