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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 계절의 서막을 알리는 절기, 처서

요리연구가 최경숙 씨 역작 ‘일경추어탕’ㆍ파주장릉 길목 ‘정일품추어탕'

 24절기 중 열네 번째 해당하는 처서(處暑)가 지났다. 처서는 입추와 백로 사이에 든다. 음력 7월, 양력 8월 23일 경이다. 올해는 정확히 양력이 맞아떨어졌다. 태양의 황경(황도 기울기)이 150도에 있을 때다.      


흔히 처서는 여름이 가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관문을 말한다. 한자도 더위(署)를 처분(處) 한다는 뜻이다. 기분일지 몰라도 아침저녁으로 느끼는 공기의 온도가 처서 전후로 사뭇 다르다. 기분뿐 아니라 실제 기온도 한 여름 대비 큰 폭으로 떨어져서 선선함이 느껴진다.      


처서만 되면 단골처럼 회자되는 속담이 있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다. 속담은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모기, 파리 같은 성가신 것들의 극성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요즘은 처서가 지나면서부터 한겨울까지 모기가 사라지지 않고 인간을 괴롭히는 세상이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웃픈’ 현실이다. 

    

우리 민족은 절기마다 때에 맞는 음식을 챙겼다. 처서 때 먹으면 보양이 되는 대표적 음식으로는 추어탕을 손꼽는다. 추어탕은 입동 음식의 대표주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부터 몸속에 영양분 저장을 시작하기 때문에 가을 미꾸라지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남원은 추어탕 본고장...추어거리도 있어 

   

남원 추어탕거리는 춘향전의 주무대인 남원 광한루원 주변에 약 20개의 식당이 모여 형성된 거리다.[사진=한국관광공사]

추어탕은 전북 남원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기도 하다.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오랜 시간 끓인 후 살을 발라내고 시래기는 고추장, 된장에 무쳐 간을 맞춘 후 생강, 후춧가루로 맛 균형을 잡는 게 특징이다. 기호에 따라 들깨나 산초가루를 넣으면 나름의 향을 즐길 수 있다.

      

지역마다 추어탕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사골국물에 두부를 넣는 서울식, 고추장으로 칼칼한 맛을 돋운 원주식과는 달리 남원추어탕은 미꾸라지만을 사용해 된장과 들깨 불린 물을 넣고 다른 채소 없이 시래기만 넣어 걸쭉하게 끓여 구수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 요리는 남원이 압도적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미꾸라지 요리를 하겠지만 추어탕만큼은 남도식이 아닌 남원식이라고 한다. 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남원 추어탕은 지리산 맑은 계곡에서 자란 질 좋은 미꾸라지를 사용한다.      


남원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논두렁이나 수로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보양식으로 즐겼다. 갖은양념과 산채를 가미한 특유의 요리법이 전승되고 있다. 남원시 요천로 추어탕 거리에는 20여 개 점포가 모여 있다. 추어탕 고장답게 인구 대비 추어탕 식당 수가 전국 1위다.      


남원 이외 지역에서 남원 추어탕을 표방하는 식당의 미꾸라지는 남원산이 아니다. 남원시 관계자에 따르면 지역서 잡히는 토종 미꾸리 양이 한정돼 있어서 남원에서 모두 소비된다. 따라서 남원에서나 토종 미꾸라지를 사용한 추어탕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원에서는 가을 추수철에 몸보신을 위해 추어탕을 즐겨먹었다. 아직은 비록 영양분이 한껏 오르진 않았지만 여름 끝물 추어탕도 제법 좋은 보양식이다. 영양보다는 먹는 내내 땀을 한껏 낼 수 있어서 좋다.        


독특하고 다양한 미꾸라지 요리 선보여

방배동 요리선생으로 불리는 최경숙 요리연구가가 문을 연 ‘일경추어탕’의 탕과 튀김, 매운추어 닭발볶음 요리.

    

구로구 오류동 ‘일경추어탕’은 서울서 추어탕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방배동 요리선생, 명문가 요리선생으로 불리는 최경숙 요리연구가가 직접 차린 집이다. 5년 전 8000원 하던 추어탕이 지금은 9500원이 됐다. 식당 위치도 경기도 시흥에서 서울 오류동으로 이전했다.      


가스압력솥밥이 나오고 메밀 한 젓가락이 애피타이저로 제공되는 것은 변함없다. 다른 추어탕집과 다른 밑반찬 구성은 요리 선생님 집답다. 뻑뻑하게 끓여낸 추어탕에 생마늘 다진 것을 한 작은 스푼으로 넣었더니 알싸하고 달근한 마늘향이 혀를 농락한다.      


추어튀김은 작은 접시가 있어서 곁들이에 적당하다. 두 사람이 와서 추어튀김을 맛보고 갈 수 있게 하는 작은 접시 전략은 어느 식당이나 필요하다. 매출전략도 되지만 한 둘이 오는 팀에 대한 배려다. 갓 튀겨낸 추어 튀김은 매우 뜨겁다. 그래서 겉절이와 함께 싸서 먹게끔 나온다.      


죽순추어탕, 더덕추어탕 등 추어탕 구성이 독특하다. 매운추어 닭발무침, 매콤한 깐풍추어, 추어탕수육 등 미꾸라지를 이용한 레시피 변주가 신박하다. 특히 매운추어 닭발무침은 유추하기 어렵다. 그래서 꼭 맛볼 메뉴 목록에 올려놓았다.     


파주 맛고을 입구 탕국물 맛 일품  

      

미꾸라지를 믹서에 갈지 않고 푹 고와낸 후 순살만 걸러내 사용하는 ‘정일품추어탕의 탕과 상차림.’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인문역사공동체 ‘문화지평’은 올 한 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를 모두 돌아보는 ‘조선왕릉 프롬나드’란답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달 6일에는 인조와 인열왕후가 능주로 있는 파주 장릉을 다녀왔다.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 씨의 능으로 합장릉 형식이다. 장릉은 원래 파주 운천리에 있었다가 1731년(영조 7)에 지금 자리로 천장 했다. 천장 하면서 병풍석을 둘렀는데 기존의 구름 문양과 십이지신상을 대신해 모란꽃과 연꽃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인 능이다.      


파주는 ‘파주맛고을 음식문화거리’라는 음식특화촌이 조성돼 있다. 과거 지인이 그곳에서 한식당을 운영했을 때 자주 오갔던 기억이 새롭다. 음식문화거리 초입에 위치한 남원 ‘정일품추어탕’은 좋은 위치와 깨끗한 매장 덕에 손님이 많은 곳이다. 장릉 답사 전에 이곳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정일품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믹서에 갈지 않고 푹 고와낸 후 순살만 걸러내 사용한다. 그래서 껄끄럽지 않고 부드럽다. 곤드레와 시래기를 넣어 담백함과 깔끔한 맛이 내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는 곤드레가 좀 더 많이 들어갔으면 싶다. 장단콩 고장답게 밑반찬으로 두부와 볶은 김치를 내준다. 깍두기와 김치가 알맞게 익어서 추어탕 맛을 단단하게 받쳐 준다.          


이 식당서도 궁금한 메뉴가 하나 있어서 재방문 목록에 올렸다. 바로 한방삼계탕이다. 엄나무, 황기, 당귀, 천궁, 오가피 등 약 십여 가지 한방 재료와 각종, 닭발로 육수를 내서 오묘한 맛을 낸다고 한다. 이 또한 일종의 보양식으로 여름 나기 음식으로 제격이다.         


추어탕 서울식ㆍ남원식ㆍ원주식 등 각양각색 

두루 다니면 서울식, 남원식, 원주식 추어탕 맛을 골고루 볼 수 있는 곳. 상단 좌측 부터 시계방향으로 용금옥, 황강골남원추어탕, 남원원추어탕, 강남 원주추어탕.

이 밖에 서울에서는 중구 다동 ‘용금옥’, 정동 ‘남도식당’, 은평구 녹번동 ‘횡강골남원추어탕’, 용산구 남영동 ‘남원원추어탕’, 강남구 역삼동 ‘강남 원주추어탕’ 등을 필자는 좋아한다. 두루 다니면 서울식, 남원식, 원주식 추어탕을 골고루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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