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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백운동천 물길 주변은 맛집 천국

청계천을 이루는 5대 물길인 백운동천, 삼청동천, 흥덕동천, 창동천, 남소문동천 등을 걷다가 마주치는 맛집에 대한 소개를 5회에 걸쳐 합니다. 물길 답사는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 문화지평에서 기획하고 실행하며 서울시가 후원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옛 물길 따라 걷다가 마주치는 맛집①

사직동천 터줏대감 가성비 좋은 ‘체부동잔치집’

청풍계 물길 합수지점 궁중음식전문점 ‘지화자’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싱그러운 5월이 시작됐다. 바깥 활동하기 가장 좋은 때다. 전국 각지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이 북적일 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닫혔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실내 활동은 물론 야외 활동도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칙에 따라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를 억지로 잠재우는 것도 쉽지 않다. 방역과 여가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서 조용히 움직이는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문화지평은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 도시의 인문콘텐츠를 발굴 답사하고 디지털로 영구적인 기록을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고민하는 단체다. 매년 서울시를 비롯해 각 지역 답사와 기록화 사업을 하고 있다. 


문화지평 역시 5월이 되면서 답사를 시작했다. 올해는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란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이번 답사 대상은 백운동천을 비롯해 삼청동천, 흥덕동천, 창동천, 남소문동천 등 청계천을 이루는 다섯 개의 주요 지류다. 이들 지류의 발원지부터 청계천 합수지점까지 물길을 따라 답사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돼 물길을 볼 수 없다. 그래서 복개된 땅 위와 주변에 형성된 조선시대와 근현대 역사문화자원, 공간·자연유산, 산업관광유산 등 ‘점·선·면’으로 이뤄진 공간에 대해 전문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답사를 한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모르는 것이 지금의 물길 상황이다.            

문화지평, 청계천 이루는 물길 답사 시작      

문화지평은 백운동천을 비롯해 삼청동천, 흥덕동천, 창동천, 남소문동천 등 청계천을 이루는 다섯 개의 주요 지류에 대한 ‘맛있는 동네산책’을 시작했다.


문화지평의 이번 답사는 물길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문화유산 보존과 관심, 관광자원의 개발과 활용에 대한 시민사회 공감대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점·선·면’은 그동안 답사 탐방이 특정 스폿 위주의 점적이었다면 물길을 통해 선으로 이어진 역사자원에 대한 ‘지식의 면적’을 넓히는 한편 공간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인식의 방법을 확대시키는 차원이란 의미다.      


이번 사업의 특징은 텍스트(사진) 기록, 동영상, 3D 스캔 등 다양한 디지털 아카이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존가치가 높은 답사 탐방 기록을 만들어 시민사회에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공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록 전문 아키비스트와 촬영감독, 3D 디지털 아카이빙 전문가들의 협업을 통해 입체적인 결과물을 만들 예정이다.             


기록물은 신문매체에 실어 뉴스포털로 송출하는 한편 유튜브, 페이스북, 블로그. 네이버TV,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항구적 기록보존과 불특정 다수 시민들에게 공유된다. 정보의 개방과 공유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정보의 비대칭을 줄이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지평은 이와 함께 지난해에 이어 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사업을 이어간다. 지난해는 서울의 첫 종교건축물에 대한 답사와 디지털 아카이빙을 수행했다. 올 주제는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의 궤적을 쫓아서’다. 올해는 현장 답사를 하고 텍스트 아카이빙으로 기록을 남긴다.          


대상은 김중업의 경우 한국적 모더니즘 옛 건대 도서관, 르꼬르뷔지에 오마주 서강대 본관, 전통의 현대적 해석 프랑스대사관, 김중업 건축언어 집성 태양의 집, 올림픽 정신과 전통미 평화의 문 등이다. 김수근은 노출 콘크리트의 시작 옛 힐탑바, 반공 이념을 담은 자유센터, 현대건축의 요람 공간사옥, 빛과 벽돌의 시 아르코미술관, 원초적 구원의 여정 경동교회 각 5곳 총 10곳이 대상이다.            


한국 건축역사는 일제식민지, 해방, 한국전쟁, 고도성장기 등 시대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변화와 혼란을 겪었다. 이 가운데 김중업과 김수근은 해방 후 현대건축 1세대로 활동하면서 각자 개성 있는 색채로 우리나라 건축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변곡점은 건축을 단순 구조적 측면이 아닌 역사성과 사회성, 전통성과 기능성 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성을 환기시켰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아울러 근대화를 거쳐 산업사회로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건축물의 내구성 문제와 개발논리에 의해 사라지는 주요 건축가들의 건축물이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아카이브가 필요성에 따라 이번 사업을 기획했다.           


김중업, 김수근을 빼놓고 우리 현대건축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번 답사에서는 이들이 차지하는 건축사적 비중과 각각 프랑스와 일본 유학파인 이들의 건축 표현의 차이를 통해 해방 후 한국 건축의 변화 흐름을 좇을 예정이다. 이들의 혼이 담긴 건축물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두 건축가를 축으로 발전한 현대건축의 이해, 개발과정에서 사라지는 건축물에 대한 기록과 아울러 시민사회의 거버넌스 구축이 이번 건축문화 활성화사업의 목적이다.           


백운동천 역사적 발원지는 김가진 집터      

          

백운동천의 역사적 발원지로 불리는 동농 김가진 집터 뒤 바위 글씨.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동농이 쓴 것을 바위에 새겼다.

문화지평의 답사는 살짝궁 견강부회하자면 ‘맛있는 동네산책’의 일환이다. 답사의 끝은 맛집을 찾는 여정과 이어져 있다. 서너 시간 걷고 난 끝에 마주하는 식탁은 영혼을 달래주는 명약이나 다름없다. 지난 1일 시작한 첫 서울 물길 답사도 마무리는 역시 동네 맛집이었다.           


오전 10시 30분 백운동천의 최장 발원지인 창의문에서 출발해 역사적 발원지로 불리는 백운동천 각자가 있는 동농 김가진 집터, 경기상고, 청송당유지, 백세청풍 각자, 선희궁 터, 수성동 계곡, 이상의 집을 거쳐 경복궁역에서 마쳤다. 종침교가 있던 종교교회와 동아일보 일민기념관을 거쳐 청계천 합류지점에서 끝마칠 예정이었으나 시간이 지체돼 아쉽지만 일부 구간은 후일로 미뤘다.            


경복궁역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후 찾아간 ‘맛있는 동네산책’의 종착지는 ‘체부동잔치집’이다. ‘체부동잔치집’이 있는 곳은 금천교시장 또는 동네 이름을 따서 적선시장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세종음식문화거리로도 불리고 있다. 사직동천이 흘렀던 물길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체부동이 맞다. 적선동은 체부동과 접한 동네다. 적선시장이 체부동에 있는 것은 도시화를 겪는 과정에서 시장이 쪼그라든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멸치 육향 잔잔한 잔치국수 맛집     

       

그동안 ‘체부동잔치집’에서 맛본 다양한 면류 메뉴들. 가격이 착해서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됐다.

‘체부동잔치집’은 한마디로 소중한 곳이다. 서촌이란 공간이 북촌에 이어 여가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상권이 발달하게 된다. 신촌, 이태원, 익선동 등과 마찬가지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반복되고 간판이 무수히 바뀐다. 도시의 상업화 과정이 겪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서촌 역시 같은 과정을 겪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몇 달 만에 가보면 간판 두세 개 정도가 바뀌어 있다.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성동 계곡으로 모여 백운동천과 만나는 옥류천과 금천교시장을 관통하는 사직동천이 주요 핵심 상권이다. 그중 ‘체부동잔치집’은 금천교시장 한가운데인 체부동 190번지에 있다. 잔치국수와 들깨칼국수를 비롯해 각종 면과 전에 주류를 곁들일 수 있는 곳이다. 서촌 지역 답사 때면 늘 몰려가는 곳으로 가성비가 좋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에 달하는 동네서 여전히 3000원짜리 잔치국수를 판다.       

    

해시태그를 이용해 빅데이터로 추출한 이 식당의 인기 메뉴를 열거하면 잔치국수, 들깨칼국수가 가장 비중이 높고 해물파전, 수제비, 칼국수, 들깨수제비, 김치전, 비빔국수, 파전 등이 뒤를 이으면서 골고루 분포돼 있다. 비 메뉴 부분에서는 착한 가격, 저렴한 가격이 단연 눈에 띈다. 그만큼 가격 부분이 식객들을 유인하는 주요 요인이란 의미다. 서촌 상권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 덕분에 주말 식사시간 때면 대기를 각오해야 한다.      


손님들이 좁은 골목에 오랜 시간 줄 서 있는 것이 송구했던 식당 주인은 묘책을 생각해 냈다. 이웃 식당과 협업을 통해 손님을 분산시키고 매출을 셰어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기존 해장국집과 협업해 체부동칼국수해장국이란 브랜드를 탄생시켰고 인근 통인시장에는 분점을 차렸다.    

    

체부동잔치집의 음식들.

‘체부동잔치집’에 자리가 없을 때는 30여 미터 정도 떨어진 ‘체부동칼국수해장국’으로 가면된다. 골목 안이라 한적하고 자리도 여유가 많다. 이곳에 들어서면 기존 해장국집 메뉴는 물론 체부동잔치집 메뉴를 그대로 주문할 수 있다. 해장국은 이곳에서 직접 조리하지만 국수나 전류는 인터폰을 통해 체부동잔치집으로 주문을 한다. 그러면 체부동잔치집서 만든 음식을 쟁반에 담아 배달해 주는 시스템이다. 체부동잔치집에 없는 해장국 메뉴가 있으니 일부러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도 있다.              


필자가 페이스북에 보관해 놓은 기록을 찾아보니 2017년부터 ‘체부동잔치집’을 다녔다. 그간 다양하게 많은 음식을 접했다. 대표메뉴인 잔치국수와 들깨칼국수는 물론 들깨수제비, 냉면, 굴전, 해물전, 감자전, 김치전과 부추전 반반, 도토리묵 등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대부분 인근 지역 답사를 하고 들른 것이다. 구석구석 방이 있고 지하에 아지트 같은 곳도 있어서 여럿이 들어가 막걸리 한 순배 돌리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물론 요즘은 어렵겠지만 말이다.          


잔치국수는 심심한 멸치 육향이 느껴지는 아주 소박한 음식이다. 잔치국수란 이름은 말 그대로 잔치 때 먹는 음식에서 유래됐다. 밀가루가 귀했던 조선시대 때는 국수가 혼례식이나 생일잔치, 환갑잔치와 같은 행사에서나 먹을 수 있었다. 이때 초대된 손님들에게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대접하면 그야말로 귀빈 대접이란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국수가 잔치 음식으로 주로 쓰인 것은 긴 면발이 '장수'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례 피로연 음식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결혼 생활이 오래 이어지란 기원을 담고 있다.                 


한편 이 식당은 좋은 가격 덕에 ‘착한가격업소’로 지정됐다. 착한가격업소는 2011년부터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물가안정 모범업소다. 인건비, 재료비 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도 원가절감 등 경영효율화 노력을 통해 저렴한 가격을 제공하는 것이 선정기준이다. 가격 60점, 위생·청결 30점, 서비스 5점, 공공성 5점으로 총 70점 이상 점수를 얻어야 한다.           


착한가격식당을 선정되면 신용보증기금,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수수료와 기업은행, 중기청의 대출금리 감면, 각종 물품 및 인센티브 지원, 착한가격업소 표찰 부착 등 혜택이 있다. 정부는 이들 업체가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점을 높이 사 소비자들이 적극 이용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청운동 입구 궁중음식 적통가 ‘지화자’     

    

‘지화자’는 궁중음식 적통가(嫡統家)이기 때문에 원형에 가장 가까운 맛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사진=지화자]

서촌 지역에는 매력적인 외식 공간이 제법 많다. 그로 인해 핫 플레이스가 된 셈이다. 옥류동천이 흘렀던 물길이 특히 북적인다. 이 곳에는 중식 경력만으로 따지면 중견 셰프 반열에 오른 19년 차 정지선 셰프가 운영하는 딤섬 전문점 ‘티엔미미’, 고추짜장면과 짬뽕이 유명한 ‘영화루’ 등이 유명하다. 티엔미미는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그전에 운영했던 ‘중화복춘’에서 다양한 그의 요리를 접했던 터라 명불허전이라 생각된다.       

     

그밖에 서촌지역에는 일본 가정식 ‘누하의 숲’, ‘잘 빠진 메밀’, ‘이태리총각 서촌점’ 등이 식객들 발을 멈추게 한다. 조금 더 백악 쪽으로 오르면 옛 청풍계 물길 끝 청운초등학교 근동에 화상이 하는 ‘中國’이란 중국집이 있다. 문화지평 답사가 있던 1일에도 ‘중국’ 앞에는 긴 대기줄이 서 있을 정도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또 근처에는 궁중음식 전문점인 ‘지화자’가 있다. 궁중음식은 이씨 왕조 마지막 수라상궁인 한희순(1889~1972) 씨에게 황혜성(1920~2006) 교수가 전수를 받아 무형문화재로 이어지고 있다.           


황 교수 장녀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이 무형문화재로 궁중음식 대를 잇고 있고 2녀와 3녀인 한복선, 한복진 교수는 기능이수자로 등재돼 있다. ‘지화자’는 황 교수 아들인 황용규 대표를 비롯해 이들 자녀들이 음식에 관여하고 있는 궁중음식 적통가(嫡統家)이기 때문에 원형에 가장 가까운 맛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인왕산을 등지고 선 서촌에는 수많은 역사 스토리와 인물, 건축물, 바위 각자, 자연경관 등이 촘촘하게 들어 찬 서울의 알토란 같은 곳이다. 두루 걸으며 옛 역사를 음미하고 길 끝에서 만나는 미식, 좋지 아니하신가! 문화지평의 1차 서울 물길 백운동천 답사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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