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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권력의 상징 평양냉면

사대문 안 냉면노포 경쟁 치열...외곽에도 지역마다 강자 존재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평양냉면 강자들은 고객을 유인하는 한두 가지 강력한 ‘원투펀치’가 있다. 육수 베이스와 메밀 함량에 따른 면 식감이 일반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이드로는 제육, 편육, 만두를 손꼽을 수 있다. 불고기는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급으로 선주후면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면식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육수는 일반적으로 ‘농후한 육향’에 대해 선호도가 높았다. 우래옥과 봉피양 등 농향(濃香) 냉면집이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우래옥은 동치미와 섞지 않은 고기 육수로만 진한 맛을 냈다. 농밀한 육향에 매끈한 면 식감까지 결합되면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땐 평판이 가장 좋았다.


벽제갈비의 냉면브랜드 봉피양도 우래옥 못지않은 농향 육수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무주공산이던 분당 판교 지역에 자리 잡아 단박에 최강자 자리를 꿰찬 능라도도 육수가 진하고 구수하다. 우래옥은 자기그릇, 봉피양과 능라도는 두툼한 방짜유기를 써서 맛을 한층 더하고 있다.


제육도 평양냉면 구매 결정에 매우 높은 관여를 한다. 제육과 편육은 평양냉면 집의 수준을 나타내는 가늠자다. 냉면 육수를 빼내는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는 제육, 소고기는 편육을 지칭한다. 육수를 빼고 난 고기를 썰어 내오면 냉면이 나오기 전 ‘선주후면’(先酒後麵)하기 제격이다. 한 냉면집 대표에 따르면 원가는 사실상 제육, 편육만 팔아도 나온다. 냉면 수입은 거의 순수익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냉면 나오기 전 제육으로 ‘선주후면’(先酒後麵) 문화 대중화


제육은 의정부평양면옥 계열인 을지면옥, 필동면옥 등이 쫀득한 식감과 느끼하지 않게 삶아내는 제법으로 인기가 높다. 대체로 편육은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퍽퍽하고 제육은 지방층으로 인해 몰캉거리면서 고소한 맛을 낸다. 편육보다 제육 판매 비중이 월등히 높은 이유에는 가격적인 측면도 일부 있지만 식감도 한 몫 한다.


불고기는 평양냉면 집에서 선주후면 콘셉트를 구현하기 좋은 메뉴다. 우래옥, 봉피양 등 역사가 있는 강호들이 입맛을 사로잡는 불고기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일품당프리미엄, 금용문, 광화문한옥집 등을 운영하는 세종클럽 유승빈 회장은 “우래옥 불고기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최고의 맛”이라고 평했다.


삼청동 만정은 봉피양식 냉면과 불고기를 구현해 좋은 반응을 얻은 곳이다. 소고기 대신 돼지를 숯불직화로 구워 단품이나 세트메뉴로 내놓은 남양주 광릉한옥집 같은 곳도 있다. 만두는 평양냉면 집에서 제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


이유는 아무래도 메밀과 만두피 밀가루가 겹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빈대떡, 지짐 등이 잘 나간다. 주머니 가벼운 술꾼들에겐 수육 대용으로 인기가 높다. 빈대떡은 만두만큼 집집마다 솜씨 편차가 크다.          


평양냉면집은 냉면 이외 만두, 수육, 전, 불고기, 갈비구이 등의 선주후면 메뉴가 있는 것이 보통이다.

지역마다 속속 강자들 뿌리내려…평양냉면 권력 분점         


평양냉면 맛집을 보면 4대문 안에 몇 개 밀집을 빼고는 ‘지역구’ 하나씩 꿰차고 있다. 대단히 ‘권력적인’ 메뉴다. 4대문 안을 보면 전통의 강자 우래옥이 중구 주교동에 해방 직후부터 자리 잡았고 을지로3가 인근 평래옥은 1950년에 문을 열었다.


이들과 멀리 않은 곳에 의정부 평양면옥서 분가한 을지면옥과 필동면옥이 위치해 있고 장충동에는 3대째 가업을 잇는 평양면옥이 자리 잡았다. 이밖에 남포면옥, 유진식당, 부원면옥, 강서면옥이 4대문 안에 있다.


4대문을 약간 벗어나면 광진구 서북면옥, 송파구 봉피양, 마포구 을밀대, 무삼면옥, 동무밥상이 있다. 구파발에는 만포면옥, 구로구에는 오류동평양냉면이 역사를 앞세워 호령하고 있고 마포에는 2016년 장수가가 서경도락으로 상호를 바꾸고 평양냉면을 새롭게 선보였다.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가면 논현동 진미평양냉면이 어려운 상권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면장만 20년을 넘게 한 주인의 저력이 볼만하다.


강남에는 우래옥, 봉피양, 평양면옥, 능라도 등의 지점이 즐비하게 진출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강서구에는 대동관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도 광명에는 정인면옥이 광명시장 근처에서 지역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정인면옥은 전형적인 골목상권임에도 좋은 가성비 때문에 손님이 몰린다.


정인면옥은 광명지역이 좁게 느껴졌는지 정치권력 한복판인 여의도로 이름만 빌려서 진출했고 대박집이 됐다. 인천 신포동 경인면옥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부터 평양냉면을 팔아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남양주 진접에는 광릉한옥집이 메밀 100% 자가제면으로, 분당 미금로 리북냉면은 손반죽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참고로 평래옥, 평가옥 ‘평’자가 들어가는 면옥집은 닭을 주재료로 육수를 낸다. 그래서 평냉 마니아들은 보편적으로 이들을 평양냉면으로 쳐주지 않는다.  


최근에는 냉면 가게 분포선이 무섭게 남하하고 있다. 충청도를 못 넘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광주, 대구까지 남하해 단박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전수창업 한 광주옥1947은 광주 농성동에 문을 열고 최근에는 충장로에 분점을 내는 등 남북정상회담 최대 수혜업체로 손꼽힌다.


대구는 제형면옥이 지역 강자로 오랫동안 군림해 오고 있고 부산은 원산면옥이 3대째 터줏대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경남지역은 한국전쟁 통에 원조 밀가루가 다량 풀리면서 밀면이 강세인 지역이라 메밀이 그 동안 힘을 못 썼다.        


소득수준과 연동하는 입맛…소비자가 원하는 냉면은?


평양냉면은 단출한 상차림에 비해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 물냉면 기준 홍대입구 평안도상원냉면, 종로3가 유진식당이 각 8000원, 남대문 부원면옥 8500원, 신촌형제갈비, 부천 삼도갈비 1만원, 필동면옥, 을지면옥 각 1만2000원 짜리 부터 봉피양 17000원짜리 순면(메밀 100%)까지 있다.


좀 한다는 집은 대부분은 냉면 한 그릇이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서민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고급 음식이다. 비싼 소고기가 주재료로 사용되면서 원가가 높기 때문이다. 거기다 일부는 브랜드 가치까지 냉면 값에 보태는 바람에 선뜻 주문하기 어려운 가격까지 치솟았다.


우래옥, 봉피양, 의정부평양면옥, 필동면옥, 을지면옥 등의 평양냉면. 육수, 고명, 고춧가루 유무 등 집집마다 특색 있는 모양으로 식객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만들


외식업계 내로라하는 냉면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눈 결과 경쟁력 있는 평양냉면 집이 되기 위한 특징적인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농향형 육수가 대중적 입맛을 더 끌어 당겼다. 육수 색깔은 노리끼리하게 진하고 육향도 다소 강한 쪽이 선호됐다. 전통적인 평양냉면의 특징인 밍밍하고 슴슴한 육수보다 혀에 착 감기고 입술에 약간 반질하게 남는 기름진 맛을 선호했다.


면은 메밀함량이 70~80% 정도가 식감이 우수했다는 평이다. 순 메밀면의 경우 향은 좋지만 표면이 거칠고 쉽게 끊어지는 단점 아닌 단점이 지적됐다. 나머지 20~30%는 밀가루나 전분 등을 잘 배합해 만드는데, 여기에도 면가(麵家)마다 노하우가 있다. 이렇게 배합을 해서 압착면을 빼내면 표면이 매끈할뿐더러 끈기도 적당해 ‘호로록’ 말아 올리는 식감이 좋아진다.


면의 굵기는 1.4mm가 적당하다. 이보다 얇으면 면이 육수를 조금밖에 무쳐 올리지 못해 맛을 못 낸다. 또 평양냉면 같지 않고 가격 대비 빈약해 보인다. 더 굵으면 삶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과 막국수 같아 보이는 단점이 있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결국 ‘머니(money)’다. 식당은 일단 가격문턱이 낮아야 손님이 몰린다. 평양냉면 가격의 임계점은 1만원이다. 그 이상을 지불하고 먹기엔 다소 주저된다는 의견이다. 비싼 만큼 제 값을 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브랜드를 앞세워 가격문턱만 한껏 높인 곳도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육수 주원료인 소고기 값이 치솟으면서 돼지고기로 기존 육수 맛을 내는 레시피 개발도 활발하다. 결국 원재료비를 낮춰 적당한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맛을 낼 수만 있다면 획기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냉소다가 냉면 맛?…냉면 맛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소비자들의 안목지수가 높아졌다.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레시피까지 읊을 수 있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특히 평양냉면은 마니아층이 형성된 음식이다. 유명한 냉면 맛집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정작 마니아들도 잘 모르는 맛의 비밀이 몇 가지 있다. 오랫동안 면장으로 근무하던 이들만이 집어 낼 수 있는 맛이다.



외관만큼이나 맛도 가격도 각양각색인 평양냉면집. 지역마다 최고의 냉면 맛을 구가하는 업체가 한 두 곳 있는 ‘권력형 메뉴’다.


첫 번째가 냉소다에 맛의 비밀에 있다. 좀 한다는 평양냉면 집에 들어서면 물 대신 내오는 것이 면수다. 면을 삶은 물이란 의미인데 실제로 오리지널 면수를 내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메밀을 갈아서 따로 끓여내는 집이 있는가 하면 다소 화학적인 맛을 내는 면수를 제공된다.


냉소다는 면을 차지게 하는 첨가제다. 면 탄성을 높이고 식감을 탱글하게 만들기 위해 집어넣는다. 문제는 냉소다가 들어간 면에서는 다소 역한 냄새가 난다. 오래전부터 많은 냉면집이 냉소다를 사용하다보니 이 맛이 마치 평양냉면 면이나 면수의 표준 맛처럼 오인됐다.


그런 오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소한 맛과 냄새가 아닌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면 냉소다다. 면수가 흰색이면 메밀 갈아 놓은 것을 끓여 내오는 가능성이 높다. 실제 메밀면을 삶아낸 면수는 약간 검불그스름한 계통의 색을 띤다. 


제면(製麵)에 대한 정보는 이제 보편화 돼 있다. 메밀을 완전 거피한 유백색 면이 대세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거무튀튀한 면색에 껍질가루가 점점이 박혀 있는 면(점박이면)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점박이면은 과거 도정기술이 뒤떨어졌을 시절 메밀 껍데기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서 만들어진 면이다. 지금은 완벽한 도정으로 매끈한 유백색으로 제분된다.


볶은 메밀을 첨가해 색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메밀면의 순도를 떨어트리고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평양냉면은 이제 ‘유백색 면’이 대세다. 게다가 자가제면 시대다. 대형업소에서는 자가제분까지 한다. 평양냉면의 진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육수의 경우 전문가가 아닌 이상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육수는 정성이다. 끓이는 내내 곁에 지켜 서서 부유하는 기름과 찌꺼기를 쉴 새 없이 걷어내야 깔끔한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자칫 이 작업을 소홀하면 떠오른 기름이 육수에 녹아들어가 맛을 미끌거리게 한다.


평양냉면은 ‘쩡’하면서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육수 맛의 특징이다. 비록 고기 국물이지만 먹고 나도 입술에 번지르르 남지 않는다. 만약 입술에 미끌거리는 기름기가 느껴진다면 육수 내는데 정성이 부족했다고 보면 된다.


평양냉면이 국민 외식 메뉴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그동안 ‘걸레 빤 물’이란 오명을 견디며 꾸준하게 국민 혀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다. 맛보기를 주저하던 국민들을 냉면가게 앞에 줄을 세우는 데는 김 위원장의 입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평양냉면은 더 이상 북한음식, 변방음식이 아니라 ‘우리 음식’이다. 글을 쓰는 내내 평양냉면이야말로 세계에 알릴만한 한식이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냉면이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그날이 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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