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석 구비‧1인분 주문 가능한 ‘깡통식당’‧‘뱃장’‧‘왕순대’
혼밥 레벨이란 게 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혼밥 레벨 중 1단계부터 9단계까지 분류해 놓은 것이 있다. 레벨 1부터 차례로 살펴보면 편의점에서 밥 먹기부터 시작해 학생식당,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등 초반 4단계까지는 누구나 자연스레 많이 겪었고 봐 왔던 모습이라 자연스럽고 수긍이 간다.
그러나 5단계부터는 혼밥 모습이 왠지 부자연스러운 상황이라서 실행에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5~8단계는 △중국집, 냉면집 등 일반음식점서의 혼밥을 비롯해 △맛집에서 밥 먹기 △패밀리 레스토랑 △고깃집, 횟집서 혼밥 하기다. 대망의 마지막 9단계는 술집에서 혼술 하기다.
5단계부터 혼밥이 어려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메뉴가 여럿이 가야 이것저것 즐길 수 있는 구조고 점포도 1인 좌석보다는 4인 테이블부터 단체석까지 다인 좌석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우리 식문화가 혼밥보다는 여럿이 왁자지껄 먹는 분위기라서 혼자는 어색하기도 하고 왕따라는 오해를 살 수 있어서 꺼린다.
그러나 일본 라멘집, 횟집 등 다찌 문화가 식당가에 들어오면서 1인 좌석과 혼밥 식문화가 자연스레 확산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역병이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제하면서 혼밥 문화가 ‘뉴 노멀’이 됐다. 그 사이 우리 식당가에는 한쪽에 1인 좌석을 구비한 곳이 늘어가고 있었고 대놓고 혼밥족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식당 밖에 써 붙이기까지 이르렀다.
식당 입장에서는 여럿이 한 테이블에 앉으면 여러모로 이득이다. 그러나 회식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혼밥족이 늘어가는 식문화를 그저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이면서 동시에 서비스 강화라는 측면에서 혼밥족을 위한 식당환경과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서 혼밥은 눈칫밥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1인 좌석이 구비돼 있다면 마음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으니 손님 차원에선 큰 서비스를 받는 셈이다. 업주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매출에 도움이 된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식당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1인 좌석의 유무는 고객으로 하여금 식당 선택을 한 기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혼자 가도 환영받는 식당이 맛집의 새로운 기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도 싶다.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정면 건너편에는 골목 안에 식당이 몰려 있다. 근처에 현대사옥도 있고 사무실도 많아 유동인구가 제법인 곳이다. 북촌이란 레트로 콘텐츠가 뜨면서 골목 안 식당가가 핫 플레이스가 됐다.
과거에는 직장인 상대 밥집, 술집이었던 것이 최근에는 한옥에 차린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비롯해 젊은 층을 겨냥한 파인 다이닝 밥집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다. 그럼에도 한옥 밀집지역이란 지역적 특색 때문에 복고 분위기의 식당이 아직은 주도권을 쥐고 선전을 펼치는 곳이다. 그중 젊은이들 입맛을 가장 성공적으로 공략한 곳이 ‘깡통만두’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그릇 만둣국에 몸을 데우기 위해 식객들이 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는 곳이다. 한 여름에도 골목으로 식객들 발길을 잡아끄는 이 집은 만두전문점인데, 만두 본연의 맛을 접할 수 있다는 평이다.
혼밥족을 위한 일자형 테이블이 구비돼 있고 칼만두란 메뉴로 혼자서도 두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했다. 칼만두는 칼국수와 속이 꽉 찬 어린아이 주먹만 한 만두가 3개 나온다. 만두소를 구성하는 식재료의 조합이 좋고 물기를 완전히 잘 짜내서 식감이 폭신하다. 여름엔 기본 만두, 새우만두 두 종을 만들어 내고 겨울엔 김치만두가 추가된다. 아직까지는 두 종류 만두 밖에 맛볼 수 없고 찬바람이 불어야 김치만두가 등장한다.
육전이 올라간 비빔 칼국수가 특색이 있는데 이는 문래동 영일분식 비빔 칼국수와 또 다른 버전이다. 육전이 맛과 식감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시각적 효과와 밀가루의 허기를 채워주는 보완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옆자리를 보니 먹음직스러운 만두전골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식당주가 만두전골을 맛있게 먹는 법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모습이 몹시 친절했다. 정갈한 요리, 맛있는 음식, 친절한 응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손님 지향적인 곳이다. 그래서 브레이크 타임 때부터 문 앞 대기를 마다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오래전에 이태원에서 20여 년 정도 영업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당시 제일기획 직원 중 단골손님이던 강진기 홍익대 교수는 일주일에 세 번도 갔을 정도로 만두 마니아였다. 깡통만두가 잔뜩 찍힌 카드 명세서를 보더니 부인이 “당신이 만두 좋아한다고 후배들에게 만두만 드시게 하냐?”고 경고를 받았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강 교수는 “그래도 "한달에 깡통만두를 두 번 이상 모시고 간 분은 한분도 없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맛을 보여줬던 것이다.
지금부턴 혼밥의 거의 절 대경 지인 8단계 혼고기 집이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 가까이 위치한 한우 구이집 ‘뱃장’.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지만 혼밥족을 겨냥한 마케팅이 성공해 제법 이름을 알렸다. 한우 큐카츠 정식, 한우 육회 비빔밥, 한우 장조림 덮밥, 냉면, 차돌된장찌개, 치돌박이 라면 등 비교적 가격이 가벼운 단품도 있지만 이 집의 메인은 역시 한우다.
‘뱃장은 최상급 한우만 취급한다’는 모토 아래 1++. 1+ 등급 한우를 사용한다. 혼밥족과 혼고기족을 위해 칸막이가 쳐진 1~2인 좌석이 마련돼 있다. 꽃등심, 업진 등 네 부위 한우 모둠인 뱃장스페셜 400g이 9만2000원이다. 지난해 초 8만5000원이던 것이 꽤나 올랐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고깃값을 뛰게 했다더니 그 여파인지 몰라도 매장 가격도 가파르게 올랐다.
양이 1~2인분 정도라 가격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럴 땐 단품 요리로 배를 채우면서 한우를 안주삼아 반주를 즐기는 것도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가격이 비싼 메뉴일수록 부위는 같지만 고기의 질은 확연히 틀려진다. 그러니 모둠을 보고 이 식당의 육질을 싸잡아 판단하긴 이르다는 의미다. 앙증맞은 개인화로에 한두 점씩 올려서 느긋하게 구워 먹는 혼고기, 그것도 한우라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이리라.
비싼 한우가 부담이라면 가성비 좋은 삼겹살 혼고기 혼밥집이 있다. 대전 은행동에 가면 간판은 ‘왕순대’지만 삼겹살+공기밥+된장찌개를 5000원에 파는 곳이 있다. 식당 밖 POP에 ‘1인분 팝니다’, ‘삼겹살 혼자 먹을 수 있는 집’이라고 써 붙여 놓고 혼밥족을 환영하고 있다. 김치찌개 5000원, 제육볶음밥 4500원, 라면밥 3500원, 제육볶음 2인분이 1만 원 등 부담 없는 가격의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여사장님 혼자 꾸려가는 곳이기 때문에 종업원한테 들어가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대신 착한 가격을 유지하는 곳이다. ‘선불’을 받는 이유도 ‘나홀로 식당’이기 때문이다. 과거 순댓국을 팔다가 힘들어서 업종을 전환한 곳이다. 원육은 독일산을 사용하고 1인분 200g을 달아 준다. 마늘, 고추, 쌈장, 김치, 쌈채소로 반찬을 최소화한 것도 가격을 낮추기 위한 영업전략이다. 된장찌개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반찬은 더 이상 없어도 그만이다.
이 식당 쌈장은 집에서 담근 된장과 공장 된장을 적절히 섞은 것으로 쌈장과 된장찌개에 모두 사용한다. 은행동 지역이 구도심 재개발 지역이라 레트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쿠킹포일을 깔고 삼겹살을 구워 한 쌈 싸서 입안에 욱여넣고 소주 한잔 털어 넣고 나오면서 1만 원을 내면 2000원을 거슬러 주는 곳이다. 혼밥이 행복한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