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보령 바닷가 포구는 도다리쑥국 잔치
서해 섬마을은 꿈틀꿈틀 주꾸미 샤브샤브
홍성 남당항에선 새조개 축제 한마당 얼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식도락가들에게는 마치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말이다. 각각 봄과 가을이 제철인 물고기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면에는 봄철에 많이 잡히는 이들 물고기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마케팅도 숨어 있다. 그럼에도 도다리쑥국은 봄 도다리의 영양가와 새순을 틔운 쑥과의 조합을 앞세우는지라 이 즈음이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어부들은 도다리가 와야 봄이 왔다고 한다. 도다리쑥국을 먹어야 봄이란 식객들의 말과 등호다. 서해 충남 보령 대천항에서 출어한 작은 어선들은 요즘 그물에 걸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봄 도다리로 만선이다. 갓 잡은 봄 도다리는 회로도 먹고 뭍에서는 쑥과 함께 도다리쑥국으로 봄을 맞는다. 무와 감자를 넣고 조리는 도다리조림도 일품이다. 제대로 된 쑥향을 느끼는 봄 도다리쑥국은 3~5월 초봄 두어 달 남짓이 제대로다.
흔히 도다리라고 부르는 것은 실상 대부분 문치가자미다. 진짜 도다리는 많이 잡히질 않아서 시중에는 상당수가 문치가자미나 강도다리가 유통된다. 이를 통칭 도다리라고 부른다. 진짜 도다리는 마름모꼴인 반면 문치가자미는 타원형이라 체형으로 구별할 수 있다. 어시장에서 유심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지 싶다. 대천항에서는 풀도다리라고도 한다. 해초(바다풀밭)가 있는 수역에서 많이 잡혀서 붙은 별명이다.
도다리는 산란기가 끝나고 살이 한껏 오른 4월에 가장 맛이 좋다. 한마디로 요즘이다. 물론 산란 직전 알배기도 맛이 못지않다. 해풍을 맞고 자란 자연산 해쑥과 궁합이 좋다. 쑥은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친숙한 먹거리다. 그만큼 안전하고 영양이 뛰어난 식재료란 의미로 해석된다. 쑥은 줄기가 뻗어나가지 않고 응달에서 자란 어린싹을 상품으로 친다.
이른 봄철 응달에서 자란 어리고 부드러운 쑥을 삶아 냉동실에 보관하면 1년 내내 온전한 초봄 쑥 향을 누릴 수 있다. 쑥은 피돌기를 좋게 한다. 이는 곧 체온 유지를 돕는 것이기 때문에 추위를 이기게 한다.
경남 통영에서는 정월대보름 전에 도다리쑥국을 세 번은 먹어야 한 해를 건강하게 난다는 속설이 있다. 이 역시 약간의 마케팅 요소가 숨어 있음을 느낀다. 통영은 도다리쑥국을 지리와 묵은지 씻어 넣고 끓이는 두 가지 버전으로 해 먹는다. 지리를 끓일 때는 다시마 육수에 무를 넣고 멸치액젓이나 멜젓으로 간을 한다.
문치가자미는 한때 양식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지금은 전량 자연산으로만 유통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도다리(문치가자미)는 자연산이란 의미다. 산란은 위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남해 산의 경우 12~2월 사이가 산란기이다. 위도가 높은 서해 산은 4~5월이다. 산란은 몸속 영양분이 알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통영과 보령의 도다리쑥국 제철이 살짝 다른 이유다.
큰 도다리는 뼈가 억세기 때문에 뼈째회(세꼬시)로 먹기도 어려워 개발된 것이 도다리쑥국이다. 통영, 거제 등에서 봄에 새순으로 올라오는 쑥과 궁합을 맞춰 끓여 먹으면서 유명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봄은 통영 식당에 ‘도다리쑥국 개시’가 써 붙어야 온 것이다. 남해와 서해의 도다리쑥국은 살짝 결이 다르지만 어느 누구도 앞선다고 할 수 없는 고유의 맛이다.
이 무렵 주꾸미는 또 어떤가. 대가리에 꽉 찬 알을 뜻하는 ‘쌀’이 듬뿍 들어있는 주꾸미 역시 봄을 알리는 전령이다. 주꾸미는 주산지가 서해바다다. 특히 대부도는 살아 꿈틀거리는 주꾸미를 찾아 나선 식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전체 인구 반 이상이 사는 서울, 경기서 접근이 쉬워서이다.
주꾸미는 어장 형성 계절에 따라 봄주꾸미와 가을주꾸미로 나눈다. 봄주꾸미는 크기가 크고 대가리에 쌀처럼 생긴 알을 품고 있다. 반면 가을주꾸미는 크기도 작고 알도 없다. 깊은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고 산란을 위해 봄에 연안에 올라오는 봄주꾸미는 알배기에 살도 올라 몸집이 크다.
봄주꾸미가 산란한 알이 자란 것이 가을에 잡히면 가을주꾸미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성체가 되질 않아 체급이 작다. 가을주꾸미가 용케도 살아남아 깊은 바다에서 겨울을 지내고 성체가 된 후 봄에 잡힌 것이 봄주꾸미다. 요즘 식객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이 이들이다.
대부도를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 시화방조제 교통량 변화는 곧 주꾸미 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봄이 시작되고 살살 늘어나는 차량 정체가 몹시 심해지면 주꾸미 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가늠자다.
대부도는 서해안에서 비교적 거대한 섬으로 큰 언덕처럼 보여 지은 이름이다. 1994년 시흥시 오이도와 대부도를 연결하는 총연장 12.7km의 동양최대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됐다. 2005년에 대부도 방아머리 먹거리타운을 음식문화 시범거리로 지정해 활어회, 조개구이, 바지락칼국수 등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주꾸미 철이 오면 대부도가 몸살을 앓고 상인들은 비명을 지른다.
대부도에서는 과거 음식을 할 때 다 같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도록 커다란 솥에다가 칼국수를 끓이면서 지척에 널린 바지락을 넣었다. 이런 식문화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외지인들에게 소문이 났고 바지락칼국수 거리까지 만들어졌다. 식당가가 자리를 잡으면서 봄철이면 주꾸미를 찾는 식도락이 늘어나면서 칼국수 전문점에서 자연스레 주꾸미 한철 요리를 하게 됐다.
주꾸미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홋카이도 이남 지역에 서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와 남해 대부분 지역에서 잡힌다. 산란기는 12~2월이기 때문에 대가리 ‘쌀’을 맛볼 수 있는 시기다. 5월~8월은 주꾸미 금어기다.
충남 홍성 남당항에선 해마다 1~2월에 걸쳐 새조개축제를 연다. 새조개가 남당항과 천수만 일원에서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많이 잡히는 덕에 이를 축제로 만든 것이다. 이 무렵 새조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제법 커서 제철로 치고 있다.
새조개는 쫄깃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특징이다. 단백질과 철분, 타우린, 필수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풍부하다. 좋은 성분을 추리면 고급 천연 영양제 수준이다. 축제는 2월에 끝나지만 판매는 3월 말까지니 3개월가량 축제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새조개는 새부리 모양과 비슷하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씨알이 크고 두툼해 샤브샤브로 요리하면 달달하고 쫀득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봄동과 냉이 채수에 된장을 살짝 풀어 구하게 만든 육수에 새조개를 살짝 담갔다가 꺼내면 향긋한 새조개를 즐길 수 있다.
새조개는 패류 중에서 가격으론 원티어급이다. 그래서 양껏 맛보기는 부담스럽다. 이럴 땐 새조개 다음으로 산낙지를 소환해 육수에 입수시키면 자연스레 연포탕으로 마무리가 된다. 완연한 봄이다. 벚꽃은 이미 엔딩이다. 봄은 짧은 이름처럼 길지 않다. 맛있게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