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삼계탕‧고려삼계탕‧예신라삼계탕‧호수삼계탕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삼복 중 마지막인 말복이 내일이다. 초복과 중복은 하지로부터 각각 세 번째, 네 번째 경일(庚日)이다. 말복은 입추로부터 첫 번째 경일이다. 복(伏)이란 ‘엎드려 숨는다’는 뜻이다. 오행에 따르면 입춘에는 목이 수를, 입하에는 화가 목을, 입동에는 수가 금을 대신한다. 이는 상생 관계다. 그런데 입추에는 금이 화를 대신하는데 이 관계는 상극이다.
가을 기운인 금은 여름 기운인 화를 두려워하는 까닭에 금 기운으로 이루어진 경일(庚日)에 이르면 엎드려 숨어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는 이론이다. 말복을 맞는다는 것은 입추가 지났고 처서를 앞두고 있다는 의미다. 삼복은 절기에 속하지 않지만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서 한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중국 유래 속절(俗節)이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덕공(秦德公) 2년에 처음으로 삼복제사를 지냈는데, 성 4대문 안에서는 개를 잡아 충재(蟲災)를 방지했다고 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조선조 홍석모는 이와 관련해 ‘동국세시기’에서 “개고기를 파와 함께 푹 삶은 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한다. 여기에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개장국을 만들어서 산초가루를 치고 흰밥을 말면 시절음식이 된다. 이것을 먹고 땀을 흘리면 더위도 물리치고 보신도 된다.”고 소개했다.
반려동물 시대와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복날 개고기를 먹는 보신탕(영양탕) 문화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대신 최근에는 흑염소로 메뉴를 갈아타는 식객들이 늘었고 전통적으로 강세인 삼계탕도 복날 때면 여전히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삼계탕은 근대에 만들어진 음식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식탁 위의 한국사’에 따르면 1950년대까지도 삼계탕은 존재하지 않았고 백숙이나 찜닭 정도 메뉴로 식당에서 팔렸다. 계삼탕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한국전쟁 이후 대중식당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 계삼탕은 닭국에 값싼 백삼 가루를 넣은 것에 불과했다. 닭국보다 계삼탕이란 이름이 영업에 훨씬 유리했다. 무엇보다 고려인삼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삼을 첨가하면서 닭보다 인삼을 앞세운 메뉴 작명 전략을 펼친 결과가 삼계탕의 출연 배경이다.
육계업의 발달과 금산을 중심으로 한 강화, 파주 등 수삼 재배가 늘어나면서 서울에는 1960년대부터 영계백숙으로 팔던 식당들이 삼계탕이란 이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무렵 삼계탕으로 개업한 식당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중구에는 삼계탕 노포가 많다. 다른 메뉴 노포도 많은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고려, 백제, 신라 등의 이름을 가진 삼계탕 집이 몰려 있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서 벌어지는 삼계탕 新삼국지와 색다른 삼계탕집 한 곳을 소개한다.
지금은 시청역 인근 서소문동에 있는 고려삼계탕은 1960년 문을 열면서 삼계탕 전문점을 표방한 최초의 집이다. 원래는 명동입구에 있던 집이다. 1976년 지금 자리 맞은편 유원빌딩으로 이전했고 2년 뒤 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창업주 이상림 씨 아들 준희 씨가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다. 창업주는 원래 닭 도매상을 했고 부대사업으로 삼계탕 집을 연 것이다. 2005년에는 세종로에도 직영점을 냈다. 2008년에는 ‘고려삼계탕’ 상표권 분쟁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올 미쉐린가이드 플레이트(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로 선정됐다.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로 깔끔함 인상을 주는 이곳은 일반 삼계탕 외에 오골계를 이용한 삼계탕 역시 대표 메뉴로 꼽힌다. 산삼과 전복을 활용한 삼계탕 또한 건강식으로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한편, 이곳의 삼계탕은 모두 돌솥에 조리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따뜻한 상태로 즐길 수 있으며, 한국식 전통 닭 요리를 즐기기에 훌륭한 레스토랑”이란 선정 이유를 달았다.
개인적으로는 기름을 뺀 담백한 삼계탕 맛을 특징으로 손꼽는다. 이를 맛보기 위해 내국인은 물론 일본,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 한옥 기와로 마감 빌딩 꼭대기는 맛과 더불어 이 식당을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명동에서 1971년 창업해 2대째 운영하고 있다. 백제삼계탕은 직영농장에서 닭을 키운다. 그래서 당일 도축한 싱싱한 49일 된 영계만을 사용한다. 인삼, 대추, 찹쌀, 마늘만으로 맑은 삼계탕 국물을 만들어내는 정통 제조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김치, 깍두기, 인삼주 등 모든 반찬을 매일 직접 만들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 각종 방송과 신문, 잡지에 단골로 등장했고 일본 아사히TV, 후지TV 등 전파를 타면서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 일본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동이란 장소성도 있지만 일본인들에게 ‘백제’가 주는 친근감과 건강식이란 이미지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전국적으로 백제삼계탕이란 상호를 쓰는 곳이 많지만 이 집에서 특허청에 서비스상표권을 등록했다고 한다. 따라서 명동 이외 다른 지역의 백제삼계탕 상호는 명의 도용이라며 착오가 없길 바란다고 했다.
본점은 중구 순화동에 서소문엔 분점이 있다. 1대 남월진 대표에 이어 2대 장녀 남경선 씨가 서소문 분점 점장으로 금고를 지키고 있다. 1대 남 대표는 아직도 주방에서 손맛을 지키고 있다. 다른 삼계탕집 보다 1~2호 정도 큰 닭을 쓴다. 닭밝을 잔뜩 넣어 푹 고운 다음 견과류와 마늘을 갈아 넣은 육수는 젤라틴의 끈적임과 고소함이 한껏 살아있다.
새콤한 양파김치, 새콤달콤한 조선부추, 김치와 깍두기 모두 수준급 밑반찬이다. 양파김치는 삼계탕과 매우 잘 어울린다. 다른 곳에서 베껴 갈 만한 아이템이다. 고려삼계탕, 백제삼계탕과 함께 시내 한복판인 중구의 ‘삼계탕 삼국지’를 완성하는 곳이다. 이들 모두 1대에 이어 2대가 가업을 잇는 특징이 있다. 소공동 롯데호텔엔 고구려삼계탕, 목포엔 후백제삼계탕도 있다니 넓게 보면 삼계탕 춘추전국시대다.
중구에서 벗어나 영등포구 신길동엘 가면 ‘원조호수삼계탕’ 타운(?)이 있다. 인근 몇 개 건물을 사들여 거대한 촌(村)을 만들었다. 본관, 별관, 별채, 2호관, 3호관 등 인근이 원조호수삼계탕 타운이다. 좌석을 아무리 늘려도 한 여름에는 줄 서기를 각오해야 한다. 이 집 삼계탕은 탕이라기보다 죽에 가깝다. 들깨죽에 닭을 ‘퐁당’한 격이다.
독특하고도 맛이 굉장한 삼계탕이다. 들깨와 삼계의 풍미가 잘 어울린다. 닭은 비록 작지만 연하고 고소하다. 들깨와 견과류를 갈아 만든 육수(?) 때문에 뱃속 든든함이 오래간다. 통 오이와 아삭이 고추를 풍성하게 준비해 놓고 셀프로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을 찍어 먹는 고추장 맛이 일품이다. 맵지도, 달지도, 쓰지도, 짜지도 않은 매우 중립적인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