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중고 명품 구경에 가성비 좋은 식사까지 원스톱 해결

서울미래유산 서울풍물시장의 무지갯빛 매력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서울풍물시장을 아시나요? 가보지 않고는 어떤 시장인지, 어디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서울의 시장이 있다. 바로 서울풍물시장이다. 이 시장이 낯선 이유는 타의에 의해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닌 탓이다.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시장’을 표방하는 서울풍물시장은 보통 시장과 달리 서울시의 개발논리에 의해 이동을 거듭하면서 자리를 잡은 독특한 시장이다. 부평초 같은 상인들의 삶 속에 수많은 애환이 담겨 있고 그들이 취급하는 오래된 물건 속에도 다양한 사연이 숨어 있는 흥미진진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흔히들 서울풍물시장을 ‘고물이 보물 되는 중고 명품 장터’로 부르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 쪽으로 나오면 지하철역 내부에 다소 요란한(?) 풍물시장 안내 홍보물이 붙어 있다. 적극적인 안내 홍보물로 요란하게 홍보를 잘한다는 의미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골목 안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골목을 따라 시장을 찾아가다 보면 몇 개의 재미난 서울의 시층을 만날 수 있다. 


금요일 아침나절이면 골목 초입에 과천 경마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경마정보지를 파는 좌판들이 늘어서기 시작한다. 골목 안에는 한국마사회 동대문지사가 운영하는 화상경마장이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서울경마장에서 경기가 없지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열리는 경마를 교차 중계하고 베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린다. 이곳에 마사회 동대문지사가 들어서 있는 이유는 과거 근처에 경마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차례 내몰린 끝에 옛 숭인여중 자리에 자리 잡아


고물이 보물 되는 중고 명품 장터로 알려진 서울풍물시장.


우리나라 경마는 갑오개혁이 일어난 1894년부터 서구식 경마가 태동했고 1914년 일본인에 의해 최초 경마가 용산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연병장에서 시작됐다. 그 후 일제가 비행장으로 터를 닦았던 여의도, 훈련원(현 동대문운동장) 등지에서 열렸다. 1922년 한국 최초 경마시행단체인 사단법인 조선경마구락부가 발족했고 한강 백사장에서 매년 봄, 여름에 경마대회를 열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했다. 이때 한강 백사장에 있던 경마시설도 망가졌다. 그래서 1928년 ‘경성경마장’을 신설동으로 옮겼다. 마사회 동대문지사가 자리 잡은 역사적 배경이다. 경성경마장은 1945년 해방과 함께 경마장 이름을 ‘서울경마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경마산업이 붕괴됐고 1954년에 가까스로 성수동에 새로운 경마장을 마련했다. 바로 그 유명한 뚝섬경마장이다.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과천에 승마경기장 겸 경마장이 들어서면서 뚝섬경마장이 사라지는 등 짧지만 곡절이 많은 경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경마지 좌판으로 어수선한 마사회 동대문지사 골목을 지나면 왼편으로 우산각어린이공원과 동대문도서관이 나타난다. 우산각어린이공원은 이 일대를 과거 우산각골(우산각리, 雨傘閣里)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우산각이란 조선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하정(夏亭) 유관(柳寬) 선생이 살던 집 이름이다. 


하정의 집은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샐 정도였는데 이때 방안에서는 우산을 받쳐 들고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학문하는 선비의 청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서울시교육청 동대문도서관 외벽에는 하정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동대문도서관은 버선코처럼 날렵한 처마를 가진 독특한 외형의 건축물이다. 게다가 공중에서 보면 삼각형 건물이다. 1971년 3월 동대문도서관으로 개관한 꽤나 역사가 깊은 공공 도시건축물이다.


청계천 복개‧복원 역사와 맞물린 시장 역사


서울풍물시장은 황학동 청계천변에서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으로 강제 이전을 당한 후 또다시 옛 숭인여중 자리 부지에 시장을 지어 옮기는 등 수난과 이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대문도서관 바로 옆이 서울풍물시장 후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정문은 청계천 쪽에 있다. 서울풍물시장의 역사는 청계천의 역사와 맞물린다. 1900년대 들어 일제의 농지와 미곡 수탈로  농민의 이농현상이 가속화된다. 시골서 올라 온 농민들은 사대문 밖 청계천 주변과 창신동 산기슭에 판잣집을 짓고 살면서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학동 청계천변에는 고물상과 중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모여 자연발생적인 시장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황학동벼룩시장, 황학동도깨비시장의 시초다. 청계천 일대를 비롯한 중구, 종로구 일대에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등 우리나라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주요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황학동은 이들 시장과 연계해 물품 유통의 마지막 통로이자 중고물품 유통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69년 청계 고가도로 건설, 1973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되고 주상복합건물인 삼일시민아파트가 건립되면서 일대가 상업공간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된다. 그 후 지금까지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광장시장 등 주변 중심 상권에 편입되지 않고 사회문화적 배경의 변화에 따라 주요 거래 물품이 바뀌면서 꾸준히 성장했다. 1970년대 골동품, 고가구, 헌책방이 주요 상점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86아시안게임 때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안평에 골동품상가를 새로 짓고 이들을 이주시켰다. 


1990년대에는 음반 비디오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취급하는 유통점이 중심에 자리했다. 이러한 상점과는 반대로 노점은 꾸준히 헌 옷류, 만물류를 비롯해 각종 잡화, 성인용품, 군용품을 취급하면서 주변 빈민계층의 생활용품을 공급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공약이었던 청계천 복원사업은 2003년 7월1일 착공, 2005년 9월30일에 완공됐다. 황학동 벼룩시장 노점상을 비롯해 청계천변 노점상에 대해 서울시는 보상과 관련한 특별한 대책 없이 청계천 복원을 시행했다. 민원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서울시는 착공 4개월 만인 2003년 11월 노점상들에 대한 강제철거를 집행했다. 


서울시는 대안으로 철거 노점상들에게 동대문운동장과 동묘역 부근 주말 벼룩시장을 제안해  2004년 1월 ‘동대문풍물벼룩시장’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세훈 서울시장으로 바뀐 후 2006년 디자인콤플렉스건립계획을 발표하면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기로 했다. 당시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벼룩시장에서 940개 점포 노점상들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체계적 관리로 쾌적한 쇼핑 환경 갖춰


시장 내부는 최근 냉난방 시설을 갖추면서 쾌적하게 바뀌었다. 판매 물품에 따라 구획을 색으로 나눠 쇼핑 편의를 도모했다.


이들에 대한 생계대책은 당시에도 뾰족한 게 없었으나 마침 2005년 학교 이전으로 비어있던 옛 숭인여중 부지가 대체지로 부상했다. 2008년 8월 우려곡절 끝에 894개 점포가 이전하기로 합의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서울풍물시장은 2008년 4월 26일 정식 개장했다. 청계천 복원 전 황학동벼룩시장에 있던 노점 상인들이 청계천 복원공사에 밀려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으로 내몰렸다가 DDP 공사 때문에 다시금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서울풍물시장은 전반적인 관리가 잘되는 곳이다. 시설현대화 사업을 이끈 정성태 상인회장의 역량도 한몫했다. 시장은 건물 전체를 품목에 따라 무지개 색깔로 구분하고 있다. 빨강동은 음식점, 주황동 구제의류, 노랑동 생활잡화, 초록동 골동품‧만물, 파랑동 스포츠의류‧명품 남성복‧작업복‧ 군복, 남색동 생활잡화, 보라동 레저용품‧카메라‧의류 등이다. 


2층에는 60~70년대 서울 시내 상점가를 재현한 테마존인 청춘1번가가 있다. 옛날 아날로그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청춘이발소와 다방이 실제 영업 중이고, 60·70년대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청춘사진관’을 비롯한 복덕방, 국밥집, 전당포, 만화방, 문구점, 풍금 소리가 울려 퍼지는 추억의 교실 등 ‘청춘’에 대한 향수와 이야깃거리를 테마로 꾸몄다. 풍맛골은 어묵, 호떡 등을 파는 야외 식당가다. 


소머리국밥‧해물찜이 유명한 빨강동 식당가

  

빨강동 식당가는 소머리국밥집과 해물찜집이 여러 곳이다. 그중에서 소머리국밥 전문점 <원조 마장>은 무쇠 솥으로 곰국을 우려내 농후한 맛과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이다.

시장 구경을 한창 하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걱정 마시라. 서울풍물시장 내부에는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식당가가 잘 발달돼 있다. 지난해 시설현대화 사업을 거치면서 냉난방 시설은 물론 식당 쪽도 외벽을 둘러 식사 환경과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후문 쪽에는 만물과 잡화를 파는 초록동 입구와 식당으로 들어가는 빨강동 입구가 따로 있다. 빨강동 문을 열어젖히자 소머리국밥 전문점 <원조마장>이 나온다. 빨강동은 소머리국밥과 해물찜, 아귀찜 등이 유명하다. 


<원조 마장> 주방 앞에 걸어둔 커다란 무쇠 가마솥에서는 연신 뜨거운 김이 푹푹 새 나오고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자리를 잡은 뒤 고인 침을 목젖 뒤로 꿀꺽 넘기고 “소머리국밥 주세요”를 외쳤다. 국밥 한 그릇을 대‧중‧소 세 종류로 나눠 파는 것은 난생처음 본다. 서울풍물시장 개장 때부터 10년 동안 장사를 해온 우선애(59) 사장은 “세 종류 중에 소자가 가장 잘 팔린다”며 “크기는 소지만 양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무쇠 가마솥은 인근 황학동 중앙시장 주방거리에서 사 온 것이다. 개업 초기부터 걸어 두고 장사를 했다. 혹시 순대 맛도 볼 수 있냐고 하니 오소리감투와 몇 점을 썰어 내줬다. 순대는 따로 돈을 받지 않았다. 재래시장의 매력적인 인심이다. 가마솥에서 끓인 소머리국밥은 진하고 고소했다. 가마솥을 열어보니 사골이 가득하다. 노란 곰국물이 농후하게 설설 끓고 있었다. 


우 사장은 “우리 음식은 한번 보다 두세 번 끓이는 게 맛이 좋다. 뜸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밥만 뜸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국에도 뜸이 있다. 저녁에 끓여 놓으면 다음날 아침까지 은은한 온기가 남아 있는 무쇠가마솥은 양은솥과 맛이 다르다”며 소머리국밥 맛의 비결을 자랑했다. 


특히 모든 재료는 새벽에 경동시장에 사 와서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신선도가 맛을 보장한다고 덧붙였다. 장사를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찬밥을 팔아 본 적이 없다는 우 사장은 “이곳 식당가에는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분들이 참 많다”며 “좋은 식재료, 저렴한 가격, 맛있고 다양한 음식이 있는 곳”이라며 빨강동 식당가를 홍보했다. 


적당히 우러난 곰국에 쫄깃한 소머리 살을 넉넉히 넣어서 다시 한번 팔팔 끓여 내오는 소머리국밥과 김치, 깍두기의 궁합이 좋다. 김치는 사 오지 않고 우 사장이 직접 담근다. 재료도 모두 국산으로만 사용한다고 했다. 서울 태생이라 집에서는 김치에 새우젓만 넣었는데 식당 손님 상당수가 전라도 사람들이라 멸치액젓 등을 섞어서 만든다. 그래선지 깍두기 국물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더했다. 내오는 반찬을 보니 식재료를 아끼는 집이 아니란 느낌을 받았다. 


소머리국밥은 전통 조리서에는 나오지 않는 메뉴다. 소머리는 소를 도축한 후 나오는 뼈, 피, 꼬리, 내장 등과 함께 부산물로 취급된다. 과거 마장동에서 소를 도축했기 때문에 인근 황학동, 왕십리 등지에 소머리국밥과 곱창, 막창집이 많이 들어섰다. 소머리와 사골, 양지 등을 가마솥에 넣고 오랫동안 푹 우려내야 제 맛이 난다. 그런 면에서 <원조마장>은 전통방식을 잘 재현하고 있는 곳이다. 


우 사장은 “서울풍물시장의 매력은 재래시장 치고는 환경이 깨끗하고 음식과 물건 값이 싸며 쉽게 볼 수 없는 진귀한 물건, 옛날 물건들을 구경도 하고 살 수도 있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은 서울풍물시장과 식당가를 둘러봤다. 서울풍물시장은 다른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시장으로 우리 고유 정서와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정체성을 가진 시장으로 보전가치가 높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작가의 이전글 영원한 서울의 중심 종로는 맛집 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