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인문아카데미] 전통 없이 살 수 있나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임무 - 진화되어야 하는 전통

전통 없이 살 수 있나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임무- 진화되어야 하는 전통

배기동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총장


인공지능시대의 인간 아이러니


오늘날 전자문명시대가 꽃을 피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그 반대로 황폐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불안해하고 또 고독해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수많은 만남, 편리함 그리고 정보취득의 용이함 속에서 사람들은 실업 걱정, 조기퇴직 걱정 그리고 남의 시선 걱정, 고독 등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속 깊이 배어 있던 인간사회의 걱정을 온마음속에 담고 살고 있다. 디지털시대가 시작된 것이 인류사에 오래된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그 힘은 과거의 모든 문명을 다 동원하다고 해도 막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인간의 감성과 공동체의 따스함이 인류를 구제할 것이다. 이제 막 시작된 인공지능의 시대는 훨씬 급속도로 인간을 소외하게 만들 것이다. 그 해결법은 바로 인간이 살아온 과거에 숨어 있다.


왜 그럴까?


나의 학문은 구석기고고학으로서 인류진화학자이다. 긴 시간 속에 인간의 보편적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한다.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우리가 구 속에 빠져 있어서 모르고 살지만 고독해서는 안 되는 동물이다. 사회적으로 살기 때문에 또는 살기 위해서 진화한 특징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의 체질적인 진화가 인간의 이러한 사회적인 구성에 맞추어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인간의 심리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진화의 원리상 지속적으로 그러한 것을 직접충족 또는 대체충족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않으면 지구상에서 사라질 운명이 되는 것이 진화의 원리이다. 환경과 사회성의 관련성에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전통,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이 아니다.


인간의 지혜의 동물이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는 이름이 바로 지혜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있다. 이러한 지혜 덕분에 수많은 기후환경 변화에도 인간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지혜란 어려움이 있을 때 발휘가 되면 우리는 지혜롭다고 한다. 어느 동물이건 어려움을 당하기 마련이다.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가? 머리가 좋아서? 절반만 맞다. 경험의 데이터 베이스가 중요하다. 바로 문화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그 멀고 먼 시기부터 누적되어 온 것이다. 그중에는 보편적인 것도 있고 또 그 지역의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 민족 또는 그 지역 사람들의 전통이고 바로 지혜의 집합적 단어이다. 지혜, 할아버지 것만이 아니다. 누구나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생물의 세계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즉 인간이 진화, 즉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행위의 지적인 지침을 만들 것이다.


전통,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은 공기와 같은 것이다. 전통은 살아가는 환경과 체질 그리고 조상의 생각과 행동이 조화롭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 지역에서 그 몸뚱이로 태어난 이상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것이다. 왜냐고? 생각과 행위가 환경에 맞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생각을 벗어나게 되면 오래 살 수가 있을까? 인간의 적응은 몸과 생각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러한 것이 환경에 맞지 않는 시간을 오래 가지게 되면 무엇인가 병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전통, 그 땅의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지혜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전통은 진화한다. 시대가 변하면 그 전통도 변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핵심가치는 오래오래 갈 수도 있지만.... 왜 전통을 구박해!!!!! 죽으려면 어찌하는 수가 없지만… 공기 없이 살 수 있어?


우리 전통은?


어쩌면 요즈음 '케데헌'이 우리 전통을 새로이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애니메이션 영화를 논하는 바닥에는 '돈'과 '국제적 인기' 그리고 '애국심'이다. 케데헌이 전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것은 인간 공통의 고민을 새로운 한국적인 상징을 치밀한 구성과 아름다움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가진 고민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이 새로운 모습을 가진 것이어서 문화 속에 내재된 정신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 그리고 애니메이션에서 보여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이 새로운 호기심을 유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케데헌이 언급될 때마다, 아쉽게 생각되는 점은 전통이 아름답고 오늘날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음에도 정작 그 가치를 잘 알아야 하는 우리는 그러한 작품을 생각하지 못하였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점, 또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재정적 그리고 제도적인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석화된 전통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소위 '원형'에 매몰되어 새로운 세상에 맞는 전통의 진화가 단절된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전통,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이태원사건은 나에게는 학문적으로도 사무치는 슬픔이었다. 전통을 연구하는 자가 새로운 세대의 욕구를 읽지 못하여 세상에 지옥 구멍을 만든 셈이니 책임을 통감할 밖에 없다. 왜냐고? 첫째는 왜 우리가 젊은이들이 핼러윈에 매료되도록 즐거운 축제를 만들지 못하였다는 죄책감이다. 핼러윈의 매력은 어린이들이 누구나 다 누구나 다의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만든 축제이다. 사회적 소통을 극대화하는 할아버지의 고수 지혜이다. 우리에게 없는가? 우리도 당연히 있다. 계절마다 행하던 세시풍속이 바로 그것이다. 추운 겨울날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는 풍습이나 정월대보름이 되면 농악대가 동네 곳곳을 방문하여 한 해의 안녕을 다 같이 기도하고 동네의 누구나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강강술래를 달빛 아래 추는 군무를 하던 풍습이 있었다. 개인과 동네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였다.


김치가 왜 세계유산이 된 것인지 아시는가? 마을 두레적인 축제로서 김장이 등재된 것이다. 유물로서 김치 자체가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도 즐기면서 친구가 되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이 전통에 녹아들어 있다. 핼러윈 역시 미국인들이 암울한 겨울을 지내며 공동체의 어린이들이 사회성을 배울 수 있도록 개인의 성(城)을 개방하는 축제인 것이다. 전통에는 그러한 지혜들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이 민족에 따라 환경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될 따름이다. 우리가 기억에 너무도 강하게 남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문화전통의 지혜로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 전통의 심오함을 잊고 살기 때문에 벌어지는 우리의 어러움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통은 개인과 공동체에 주는 할아버지의 계시


내가 대학교 다닐 적에 고 이두현 교수 강의의 숙제를 하기 위해서 양평을 돌아다니며 할머니들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할머니들이 자신의 어릴 적, 젊을 적 전통적 행사에서 오는 감동을 말씀하시면서 좋아하시던 그 모습을 보고 나도 감동된 적이 있다. 젊을 적의 좋은 기억들이 그러한 축제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또 다른 전통이 감동을 준 것 하나는 보길도에 학생들과 답사를 갔을 때이다. 논두렁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누가 제사 지내고 까치밥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까치밥? 우리 집도 제사 지내면서 까치밥을 내 놓지만 흉내만 낸다. 그야말로 화석화된 전통이다. 보길도의 경우 실제 거리와 행인들의 배고픔을 위해 나누는 행위로 까치밥을 내어 놓았던 것이다. 아! 역시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야. 오늘날 이 추운 겨울날에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큰돈을 기부하는 것이 신문에 나곤 한다. 감동적인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을 위해서 기부 또는 도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 크고 적고 간에 우리 전통의 까치밥의 상징적 의미를 넘지 못할 것이다. 지식은 이제 인공지능이 모두 금방 다 알려줄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우리 할아버지 '지혜'는 우리가 몸소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고 실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디지털세상은 지옥이 될 것 같다.


풍속은 진화해야 한다


자연이나 사회나, 세상이 바뀌면 그 어느 것도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바뀌지 않은 것으로 세상을 어떻게 극복 적응하겠는가? 이제 디지털세상이고 글로벌세상이고 나 홀로 세상이다. 이런 세태에 맞추어 우리 풍속도 새로운 진화를 해야 한다. 김장철이 사라졌다. 나 홀로 가족이 많으니 자연스러운 풍조이다. 그렇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김장은 하나의 겨울 축제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모여서 김장하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그 진정한 가치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모두가 나와서 자신의 김치를 만드는 계절 축제로 다시 태어날 수는 없을까? 김치문화도 다양화하고 개인적 취향에 맞는 김치를 만들어 김치도 진화하고 또한 단절된 아파트공동체의 문화를 복원하여 사회를 더욱 안전하고 살만한 곳으로 바꿀 수는 없는가? 단오절에 창포물에 머리 감는다는 풍속, 그럼 아직도 우물물이나 냇물에 담가야 한다면 정말 꼴통석두일 것이다. 매일 샤워하고 머리 감는 생활 속에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다만 그렇게 화석화된 전통을 고집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왜, 전국의 이발소 미용소가 참여하는 축제를 만들지 못하는가? 머리에 자신의 개성을 담아서 꽃피는 봄날, 화사하게 자신만의 개성으로 치장하고 세상을 거니는 풍경을 연출하며 즐기는 인생을 만들어 줄 수 없을까? 광화문에 개량 한복을 입고 거니는 외국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언젠가 국회에서 외국인들이 개량한복을 입고 다닌다고 호통치는 의원을 본 적이 있다. 문화는 물과 같고 바람과 같은 것이다. 풍속, 바람풍이다. 상황이나 환경에 맞추어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케데헌 역시 다차원적인 문화융합으로 만들어진 현대만화극이다. 이제 우리 전통을 새롭게 바라보고 깊어가는 디지털 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할아버지 지혜를 살려내야 할 것이다. 우리 문화정책 당국이 더욱더 숨겨진 대중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전통의 활용을 더욱 고민해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할아버지 전통, 그것이 인류세에 살아남는 비결이다.


1.JPG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 이 글은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문지인문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강연자의 허락을 받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