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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은 전통무용과 닮은 맛

전통무용 유네스코 등재기원 춤판 보고 식후경 '필동면옥'

스미듯 좋아지는 전통무용은 평양냉면 같은 맛       

전통무용 유네스코 등재기원 춤판 보고 식후경

‘의정부면옥’발 평양냉면 일가 이룬 ‘필동면옥’

선우용여 씨 20년 전 소개…미각세계 푹 빠져      


    

우리 전통무용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기원하는 초대형 춤판이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남산국악당에서 펼쳐졌다. 남산국악당과 한국전통문화연구원이 공동 주관한 ‘유네스코 등재기원 2022 한국명작무대제전’이 그것이다.      


나흘간 35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엄청난 스케일의 자체로 놀라움을 주기 충분했다. 15명의 명인들 춤을 100여 명의 각기 다른 전수자와 제자들이 협동해 무대를 꾸몄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전통무용계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큰 행사였던 이번 무대는 현장 무용가들이 우리 전통춤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힘을 합쳤다는 데 의미가 남다르다.     


필자는 마지막 날인 12일 공연을 관람했다. 겨울을 재촉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홍엽을 떨구려는 짓궂은 가을비가 쏟아진 날이었다. 가을비치곤 제법 요란하게 내린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로 침수 소식까지 들렸다.            


11월 중순으로 들어선 남산골 한옥마을은 가을 한가운데 푹 빠져 있었다. 남산 자락인지라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을 정취를 물씬 느끼게 했다. 한옥마을 안에는 순정효황후 윤 씨 친가가 복원돼 있고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부마도위 박영효, 오위장 김춘영, 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옮겨다 놨다.      


순종비인 순정효황후는 1910년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한일합병 날인을 강요하는 것을 엿듣게 되고 옥새를 치마에 숨겨 내주지 않았다. 끝내 백부인 친일파 윤덕영(벽수산장 주인)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전통무용의 맛

남산한옥마을과 안에 있는 남산국악당

남산국악당은 한옥마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크라운해태가 후원을 해서 정식 명칭은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이다.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 연기자들의 들숨날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공연은 예술의 전당 국악당보다 몰입과 감동이 배가됐다.      


막이 올랐다. 처용무가 첫 무대를 열었다. 김천흥 류의 처용무는 이번 공연 집행위원장과 예술총감독을 맡은 한국전통문화연구원 인남순 원장이 사사했다. 처용무는 팥죽색에 치아가 하얀 탈을 쓰고 동서남북과 중앙 등 오방을 상징하는 흰색·파란색·검은색·붉은색·노란색 오색 의상을 입은 5명이 추는 춤이다. 이번에는 인 원장의 제자 10명이 무대에 올라 두 가지 버전의 처용무를 선보였다. 처용무는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번째 김천흥 류 살풀이 무대에는 사사자인 인 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보름달 아래 박꽃 같은 흰 치마저고리에 쪽을 지고 흰 수건을 휘날리며 추는 살풀이는 장단에 따라 춤사위의 강약, 속도가 달라지는 매력이 있다. 이어 무대에 오른 무산향은 조선조 순조 때 효명세자가 창제한 춤으로 이동무대인 대모반 위에서 추는 독무다. 화려한 의상과 중후함이 특징이다. 지전춤, 승무, 산조 등이 연달아 무대를 장식했고 흥겨움과 칼 군무가 돋보인 진도북춤으로 마무리를 했다.

      

한정식 코스요리처럼 다양한 춤 선봬

‘유네스코 등재기원 2022 한국명작무대제전’ 폐막 커튼콜 무대와 인남순 한국전통문화원장의 김천흥 류 살풀이 공연 장면.


여러 장르의 전통무용을 한 자리에서 접하는 맛이 음식으로 치면 한정식 코스요리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홀을 빠져나오자니 뭔가 스며들 듯 슴슴한 맛이 느껴졌는데 평양냉면 맛이 떠올랐다. 궁중과 지방 관아에서 공연됐던 정재 연구에 천착한 이 원장이 그동안 필자를 불러 시시때때로 보여준 전통무용의 맛에 어느덧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과 느낌은 전통무용이 마치 평양냉면과도 같단 결론에 이르게 했다.      


무심코 접했으나 처음엔 그 맛을 모르다가 어느새 심취해 있는 상황. 이는 평양냉면 마니아가 된 이들이 하는 말이다. 흔히들 처음에는 ‘걸레 빤 물’이라는 최악의 평을 했다가도 가끔 생각나기도 하고, 먹고 돌아서면 또 그리워지는 맛. 바로 마약 같은 평양냉면 맛의 저력이 숨겨져 있다.     


필자의 경우 평양냉면을 접한 것은 20년 전이다. 당시 배우 선우용여 씨와 YTN 스튜디오에서 생방송 출연을 마치고 들른 곳이 남산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필동면옥’이었다. 선우용여 씨는 벤츠 오너드라이버였고 필동면옥에 오면 건너편 지하 주차장 입구에 그의 전용주차구역이 있을 정도로 단골이었다.      


그때 접했던 평양냉면은 필자에게 그저 그런 면과 육수였다. 필자 역시 평양냉면 입문자들이 느낀 맛 그대로였다. 다만 제육과 만두는 신세계였다. 소주 한잔과 곁들인 제육은 후일 ‘선주후면’의 신세계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당시만 해도 2층에 일부 좌식 공간이 존재했고 늘어진 뱃살이 불편해 끙끙거리고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선우용여 씨도 연예계 입문을 TBC 1기 무용수로 시작했다. 당시는 무용과 연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을 뽑았다. 이래저래 이번 전통무용 공연은 춤과 냉면이 이리저리 연결돼 있었다.        


‘필동면옥’서 선주후면하며 공연 관람평

필동면옥 물냉면, 제육과 접시만두.

이날도 공연을 본 후 자연스레 식후경이 ‘필동면옥’으로 정해졌다. 남산국악당과 가깝기도 했지만 일행들이 모두 냉면을 지극히 좋아하는 마니아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만장일치를 이뤘다. 공연 시작 전 퍼붓던 비는 어느새 잦아들었고 대신 바람을 동반해 비바람으로 옆구리를 유린했지만 그리 성가신 것은 아니었다. 평양냉면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용여 씨와의 첫 평양냉면 이후로 필자는 완전히 평냉 매력에 빠졌다. 하루에 5곳의 평양냉면 식당을 다닌 것도 여러 번이고 한해 50 그릇은 족히 먹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름나 있는 평양냉면 식당은 거의 다 다녀본 듯했다. 요즘도 한해 이틀 정도는 1일4~5면 평냉투어를 다닌다. 그만큼 새로 생겨나는 평양냉면 전문점이 많다는 의미다. 물론 구관이 명관이라고 새 점포는 발길이 쉬 가지 않는다.     

 

필자는 1일5면 평냉투어를 할 정도로 평양냉면 마니아다.


평양냉면은 음식으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식당을 두고도 극명하게 갈린다. 이른바 ‘계열주의’인데, 이는 곧 면스플레인으로 이어진다. 면스플레인이란 면과 설명을 뜻하는 영어 explane의 합성어다. 면에 대한 ‘잘난 척’, ‘아는 척’ 설명하는 것을 두고 만든 신조어다. 그만큼 평냉이 음식으로는 ‘힙’ 하단 방증이다.      


비 오는 주말 느지막한 시간 ‘필동면옥’은 그래도 자리가 제법 찼다. 이러니 한낮엔 대기를 하지 않고 먹기가 여간 쉽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세운지구 재개발로 ‘을지면옥’이 문을 닫은 터라 그쪽 손님까지 몰려 더 혼잡하지 않을까 싶다.      


선주후면, 선육후면은 제육 한 접시를 먼저 주문해 소주 한잔 한 후 냉면을 주문하는 행태를 사자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날 역시 제육 두 접시에 만두 한 접시를 주문해 선주후면에 충실했다. 냉면을 시키는데 4명 모두 물냉면이다. 한 사람쯤 비빔냉면을 시킬 만도 한데, 역시 냉면에 진심인 멤버들이다. 평양냉면은 역시 물냉면으로 육수를 들이켜야지 않겠는가.      


전통무용과 평양냉면 뭔가 진득하고 아득한 맛이 있다. 알게 모르게 스미면서 체화되는 맛이랄까. 우리 전통무용을 유네스코 세계무화유산에 등재시키려는 노력을 본 날 접한 평양냉면. 이 또한 면면이 내려온 우리 고유 음식이란 점에서 언젠가는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지 않을까 싶다. 과한 생각이지만 꿈을 꿔야 이룰 수 있다.      


명작무대제전 폐막에서 인 원장은 “우리 전통무용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한다”며 살짝 울먹였다. 거장의 울먹임이 관객들에겐 울컥함으로 다가왔다. 전통무용의 유네스코 등재를 응원하며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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