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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만난 맛있는 '조각기억'을 가진 맛집

옛날한우곱창‧화순집‧산골막국수‧고향마차‧부촌육회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급작스런 지방 출장이나 뜻하지 않은 원행, 의도하지 않은 식사를 할 때가 있다. 지난해 설날 직전의 경우 목포에 있는데 제주도 ‘탐라입춘굿’ 축제를 다녀올 수 있겠냔 연락을 받았다. 만약 서울에 있었다면 거절을 했을 텐데 목포에서는 제주 가는 배편이 있는지라 수락했다. 목포조차 의도치 않은 원행이었는데 제주 출장까지 겹치니 계획하지 않은 일상과 식사가 따라온다.     


의도하지 않은 식사를 하면 식당과 업주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가기 때문에 음식과 내력의 맥락을 짚어내기 어렵다. 반찬이 풍성하고 손맛이 있으면 업주가 ‘남도’ 사람인가 넘겨짚어야 하지만 사전에 정보를 얻고 가면 그런 불확실한 추정이 불필요해지고 음식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자연히 업주와 신변잡기보다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늘어나고 식당이 잘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칼럼은 스치듯 지났던 식당이라 큰 정보는 없지만 음식이 좋았던 곳을 모아봤다. 업주를 취재할 타이밍을 도저히 잡을 수 없던 집이거나 서빙할 때 한 두 마디 들었던 곳이지만 나름 내공이 느껴진 곳들이다.      


옛날한우곱창, 고소한 소기름의 치명적 유혹


등촌동 ‘옛날한우곱창’의 곱창과 양

입술에 번지르르 쇠기름을 묻히고 싶은 날 오랜만에 찾았던 등촌동 ‘옛날한우곱창’. 가격표를 보니 다소 주춤해진다. 동급 한우곱창치곤 꽤나 비싸다. 곱창과 대창을 적당히 섞어서 한점 남기지 않고 다 먹은 후 볶음밥까지 볶았다.      


이 집의 매력은 신선한 양질의 곱창도 있지만 새콤 달콤 효소에 무친 싱싱한 부추가 인상적이다. 싱싱한 게 살(?)도 많은 통통한 녹색의 건강한 부추를 곱창과 함께 구우면 불판 안에서 곱창기름을 흠뻑 빨아들여 흐물흐물하지만 씹을 때 기름과 섞이면서 기분 좋은 맛을 낸다.        


대부분 곱창집과 마찬가지로 서비스 내오는 소간과 천엽에서는 어릴 적 아련한 향수가 따라온다. 비싼 소고기는 못 사 먹는 대신 가끔 부속고기라도 먹이려고 했던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경춘선 김유정역 고깃집 실레마을의 싱싱한 생지라에 대한 맛의 기억도 소환됐다. 점포 안이 너무 시끄러워서 차분한 식사를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함께 왁자지껄 먹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화순집, 76년 된 오모가리탕 전문 노포 


전북 전주 완산구에 있는 ‘화순집’의 빠가사리탕

1944년 문을 열어 올해로 76년 된 노포다. 오모가리(뚝배기의 전주 방언)에 쏘가리, 빠가사리, 메기, 피라미, 새우 등과 시래기, 들깻가루, 양념을 듬뿍 넣어 끓여 낸 오모가리탕 전문집이다. 오랜 시간 노하우로 탕이 비리지 않고 국물이 시원하기로 유명하다.     


갓 지은 밥과 솥단지에 눌인 누룽지를 통 채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집이다. 누룽지도 메뉴의 한 종류인 셈이다. 김치, 콩나물, 깻잎, 호박전 등 흔히 보는 밑반찬이지만 혀 끝에 옛맛의 여운이 느껴진다.      


지난해 단양 출장에서 혼자 주문해 먹기 어려워서 ‘그림의 떡’이었던 쏘가리매운탕 한을 풀었다. 화순집 양옆집도 같은 해 문을 열었다는 오모가리탕 전문 ‘한백집’, ‘남양집’이 들어서서 세집이 자칭 원조라고 경쟁하고 있다     

산골막국수, 권토중래 꿈꾸는 막국수 강자


산골막국수 동묘 직영점 세트메뉴.

산골막국수는 서울시 중구 을지로 175-3에 ‘소재했던’ 막국수집이다. 한옥으로 된 점포가 낡아 개보수를 위해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느라 영업을 중단하고 지금은 동묘와 성수동 두 곳에서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산골막국수의 대표 메뉴인 막국수는 사골과 닭뼈를 같은 비율로 섞어 우려낸 육수를 양념과 버무린 면에 넣어서 먹는다. 막국수는 ‘막 비벼서 먹는 국수’라는 뜻으로 강원도 이북 산간지방에서 먹던 음식이다. 창업주에 이어 며느리, 아들로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점포를 이전하면서 물김치를 담고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옛 맛을 100% 내기 힘든 상황이다. 막국수나 냉면집의 생명을 육수다. 육수 맛이 일정해야 손님들이 안심하고 찾는다. 최근에는 다양한 조합으로 서너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세트메뉴를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자리에 새 점포를 짓고 권토중래할 날을 기대해 본다. 


고향마차, 구로역 뒷골목 최고 맛집


고향마차의 김치삼겹살전골과 계란말이

네이버에 소개해 놓은 글을 보면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바로 그 구로맛집! 고향마차입니다. 낮에는 밥집 저녁에는 술집으로 인기인 포장마차 식 술집입니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개점 시간이 오후 4시라서 납에 밥집을 하는 건 다소 무리지 싶다. 어쩌면 전엔 점심 장사도 했던 것 같다. 모자 2대에 걸쳐 40년을 훌쩍 넘기면서 운영하고 있다.      


주 메뉴로 김치전골, 제육볶음, 오징어볶음, 고추장불고기, 된장찌개, 계란말이, 청국장 등이 있다. 이 집 김치전골은 특별히 김치 삼겹살 전골로 부른다. 네이밍이 기발하다. 삼겹살을 넣은 김치찌개를 곱창전골 반열로 올렸다.       


국물요리가 인기가 많다. 계란말이도 좋다. 전반적으로 가성비 좋은 포차다. 허름한 매장의 분위기와 부담 없는 가격으로 이름난 곳이다. 구로역 1번 출구 구 AK플라자 뒤편 골목에 있다. AK플라자는 팔려서 지금은 NC백화점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부촌육회, 광장시장 육회골목 터줏대감


서울 광장시장 60년 된 육회 전문 노포 ‘부촌육회’.

부촌육회에서 육회와 육사시미 시켰다가 옆 자리 일본 관광객들이 시킨 육회탕탕과 간천엽을 보고 ‘아뿔싸’를 외쳤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다음에 갔을 때는 일본 관광객이 주문했던 것과  똑 같이 했다. 육회와 육사시미는 사실 겹치는 맛이다. 육회탕탕과 간천엽은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다.      


부촌육회는 1965년에 부촌식당으로 광장시장에 문을 열었다. 1980년대부터 갈비탕과 함께 전라도식 육회를 조금씩 선보이기 시작했다. 고추장양념에 버무리던 육회는 서울 사람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 배와 참기름으로 무친 서울식 육회로 바꾸었다.      


이 집은 3대 때 60년을 이어가고 있다. 3대째 두 형제가 나와서 일하는데 세련된 외모에 운영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매우 체계적으로 하는 듯했다. 오후 4~5시는 기존 손님은 앉아서 먹을 수 있지만 새 손님은 받지 않는다. 육회 골목 1호점은 늘 붐비지만 대로변 2호점은 좀 한갓지다. 워낙 바쁜 집이라 사전에 작업해 놓은 것이 많아 선도는 손님이 감수해야 한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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