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 ‘신자네2호점’‧돈가스 ‘홈치킨’‧백반 ‘본가'
지난 2011년 SBS TV에 소개된 부산 ‘화전국수’는 당시 간판을 ‘국수전문 1700원’이라고 달고 있었다. 간판에 가격을 새겨 넣는다는 것은 오래도록 가격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다. 화전국수는 국수 외에도 국밥 2500원, 비빔밥 2000원 등 한 끼 식사치고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손님들의 환호를 받았다.
1700원 하던 국수가 세월이 흘러 지금은 온국수란 이름으로 3000원, 비빔국수와 비빔밥은 4000원, 국밥 4500원 등으로 가격이 올랐다. 부산 영도구에 있는 임가네구포국수도 2017년 2000원 하던 멸치국수가 지금은 3000원으로 올랐다.
외식산업 구조상 물가와 인건비 상승 요인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방송에 노출되면서 손님이 몰리면 원활한 서비스 때문에 종업원을 더 채용해야 한다. 그래서 방송 당시에는 국내 최저가로 명성을 얻었던 곳도 지금은 가성비 좋은 곳 정도로 물러앉기 마련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심리로 가격을 인상하는 것만은 아니란 소리다.
앞서 칼럼에서 잠깐 소개했던 2000원짜리 잔치국수집을 재소환해 본다. 순전히 가격 때문이다. ‘신자네2호점’은 구로시장 안에 위치해 있다. 구로시장은 1962년 정식으로 개설된 50년 역사를 가진 전통시장이다. 남구로시장과 접해 있지만 포목, 떡집, 참기름집, 옷가게 등을 파는 관계로 손님 발걸음이 뜸하다. 대신 남구로시장은 식료품이 주종을 이루고 주요 통행로를 품고 있어서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신자네2호점은 한적한 구로시장과 남구로시장 경계에 있다. 먼저 문을 열었던 1호점은 문을 닫았기 때문에 지금 하는 2호점이 본점이 됐다. 원래는 여사장의 아들이 채소장사를 하려고 얻었던 점포였는데 계획이 바뀌면서 불가피하게 국숫집을 연 것이다.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이젠 제법 자리도 잡혔다.
70대 여사장은 “이 나이에 집에 있으면 뭘 해. 나와서 운동 삼아 소일 삼아 용돈벌이 하는 거지. 손님들이 끊이질 않고 찾아주니 나야 고맙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할 거야”라며 홀 한켠 뻥 뚫린 주방에서 국수를 삶으면서 말했다. 지혜롭게 의자를 두고 앉아서 면을 삶아 낸다. 멸치로 육수를 직접 내려서 사용하고 김치는 담기 버거워 사서 쓰고 있다.
잔치국수, 칼국수에 올라가는 고명이 단출하다. 대파 몇 조각, 김가루가 전부다. 2000원짜리 국수 가성비 경계에 정확히 서 있는 느낌이다. 이 집은 가성비라기보다는 착한 가격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이에 반해 망원역 망원시장 인근 ‘홈치킨’의 돈가스는 그야말로 가성비 갑이다. 잘 차려진 돈가스 정식 한상이 4000원이다. 필자가 페이스북에 해당 점포 정보를 올렸더니 깜짝 놀랄 가격, 착한 가격, 상상 초월 가격, 손님을 생각하는 식당, 대박 가격, 놀라서 청심환 복용 중, 기절초풍 가격이란 댓글이 달렸다. 댓글 대부분 상상을 초월한 저렴한 가격에 놀란 반응이다.
홈치킨이란 상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식당의 주력은 치킨이다. 치킨은 생맥주와 함께 ‘치맥’으로 불리면서 저녁때 1차 또는 2차 메뉴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생맥주의 알코올 때문에 낮에는 아무래도 수요가 적은 메뉴다. 그래서 배달전문점이 아닌 일반 치킨집 대부분은 오후 늦게 문을 열어 자정께까지 영업을 한다.
현 자리에서 15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부부는 치킨 홍보를 위해 낮에 돈가스를 팔기 시작했다고 한다. 돈가스를 왜 이렇게 싸게 파느냐에 대한 물음에 “저녁 치킨 손님을 확보하기 위한 마케팅 차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돈가스는 마케팅 차원을 넘어서 이 점포의 주력 메뉴로 떠오를 기세다. 점심시간 반짝 파는 매력과 맛이 어우러지면서 많이 팔 때는 두 시간 만에 50인분 정도 소화한다고 한다.
돈가스는 국산 돼지고기 안심을 구입해와 손질한 후 조리한다. 주문을 받은 후 빵가루를 입힌다. 온 힘을 다해 빵가루를 꾹꾹 눌러 입히는 모습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촘촘하게 빵가루를 두르고 튀겨내는 돈가스는 매우 부드럽다.
장국은 육수를 따로 내서 장을 풀어 만들었다. 깊은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양이 적지 않은 공깃밥과 정성스레 채를 쳐서 소담스럽게 담은 양배추. 찬으로는 김치와 단무지가 나오는 데 이들을 한 상에 차려내면 웬만한 돈가스 전문점 상차림을 뛰어넘는다. 도저히 4000원짜리 식사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부부는 15년 전 지금 자리에 베이커리 빵집을 열었고 이후 족발집, 일본 요릿집으로 업종을 바꿔나갔다. 치킨집으로 업종을 바꾸면서 일본 요릿집 할 때 메뉴였던 돈가스만은 살렸다. 그만큼 돈가스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의미.
저녁에 파는 치킨도 기대된다. 10호 닭이 1만4000원, 포장은 2000원 할인해 준다. 이런저런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해준다. 마스크 위로 반짝반짝 빛나는 부부의 선한 눈매가 오래도록 기억되는 점포다. 반주로 마셨던 향긋한 생맥주(Max) 맛도 일품이다. 특이하게 탕수육도 판매한다. 결국 죄다 기름에 튀기는 메뉴들이라 시너지를 낸 셈이다. ‘슬기로운 장사생활’이라고 할법하다.
충정로역 인근 고풍스러운 서양식 주택을 식당으로 개조한 충정각 안쪽 골목은 미로 같이 좁고 복잡하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골목에 위치한 ‘본가한정식’은 5000원짜리 백반이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고 저렴한 백반만 파는 곳이 아니다. 2만 원짜리 특코스도 파는 내공 있는 한정식 집이다.
전남 광주 출신 여사장이 주방에서 능숙하게 음식을 만들어 낸다. 식당을 다니다 보면 사장이나 찬모의 관상을 통해 음식 맛을 가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이날 맞닥뜨린 최종숙 사장에게서는 남도의 푸짐한 손맛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엿보였다.
5000원짜리 백반은 단출해 보이지만 정성이 담긴 반찬이 그득하다. 멸치, 콩나물, 깍두기, 김, 호박볶음, 묵은파김치 지짐에 생선 한 마리씩과 국 한 그릇이 나왔다. 반찬은 딱히 정해지지 않고 그때그때 바뀐다. 2년 넘은 묵은파김치는 시큼한 맛을 덜어 내고 들기름에 지져 내왔는데, 쉽게 맛볼 수 없는 슬로 푸드다. 모든 반찬이 최 사장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다.
지난 주말 필자를 포함해 일행 18명이 한꺼번에 들이닥치고 다른 손님들도 빽빽하게 식당 안을 채웠지만 능란하게 처리했다. 대부분 5000원짜리 백반을 먹기 위해 온 손님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가성비는 식당을 선택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가격을 따지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 맛과 가격의 균형을 추구하는 가성비족(族)이 있다. 메뉴와 가격의 선택은 개인의 기호다. 그 기호를 유혹하는 것은 가성비다. 싸고 맛있는 집, 가성비족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