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맛동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설악산 단풍놀이 식후경 동해안 맛집

‘제비호식당’ ‘영동횟집’ '감자바우‘ ‘옛날수제비‘

거진항 맑은 탕 전문 50년 노포 ‘제비호식당’

속초관광수산시장 내 산고기 전문 ‘영동횟집’

속초 옹심이 ’감자바우‘·장칼국수 ‘옛날수제비‘

       

설악산 단풍 절정기가 시월 중하순이란 소리에 지인 몇이 여행단을 꾸렸다. 교통지옥이 불 보듯 뻔한 주말을 피해 주중에 짧게 1박 2일 다녀왔다. 짧은 일정 탓에 단풍이 제법 절정이었을 설악의 깊은 골짜기는 가지 못했지만 명찰(名刹) 신흥사를 둘러보고 차분한 가을 단풍을 즐겼다.      


신흥사에서 바라본 권금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뒤로 설악의 고준산령에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다.

      

산 아래는 단풍이 아직 절정에 달하지 못했다. 몇 그루 성급한 단풍나무만이 불타오르듯 붉었고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으로 사랑을 독차지했다. 시월 하늘은 더없이 맑고 공활했다. 햇볕은 잘게 부서지면서 온 사방을 환하게 비췄다. 관광객들의 표정이 덩달아 밝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란 표현이 ‘딱’ 맞았던 날이다. 날씨 운이 좋았다.      


도착한 첫날은 숙소가 있는 속초로 바로 가지 않고 거진항을 들렀다. 물론 맛집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이날은 운 좋게도 ‘고성통일명태축제’가 시작된 날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축제평가위원을 했던 터라 축제를 만나면 반갑고 기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자취를 감췄던 축제가 올 가을 일제히 시작됐다. 대부분 축제가 금요일에 시작해 2박 3일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도 목요일 시작해 3박 4일간 열리는 축제라서 더욱 반가웠다.        

운 좋게 고성통일명태축제 둘러봐

    

지난달 20~23일까지 거진항 일대서 열린 고성통일명태축제장에 꾸민 명태 덕장 밑에서 동행한 지인과 축제분위기를 살려 점프샷을 했다.

축제는 지역경제의 실핏줄과 같다. 지역경제 선순환의 중요한 촉매제가 되기 때문이다. 관광객을 불러 모음으로써 음식점, 숙박업소, 특산물품점 등이 특수를 누리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 축제 첫날이고 평일 낮 시간이라서 관람객은 많지 않았지만 부스를 운영하는 축제인들의 열정이 대단했다. 축제와 지역 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 깊었다.      


고성명태축제는 강원도 고성군 특산물인 명태를 주제로 펼치는 지역특산물축제이자 산업형 축제로 분류된다. 명태 풍어와 안전한 조업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고성군에서 주최하고 있으며 올해로 22회째다. 상당한 연혁을 가지 지역축제다. 하지만 명태는 개체 수 복원을 위해 1년 내내 금어 어종으로 묶여 있는 터라 다소 역동성은 떨어진다. 그래도 어디서 구했는지 수조에 명태 활어가 헤엄쳐 다니는 것으로 약간의 위안을 받는다.  

    

축제 구경의 끝은 역시 먹거리다. 고성통일명태축제가 열리는 거진항은 해안을 따라 음식점이 제법 발달해 있어서 굳이 축제장 내 식당이 아니더라도 지역의 이름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동행한 지인이 강력 추천한 ‘거진포구’는 이미 만석 예약으로 빈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다. 예약손님들이 오기 전에 재빠르게 먹고 자리를 비워준다고 했지만 여사장은 다음에 오라고 등을 떠민다.      


아쉽지만 발을 돌려 근처에 있는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을 수차례 다녀온 지인이 이미 지역 맛집을 꿰차고 있었다. 자리를 옮긴 곳은 ‘거진포구’와 같은 거진항 해변도로에 위치한 ‘제비호식당’이다.    

  

시어머니서 며느리로 대물림 손맛

시어머니서 며느리로 대물림 손맛이 살아있는 제비호식당의 도루묵찌개와 열두 반찬.[사진=강지영 요리연구가 제공]

거진항에서만 50년 가까이 영업을 하고 있는 노포다. 2020년 한 TV프로그램에 ‘45년의 내공’이라고 소개했으니 정확히 47년이 된 식당이다.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손맛이 대물림된 곳이다. 식당주는 “시원한 지리로 끓이는 동태탕, 대구탕, 물곰탕과 생선조림을 제공하고 있다”고 자신 있는 메뉴를 밝혔다. 이 식당은 맑은탕(지리)이 대표 메뉴란 것이다. 특히 도치알탕을 잘한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이날도 도치알탕과 도루묵찌개 등 찬바람이 불면 시작하는 계절메뉴를 선택했다.      


고성 앞바다에 찬바람이 불면 과거에 명태가 넘쳐났지만 금어기인 지금은 겨울 물고기인 도치를 비롯해 대구, 도루묵, 임연수어 등을 잡아 올린다. 도치는 사철 잡히지만 겨울이 제철이다. 2월 산란 전 도치가 살도 많이 오르고 알배기이기 때문이다. 수컷은 회, 암컷은 알탕을 주로 해 먹는다.      


12가지 정갈한 밑반찬은 거의 직접 만든 것들로 제공된다. 리필도 잘해주지만 필자는 남는 반찬을 소진하는 쪽을 권한다. 다른 반찬을 두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리필하는 것은 일종의 편식이고 음식쓰레기를 양산하는 좋지 않은 식습관이다. 손대지 않을 반찬은 애초 상차림에서 빼는 배려가 필요하다. 시장했던 터라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는 통에 ‘거진포구’의 아쉬움은 어느새 까맣게 잊혔다.      


아담한 아야진항 터주대감 ‘오미냉면’        


1박 2일 짧은 여정인지라 식도락을 횟수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간식(?)으로 냉면을 먹으러 갔다. 속초 가는 중간에 있는 아야진이란 조그만 항구도시의 유명한 ‘오미냉면’을 찾았다. 이 식당 역시 업력 47년의 노포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 필자 일행이 당도하기 직전 냉면 끓이는 솥에 불을 내렸다며 사실상 영업이 종료됐다고 말했다. 보통 6시 30분 정도 불을 끄고 7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냉면 대신 명태회를 곁들인 수육을 맛보고 나오면서 후일을 기약했다. 이런 돌발 상황도 식도락 여행의 재미다.  


배가 얼추 부르고 명색이 바닷가를 왔으니 다음 간식은 횟집으로 정했다. 저녁이라 속초항, 장사항과 같은 항구 대신 시내에 있는 속초관광수산시장 지하 회센터를 찾았다. 평일 초저녁인데도 이곳 역시 반쯤은 철시를 했다. 입구에서 가까운 ‘영동횟집’ 홀 담당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눈빛 인사에 사로잡힌 일행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싱싱한 동해 해산물의 향연  

  

현지산 활어의 위력을 실감케 한 영동횟집의 쥐치회와 오징어·멍게·개불회.[사진=강지영 요리연구가 제공]

일행 중 입맛이 정확한 요리연구가가 어종을 고르더니 쥐치 회와 오징어 회, 개불 등을 바구니에 담았다. 멍게 서비스로 구색을 맞춘 오징어 회와 개불이 한 접시에 담기고 노란 빛이 살짝 도는 싱싱한 쥐치 회가 한 접시 제공됐다. 배부른 식객들에게 이만한 입가심이 없다.      


살아 있는 오징어를 잡은 건 똑같은 데 서울과 속초의 속살 때깔이 달라 보였다. 이는 회 뜨는 전문가의 손맛일까 아니면 식도락 여행객의 들뜬 마음 탓일까. 첫날밤은 고성, 아야진, 속초 등 동해 해안도로를 따라 남하하면서 즐긴 반나절이었다.      


풋 단풍을 위로하는 웅숭깊은 음식

     

감자바우의 오징어 회국수와 옛날수제비의 장칼제비.[사진=강지영 요리연구가, 박민경 씨 제공]

아침 해장을 위해 찾은 곳은 ‘감자바우’라는 감자옹심이 전문 식당이다. 일행은 감자옹심이와 감자전, 회국수를 주문했다. 가성비 좋고 맛있는 감자전이 먼저 등장해 아픈 상처(?)를 달래줬다. 이 식당도 30여 년의 업력을 지닌 내공이 만만찮은 곳이다.      


곧이어 이 식당의 주력메뉴인 감자옹심이와 회국수가 등장했다. 고수한 맛과 상큼한 맛의 조합이 좋다. 옹심이가 이렇게 웅숭깊은 맛이 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왜냐면 그리 즐겨하지 않는 메뉴기 때문이다. 이 식당은 또 오징어와 가자미 회 두 어종을 이용해 회국수, 회덮밥, 회무침, 쟁반국수를 만들기 때문에 입맛 따라 변주를 주는 재미가 있다. 국수를 파는 곳이라 역시 김치가 제 몫을 한다.       

 

이후 설악산 신흥사에 올라 짧은 단풍구경을 했다. 설익은 과일 같은 풋 단풍이 과객을 반겼다. 마치 “산 속으로 가야 진한 선홍색 단풍을 볼 수 있을거야”라고 속삭이듯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신흥사 내에 찻집에서 이런저런 차를 마셨는데 십전대보탕과 쌍화차를 구분 없이 파는 것을 보고 놀랐다. 둘은 쓰이는 약재가 다를뿐더러 효능효과도 다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십전대보탕이란 이름의 차 맛이다. 일면식도 없는 옆자리 사람들까지 손사래를 치면서 주문을 막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정체불명의 맛이었다.


서울로 오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속초 명물 장칼국수 전문점 ‘옛날수제비’에서는 4인4색으로 장칼국수, 장칼제비, 장수제비, 손칼국수를 주문했다. 결과는 장수제비의 승리다. 칼국수보다 씹는 식감이나 입안에서 혀와 어울림이 달랐다. 다들 먹는 데 진심인 사람들이라 이리저리 맛을 봐가며 두런두런 식탁수다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서울 갈 길이 바쁜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이면 미식도시로 변하는 서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