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뒷골목 ‘히말라야어죽’...충청도식 전골·구이·어죽 해물요리 전문
마포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히말라야어죽’은 아나고 전골로 유명하다. 정식 메뉴명은 ‘파김치붕장어전골’이다. 필자는 여전히 붕장어보다 아나고란 명칭에 익숙하다. 1년 묵은 시큼한 파김치가 지배하는 전골에 아나고를 잘라 넣어 전골로 끓여 먹는 맛이 일품이다.
상추와 깻잎 위에 익은 아나고 한 점을 올리고 김, 미역, 마늘, 고추 등과 한 쌈 싸 먹으면 묘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웅숭깊은 파김치의 여운이 입안에 남는다. 그럴 땐 한산 소곡주 한잔 곁들이면 달콤함이 더해지면서 깔끔하게 입가심이 된다.
아나고의 본명은 붕장어다. 아나고(穴子)는 일본에서 부르는 말이다. 붕장어의 학명 Conger myriaster 중에서 속명인 Conger가 그리스어로 ‘구멍을 뚫는 고기’라는 데서 유래했다. 붕장어가 모래바닥을 파고 사는 습성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뱀장어와 달리 바다에서만 살고 비늘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살며 성체가 되기까지 8년 걸린다. 연중 맛 차이는 별로 없지만 제철을 따지자면 여름이다. 그래서 지금이 끝물이다.
우리가 주로 먹는 장어는 4가지다. 민물장어라고 부르는 뱀장어와 하모인 바닷장어, 주로 꼼장어로 통하는 먹장어와 아나고인 붕장어다. 제각기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 꼼장어는 이름만 장어지 장어류가 아니라 원구류에 속하는 원시어류다. 꼼장어 구이는 부산 자갈치시장이 유명하다. 해방 전에는 가죽만 사용하던 것을 이후 구워 먹기 시작했다.
붕장어는 주로 저렴한 횟감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을 ‘히말라야어죽’에서는 파김치와 앙상블을 이룬 전골로 만들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필자도 가끔 가는 곳인데 방송인인 양희경 씨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원픽을 했던 곳이다.
전국 맛집을 찾아다닐 것만 같은 그는 비싼 돈 주고 먹어봐야 별로 좋을 것도 없더라 하며 직접 검증한 몇 군데만 다닌다고 했다. 그의 단골 식당은 바로 ‘히말라야어죽’과 상암의 ‘맛있는 밥상차림’, 인사동의 ‘꽃,밥에피다’, 삼각지의 ‘카카오봄’ 등이다. 카카오봄은 초콜릿 디저트를 파는 곳인데 지난 7월 말로 문을 닫았다.
일본 기록에 아나고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00년대인 에도시대다. 일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민물장어인 ‘우나기(뱀장어)를 선호했다. 아나고는 호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서민들이 우나기 대용으로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조리법도 우나기와 같이 구이, 튀김, 덮밥, 조림, 초밥 등으로 비슷하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1908년에 간행된 ‘한국수산지’ 제1집에 ‘붕장어는 조선의 전 연안, 특히 남해안에서 많이 잡히는데 일부러 잡지는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갯장어와 함께 주로 일본인들이 잡아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서해안에서 많이 잡힌다. 태안 일대에서 예부터 붕장어 전골 요리가 유명하다. 처음에는 고추, 깻잎, 파, 양파, 고추장 등을 넣어 자글자글 끓여 먹었다.
태안에서는 감자를 넣었다. 한참을 끓이면 감자 전분이 국물에 퍼지면서 걸쭉하고 구수해진다. 붕장어전골에 파김치가 등장한 것은 누가,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최근의 붕장어전골을 대표하는 레시피로 자리 잡았다. ‘히말라야어죽’ 역시 충정도식 요리법을 선보인다. 자칭 ‘31세기 충청도식 식당’이라고 칭하면서 대표 메뉴로 파김치붕장어전골, 우럭구이, 어죽 등을 선보이고 있다.
‘히말라야어죽’에서는 서울에서 흔치 않은 백제 1500년 전통의 곡주인 '소곡주'를 판매한다. 흔히 앉은뱅이 술로 소문난 소곡주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 일대 여러 곳에서 만든다. 한산소곡주는 한산면에서 만들어지는 청주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주세법 상으로는 약주에 속하며 한산 전역의 양조장과 가정 70여 곳에서 만드는 소곡주 만이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돼 있다. 이 지역 외에서 만든 술에는 법적으로 한산소곡주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한산소곡주는 찹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해 100일간 숙성시켜 만든 술이다. 깊은 단맛과 감칠맛이 특징이다.
‘히말라야어죽’에서 판매하는 것은 이들 중 ‘순자할머니 한산소곡주’다. ‘순자할머니 한산소곡주’는 한산에서 나름 소곡주 제법의 한 뿌리를 이룬 고 황순자 여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지난 2022년에 작고하신 황 여사에 뒤를 이어 딸들이 대를 잇고 있다. 둘째 딸 유순옥 대표가 현장을 지키면서 맛을 유지하고 있고 셋째 딸 유은정 대표는 인천에서 자신의 사업장인 도자기거래소와 도예공방 '디오니소스의 흙심'을 운영하면서 한산소곡주 대리점을 겸하고 있다.
‘순자할머니 소곡주’ 유명세에 대해 유은정 대표는 ‘손맛’에 있다고 했다. 매일 새벽 5시마다 찹쌀 한 가마니씩을 쪄낸 고두밥에 누룩을 섞은 후 물을 부어 술을 담그는 정성스러운 손길이 술맛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인공첨가제인 색소, 방부제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국내산 찹쌀과 맵쌀 누룩을 발효제로 쓰고 물을 용매로 100일 동안 저온 숙성해 빚는다. 유 대표는 “한산소곡주는 천연 발효로 살아있는 효모 그대로 병에 담은 생주”라며 “시중에 유통 중인 멸균 처리하거나 화학 성분이 첨가된 다른 생주와는 차원이 다른 명주”라고 말했다.
그는 '함께하면 즐겁고 좋은 술', '맛있는 술' '선물하기 좋은 술'이라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알리고 대리점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곧 다가올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소곡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는 주로 청주가 올라가는 데, 소곡주가 청주 종류에다가 특유의 맛 때문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음복하기에 적당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어죽’에서 한산소곡주를 마리아주로 선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낯선 풍경이 아니다. 충청도 출신 주인이 충청도 음식을 선보이면서 충청도 유명 전통약주와 합을 맞춘 것은 ‘슬기로운 식당생활’이다. 일면 충청도에 대한 애향심이 물씬 느껴지는 정겨운 풍경이기도 하다.
식당 안에는 재미난 글귀가 붙어 있다. ‘소주맥주 히말라야 입구에서, 막걸리는 히말라야 중턱에서, 소곡주는 히말라야 정상에서’라며 ‘소곡주는 단독으로 마실 때 뒤끝이 없습니다’라고 써붙여 놨다. 여러모로 재미난 생각을 가진 주인이라 여겨진다. 오래전 한 두 마디 나눴던 기억이 있는데 유쾌했단 잔상이다.
마포 서울가든호텔 뒷길에서도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식당은 이름처럼 히말라야 풍경을 외관에 한껏 담았다. GPS 지도가 없던 시절에는 골목입구를 못 찾아 주변을 헤맸던 추억도 있다. 충청도식 음식인 파김치붕장어전골과 충청도 서천의 명주 한산소곡주를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느릿한 걸음으로 뒷골목을 스며들어가 보자. 식당 외관은 물론 내부도 마치 히말라야 지역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