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 ‘홍대닭한마리’‧다동 ‘무교동북어국집’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식당에 들어가 앉으면 가끔은 ‘결정 장애’로 주문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메뉴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맛보고 싶은 음식이 즐비하게 메뉴판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을 여럿이 가야 하는 이유는 이럴 때 다양한 메뉴를 시켜서 두루 맛볼 수 있기 때문인데, 요즘같이 회식이 줄고 혼밥이 늘고 있는 시대는 식도락들에겐 일종의 불행이다.
가끔 식당에 들어섰는데 결정 장애를 말끔해 해소시켜 주는 곳을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해소법이 달리 있는 것은 아니고 단일 메뉴만 취급하는 곳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유다. 한 가지 메뉴로만 식당을 하는 경우 일장일단이 있다. 장점은 한 메뉴에 고도로 집중할 수 있어서 음식 맛이 최고라는 것이다. 또 숙련된 조리법으로 주방이 바쁘지 않고 일정한 맛을 유지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단점은 그 메뉴를 좋아하는 식객들만 오기 때문에 손님이 한정적이고 여럿이 오는 경우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잠재 불평 식객이 있을 수 있다. 또 여러 가지 음식 맛보기를 좋아하는 식도락의 식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맛집으로 소문나지 않으면 매출을 보장받을 수 없는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단일메뉴를 고수하는 식당은 맛에 자신이 있고 결국 맛집이란 의미다.
이번 칼럼에서 소개하는 곳은 단일메뉴로 승부해서 맛집으로 평판이 좋은 곳이다. 단일메뉴 맛집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다. 맛뿐 아니라 업주의 친절함 역시 높이 평가받는 곳이다. 맛과 친절은 상호보완적 요소이며 둘 중 하나만 뛰어나다고 맛집 될 수 없는 세상이다. 요즘 트렌드는 ‘욕쟁이할머니 맛집’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일메뉴로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는 닭이다. 삼계탕, 닭한마리, 닭볶음탕 메뉴는 단일메뉴로 가능하며 실제로 많은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여름은 삼계탕과 닭한마리가 인기 많은 계절이다. 닭 자체가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해 여름철 지치기 쉬운 체력에 도움을 준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한방 재료는 이열치열 몸을 덥히기도 하고 녹두나 황기를 열을 잡아주기도 한다.
닭한마리는 삼계탕과 더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다. 과거에는 인삼이 들어간 삼계탕을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나름 다양하게 입맛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닭한마리를 많이 찾는다. 닭한마리 전문점 점포가 몰려 있는 종로5가 신진시장 닭한마리 골목은 과거 관광객이 몰려들 때는 대기줄이 장사진을 쳤을 뿐 아니라 실내도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건강에도 좋고 가성비도 훌륭한 음식이 닭요리란 점에서 관광객을 사로잡은 듯하다.
홍익대 쪽 어울마당로는 길옆으로는 고깃집이 즐비하다. 홍대 거리를 만끽하고 과거 주말이면 다양한 버스킹을 볼 수 있는 이유로 관광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다. 반면 길 건너 연남동 쪽 홍대입구역 주변(월드컵북로)은 홍대 쪽보다는 비교적 조용하지만 나름 운치 있는 맛집이 꽤나 있다. 특히 연남동, 연희동 지역은 홍익대 쪽 보다 맛집이 훨씬 많다.
홍대입구역 2번 출구 근처 ‘홍대닭한마리’는 오직 닭한마리 메뉴 한 가지만 취급하는 단일메뉴 식당이다. 홍대 거리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홍대 쪽보다 비교적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고 경의선숲길 공원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홍대닭한마리의 메뉴판을 보면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집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3개 외국어로 친절하게 안내돼 있다. 2009년에 지금 자리에 식당을 열었고 중간에 닭한마리로 메뉴를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람 수 대로 세트메뉴가 구비돼 있어서 주문이 어렵지 않다. 2인 세트(2만5000원)를 시키면 기본 닭한마리에 감자, 버섯, 대파, 떡 사리가 추가되고 나중에 끓여 먹을 칼국수까지 제공된다. 주방 센 불로 1차 조리를 마친지라 식탁에서는 5분 정도 더 끓이면 먹을 수 있다.
식탁은 가스불이 아니고 인덕션이라 불로 인한 위험이나 무더위를 면할 수 있다. 오래전 종로5가 원조닭한마리집에서 일본인 여성 관광객 머리칼에 불이 옮겨 붙은 것을 옆자리서 지켜본지라 인덕션의 안전성과 유용성이 새삼 더하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화력도 가스불보다 인덕션이 더 좋다.
전반적인 구성은 종로5가 닭한마리 골목과 비슷하다. 숙성된 고춧가루 양념에 간장, 겨자, 부추 등을 섞는 소스와 백김치. 백김치는 살포시 고춧가루가 들어가 벌건 색을 띠는데 엄밀히 말하면 물김치가 맞겠다. 홍대닭한마리에서는 겨자 대신 머스터드소스를 쓰는 데 단맛을 선호하는 일본인 관광객 때문인 듯하다. 일반 겨자에 대한 선택이 있는지 다음번에 가면 물어봐야겠다.
소스를 만드는 제법은 개인마다 틀리다. 그리고 칼국수를 삶을 때도 김치와 고춧가루양념 소스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진다. 이렇듯 닭한마리는 소스 배합과 칼국수 조리를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재미난 메뉴다. 닭 원육은 신선한 하림 제품을 사용한다. 소스와 밑반찬이 떨어질 무렵이면 홀을 지키는 사장님이 부리나케 채워준다. 필자는 이를 ‘슬기로운 장사생활’이라고 한다. 부르기 전에 먼저 채워주는 서비스, 최상급 친절이다.
다동에 가면 ‘무교동북어국집’이 있다. 1968년 현 코오롱빌딩 자리인 무교동에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호는 ‘터줏골’로 서울 3대 북엇국 명성을 얻었다. 1974년 현 위치로 이전했고 창업주 진인범 씨를 대신해 1997년부터 대를 이어 진광상 씨가 운영하고 있다.
이 집 역시 메뉴가 북어국(7500원) 달랑 한 가지다. 북어국은 해장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 그래서 전날 음주에 직장인들의 쓰린 속을 달래기 아침 7시면 문을 연다. 이른 아침 문을 열기 위해 이 점포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북엇국은 쇠고기 사골 육수에 북어대가리와 뼈를 우린 육수를 섞어서 만든다. 황태와 북어는 강원도 고성 덕장에서 말린 것을 사용한다. 푹 삶은 북엇국에 파는 송송 썰고 두부는 기다랗게 썰어 넣은 후 계란을 줄알 쳐서 내온다. 밥과 국을 더 달라면 리필해 주는 넉넉함이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 몰릴 때는 엔 긴 대기줄을 감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