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전통시장 인근 '수구레국밥'의 국밥ㆍ종로5가 신진시장 '샘터' 볶음
어렸을 적 어렴풋 들었던 ‘군화 설렁탕’ 사건이 뇌리에 남아있다. 지금껏 사건의 주범이 소가죽인 줄로만 알았다. 군화 바깥쪽 가죽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주범은 수구레였다. 피혁회사에서 공업용으로 써야 하는 수구레를 식용으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했고 이를 가지고 상인들은 묵, 튀김, 볶음, 심지어 설렁탕에 넣어 팔았던 희대의 사건이 70년대에 있었다.
수구레는 소의 가죽 껍질과 육질 사이 물컹한 완충지대를 일컫는다. 소가죽 내피에서 긁어내 익혀 먹으면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좋다. 구워서 먹진 않고 주로 푹 삶아서 무침이나 선지와 함께 탕을 끓여 먹는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대에는 꽤 사랑(?) 받는 식재료였지만 요즘은 취급하는 데가 많지 않다.
수구레는 전과(前科)가 꽤 많은 식재료다. 뉴스 아카이브를 통해 수구레의 전과를 조회해 봤다. 수구레가 가장 처음으로 신문기사에 등장한 것은 1966년 5월 17일 자다. 매일경제를 보면 ‘개정된 무역계획 따라 수입개방된 품목’이란 제목으로 ‘상공부는 16일 3백80개 품목의 수입개방을 위한 상반 무역계획을 확정시켜 공고했다’고 보도했는데, 수구레가 포함된 것이다.
수입된 수구레는 주로 피혁공장으로 들어가는 공업용이었다. 그런데 돈에 눈먼 자들로 인해 식용으로 둔갑하면서 죄를 범하기 시작한다. 정확히 2년 후인 68년 수구레로 묵을 해서 팔다 걸린 사건이 경향신문 가십난에 보도된다.
‘서울영등포서는 (6월)16일 하오 가죽공장에서 버린 가죽조각으로 영등포시장에서 수구레 묵을 만들어 판 김흥근 여인(41‧양남동 23)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수구레 묵 2드럼을 압수. 김 여인은 지난 3월부터 가죽 공장에서 버린 가죽조각을 물에 빨아 며칠씩 불린 후 가죽에서 나온 액체로 묵을 만들어 한모에 50원씩 시중에 팔아 왔다는 것.’
이듬해 69년 7월에는 경악할만한 사건이 보도된다. 피혁회사에서 유출된 소가죽과 수구레가 튀김, 볶음, 심지어 설렁탕 등 식용으로 둔갑해 유통되다가 걸렸다는 기사다. 그 유명한 ‘군화 설렁탕’ 사건이다. 경향신문은 ‘미국 및 호주 등지에서 군화제조용으로 수입된 쇠가죽에 붙었던 고기가 시중에 흘러나와 서울역 앞, 동대문시장 등 노점상에서 튀김, 볶음 둥으로 시판되어 온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시 부정식품단속반은 14일 하오 서울 종암동 4의2 박찬을 씨(40) 집과 서울 양평동 73 이경춘 씨집을 급습, 박 씨 집에서 2천 kg, 이 씨 집에서 9백 kg의 군화제조용 수입 가죽에서 뜯어낸 고기를 압수하고 박‧이 씨와 고기를 박 씨 등에게 판 조광피혁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단속반은 이 고기가 족편원료와 설렁탕 고기로도 쓰인다는 정보에 따라 조사를 확대했다. 당시 수구레는 미국, 호주 등지에서 수입을 했는데, 인체에 유해한 화학약품으로 처리해서 문제가 됐다.
조광피혁은 박순경이라는 총무과장이 사건에 연루됐지만 대한피혁의 경우 유한기 사장과 유성원 부사장 등 경영진이 주도해서 충격을 줬다. 이들은 식당 상인에게 직접 판매하지 않고 중간 판매상에게 팔았다. 70년에는 유해 수구레 족편, 71년에는 포르말린 처리를 한 유해 수구레, 후로는 화학약품 처리한 수구레가 끊임없이 먹거리 안전을 위협했다.
76년에는 유명한 식품공학자인 유태종 고대 식품공학과 교수가 나서서 ‘부정불량 식품의 정체’란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시리즈를 실으면서 5회 차에 수구레족편을 다뤘다. 유 교수는 “해방 후에 많은 양의 쇠가죽이 미국으로부터 수입되자 수구레 가공이 활발해졌다. 쇠가죽에 단단히 눌어붙어 말라 버린 고기는 가죽을 만들 때 떼어 내어야 한다. 불필요하게 말라붙은 고기를 떼어 내려면 부드럽게 불려야 한다. 그런데 물에 불리면 고약한 냄새를 내며 썩게 되므로 머리가 좋은 부정식품 업자들은 포르말린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적고 있다.
포르말린 용액은 생물표본을 만들 때 병에다 채우는 무색 방부제다. 포름알데히드의 40% 수용액을 포르말린이라고 부른다. 환원성이 강해서 사진 화학용약품, 합성색소, 플라스틱제조, 살균제로 널리 쓰인다. 인체에 들어가면 눈과 목을 강하게 자극하며 단백질 성분중의 아미노기와 결합해서 단백질을 변질시킨다.
특히 상부기도를 자극해 점막을 으깨며 화농성 염증을 일으켜 피부조직을 파괴한다. 증세가 심해지면 식욕이 감퇴하고 체중이 줄면서 불면증, 과민증으로 고생한다고 유 교수는 적고 있다. 애꿎게도 죄 없는 수구레가 사람들의 탐욕에 의해 전과가 날로 늘어났다. 경제가 발전하고 먹을 게 풍부해 지자 사람들은 수구레를 점차 잊었다. 그러나 수구레는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먹거리로 명맥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해 세종조치원 복숭아축제 평가보고회를 듣기 위해 조치원엘 다니러 갔다. 조치원역서 전통시장 쪽으로 가다 보면 공영주차장이 나오는데 그 언저리에 ‘수구레국밥’이란 식당이 있다. 이 집은 수구레국밥과 선지 수구레국밥 두 가지만 판다. 대표메뉴에 집중하겠단 의미다.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할지 주문을 받을 때 물어본다.
필자는 선지수구레를 시켰다. 얼떨결에 시켰는데 순전히 ‘선지’에 대한 익숙함과 친근함 때문이다. 모르는 식당에 가면 가장 꼭대기 메뉴를 시키는 철칙도 깨졌다. 선지수구레는 두 번째 메뉴다. 그만큼 수구레는 아직 낯선 식재료다. 오후 1시가 넘었는데도 좌석 80%가 찼다. 장사가 잘되는 집이란 의미다.
잠시 후 뚝배기에 그득 담겨 선지수구레국밥이 나왔다. 밥은 따로 나온다. 양을 보니 여성이 소화하기엔 버거울 정도로 많다. 소의 껍질과 육질 사이 지방 덩어리인 수구레에는 콜라겐이 많다. 콜라겐을 뜨거운 물로 처리하면 얻어지는 단백질을 젤라틴이라고 한다. 젤라틴은 영양성분이 없다.
주문한 선지수구레는 선지가 많은 대신 수구레 양이 적은 게 흠이다. 이를 소고기가 채워준다. 어디 부위 냐고 여사장에게 물었는데 “왜 물어보냐”고 되묻는다. 별게 아닌데도 극도로 경계하는 눈치다. 소고기는 살결만 보면 대략 부위가 특정된다. 그럼에도 여사장은 두 번을 물어도 답을 안 준다.
뭉근하게 익은 여름 무 깍두기 맛과 선지 수구레 국의 양념이 잘 어울린다. 김치가 싱거운 건 건 국밥의 센 염도를 감안한 듯하다. 처음엔 본연의 맛을 즐기다가 중간에 곱게 간 청양 고춧가루를 조금 치면 시원한 매운맛을 즐길 수 있다. 조치원에는 전통시장 안과 주변에 수구레국밥집이 서 너 군데 있다. 맛을 비교해 보는 것도 식도락의 재미다.
종로5가 신진시장 ‘샘터’ 포차 수구레볶음도 기억에 남는다. 서울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수구레볶음을 한다.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데 이날은 너무 삶아 흐느적댔다. 그래도 나름 먹을 만했다. 다만 냉동실에 오래 보관돼 있던 터라 선도가 떨어져 군내가 났다.
신선한 수구레는 냄새가 없어야 한다. 의성이 고향이라는 포차사장님, 인심 좋게 봄동 지짐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배추적도 맛나지만 봄동도 뒤지지 않았다. 꼴뚜기회, 장대찜 등 코앞에 안주거리가 어른대서 포차에서는 늘 과식하게 된다. 신진시장은 원래 돼지곱창 볶음이 유명한 곳이다. 한편 수구레는 과거 오명을 이제는 완전히 벗었다. 식생활의 풍요가 가져온 긍정적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