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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수육은 '부먹찍먹' 홍어는 '활먹삭먹'

목포는 활먹‧영산포는 삭먹의 도시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호불호란 단어를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치면 ‘호불호 음식’이 완성어로 뜬다. 호불호는 한자로는 好不好로 好와 不好의 조합이다. 좋아하느냐 안 좋아하느냐란 두 개의 뜻을 한 단어가 포함하고 있다. 호불호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영역이 음식이다. 그래서 포털 검색에 완성어로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음식 영역에서 호불호는 좋고 싫음의 의미보다 먹느냐 못 먹느냐로 해석하는 게 맞다. 호불호 음식 중 대표적인 것이 홍어다. 특히 삭힌 홍어는 누구에게는 기막힌 별식이고 다른 누구에게는 코를 움켜쥐고 달아날 만큼 혐오의 대상일 뿐이다. 이번 칼럼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음식 중 하나인 홍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본다. 

홍어집밥모임서 선보인 홍어사합. 기존 홍어삼합에 키조개 관자를 더했다.

 

탕수육과 달리 ‘먹을 수 있고 없고’로 갈리는 홍어 


탕수육에 ‘부먹찍먹’이 있다면 홍어에는 ‘활먹삭먹’이 있다. 많이 알려진 대로 부먹찍먹은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에 따른 섭취 방법이다. 한 테이블에도 부먹찍먹 의견이 달라 일단은 소스와 튀긴 고기를 따로 내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주문 시 별도로 이야기를 안 할 경우 소스를 끼얹어 나오는 바람에 낭패를 보는 테이블도 종종 목격된다. 


탕수육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중화요리다. 그러나 홍어는 그 자체로 호불호가 큰 식재료다. 또 호(好) 쪽에서는 ‘활먹삭먹’이 기호를 나누는 큰 경계다. 갓 잡아 삭히지 않은 홍어를 뜻하는 활홍어냐, 아니면 푹 삭혀서 암모니아를 폭발시키는 삭힌 홍어냐를 두고 홍어 마니아의 입맛이 뚜렷하게 갈린다. 


전라남도 신안이 고향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홍어를 매우 즐겨 했다. 재임 당시 김 대통령의 식사를 책임졌던 천상현 전 청와대 조리팀장은 김 전 대통령이 삭힌 홍어보다는 활홍어를 좋아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입성 전에는 삭힌 홍어를 즐겨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이 펴낸 ‘대통령의 밥상’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삭힌 홍어뿐 아니라 낙지꾸리, 홍어탕을 즐겨했다’고 적고 있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를 10일 정도 숙성해서 식당으로 공수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 뒷골목엔 업력이 오래된 음식점이 제법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삭힌 홍어를 먹기 위해 다녔던 ‘신안촌’도 그 곳에 있다. 1986년 문을 열었을 때부터 김 전 대통령이 다녔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활먹삭먹’을 모두 좋아한 진정한 홍어 마니아인 셈이다. 

방이동 먹자골목 초입에 있었던 홍어전문점 ‘호남’. 여수 출신 여주인의 애탕 맛이 일품이었다. 어느 날 찾아갔지만 사라진 상태.

  

홍어 마니아 김대중 전 대통령 활먹삭먹’ 모두 즐겨


그렇다면 활홍어와 삭힌 홍어 중 영양학적으로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전남대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황은주 씨의 논문 ‘홍어 숙성 중 영양성분 변화’에 따르면 비타민C의 경우 활홍어에서 100g 당 0.52mg으로 가장 높았다. 비타민C는 숙성 7일째부터 감소하다가 14일째는 검출되지 않았다. 


비타민E의 경우도 활홍어에서 검출됐고 숙성과정에서 모두 사라졌다. 유기산과 유리당 함량은 숙성하지 않은 홍어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 숙성이 진행되면서 점차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영양학적인 측면에서 활홍어가 우세하다. 


그러나 총 구성아미노산 함량에서는 숙성 14일째 삭힌 홍어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 측면에서 삭힌 홍어가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단 의미다. 당연한 결과지만 홍어 특유 냄새인 휘발성 암모니아는 삭히는 과정에서 증가했다. 영양학적 측면으로 봤을 때는 ‘활먹삭먹’ 중 어느 것이 좋다는 판정을 쉽게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측의 마니아층이 두텁게 양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①전남 목포 오거리식당의 활홍어와 생물 애 ②경동시장표 삭힌 홍어와 냉동 애.

  

 활먹삭먹’  영양학적 측면서 우월성 판정 어려워 


홍어 호불호는 대부분 음식이 그렇듯이 어려서부터 먹어왔냐는 것이다. 입맛은 내림인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밥상에서 접한 것이 입맛으로 굳어진다. 부모 입맛과 많이 닮은 것도 같은 이유다. 그래서 홍어, 특히 삭힌 홍어를 나이 들어 기호식품으로 즐기긴 쉽지 않다. 필자는 어려서부터 삭힌 홍어를 좋아하신 어머니 때문에 ‘활먹부먹’ 관계없이 모두 좋아하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삭힌 맛이다. 좋아하는 탓에 홍어 식당에 대한 추억이 참 많다. 몇 곳을 소개해 본다. 


송파구 방이동 먹자골목 초입에 있던 ‘호남’집. 홍어전문이란 간판글씨가 옥호(屋號)보다 크다. 2013년에 간판에 ‘호남15년 전통’이라고 써 붙여 놨던 것이 이듬해엔 ‘호남20년 전통’으로 훌쩍 업력이 깊어졌다. 간판 한지 5년이 지나서 고쳐 쓴 것으로 보인다. 


여수 출신 여주인의 애끓는 신세 한탄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넉넉히 썰어 낸 홍어애와 입안이 화끈한 애탕 맛이 아련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점포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홍어집을 다녔지만 애탕이 이 집만한 데가 없었는데 아쉽다. 


신대방2동 주민센터 앞엔 엄태분 할머니가 홀로 운영하시는 의성식당이 있다. 이 집 주력은 직접 쑨 메밀묵이다. 홍어는 할머니 딸이 인근 상도동 도깨비시장에서 홍어무침 가게를 하는 터라 그 곳에서 떼다 파는 것이다. 메밀묵하고 궁합이 좋은 음식이라 홍어회가 꽤 인기가 있다. 


서해안 참홍어와 수입산 모두 취급한다, 수육이 없기 때문에 메밀묵과 합을 맞춰 먹으면 좋다. 미나리를 총총 썰어서 곁들임으로 주는 데, 홍어, 메밀묵 모두 맛이 순수하다. 할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지난해 어느 날 홀로 되셨다.


경동시장 영산포홍어(구 형제홍어) 사장님이 홍어를 해체하는 모습. 홍어식당 주인들도 이곳에서 사가지고 간다.


홍어전문점도 가고 도소매점서 직접 해체하기도 


홍어를 직접 시장서 사다 먹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씩 홍어를 사는 곳은 제기동 경동시장에 있는 영산포홍어집이다. 옛 이름은 형제수산, 의성 출신 형제가 붙어서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홍어를 사기 위해 갔을 때 ‘상중’(喪中)이란 문구와 함께 철시한 상태였다. 장사에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옆 자리를 보전하던 아저씨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의성식당 할아버지나 홍어집 아저씨 모두 안면이 있던 터라 마음이 먹먹했던 기억이다. 


아르헨티나 수입산 홍어를 주로 취급하는 곳인데 한 마리를 통째로 살 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은 해체해서 손질해 놓은 도시락을 구입해 간다. 한 마리는 약 5~6kg 정도 된다. 껍질 벗기기가 어려워 필자가 도왔던 적도 있다. 물론 썰기까지 ‘셀프’ 해체를 하는 쉽지 않은 경험도 누렸다. 시내 홍어식당에서도 이 집에서 해체한 것을 사다가 되파는 곳이 많다고 하니 일종의 홍어도소매점인 셈이다. 경동시장서 사온 홍어는 십 여 명이 모인 ‘홍어집밥파티’에 쓸 정도로 양이 넉넉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삭힌 홍어. 좌측 하단에 미나리가 듬뿍 올라가 있는 것이 의성식당 홍어다.


껍질, 내장은 물론 연골까지...버릴게 없는 소중한 어족자원 


올 초에 목포 오거리식당에서 시킨 총리밥상에 오른 홍어는 활홍어다. 목포지역에서는 삭힌 홍어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한다. 홍어를 배에 싣고 목포에서 영산강을 거슬러 영산포로 실어 나르다 보면 맛 좋게 삭는다. 그래서 목포는 ‘활먹’, 영산포는 ‘삭먹’의 도시다. 


삭먹이 좋은 데 활먹만 있을 경우 전을 부치면 암모니아가 활성화되면서 약간의 삭은 홍어 맛을 즐길 수 있다. 홍어 무침은 홍어 연골을 주로 사용하는 데 몸체 중간 부위다. 우리가 먹는 홍어 살은 주로 날개부위다. 간은 애라고 하는 데, 생간은 금세 녹아 기름이 되기 때문에 냉동애를 많이 쓴다. 애탕을 끓여 보리순을 곁들이면 궁합이 좋다. 껍질에는 젤라틴이 많아 묵으로도 해먹는다. 나머지 부산물은 홍어애탕에 넣고 푹 끓이니 버릴게 하나도 없는 어족자원이다. 


홍어는 평양냉면과 달리 호불호가 극단적인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먹어보고 즐기지 않는다고 하지 못 먹는다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홍어는 싫어할 경우 아예 입에 대지 않는 음식이다. 심지어 ‘삭힌 홍어’는 단어만으로도 혐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진정한 호불호 음식의 대표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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