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악마적으로 탁월해 지금도 안 산 걸 후회하고 있다.
7일 차, 2018년 2월 23일
① 노드스트롬 랙 워드 빌리지 점
②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
③ 알라모아나 센터 푸드 코트
④ 쿠히오 비치
⑤ 숙소 수영장
⑥ 킹스 가드 박물관 파머 장터
⑦ 호놀룰루 커피 와이키키 점
⑧ 숙소
① 노드스트롬 랙 워드 빌리지 점
숙소에서 나온 우리는 구글이 시키는 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 버스를 탔다.
우리는 ‘STOP REQUESTED’를 해석하는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아들과 나는 ‘스탑’을 동사인 ‘멈춰라, 중단하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문장은 이렇게 해석된다. 요청됐으니 멈춰라. 아내는 ‘스탑’을 명사로 해석했다. ‘정지는 요청됐다.’ 유쾌한 기분에 한 번 우겨봤지만 아내의 해석이 맞을 것이다. 의미를 번역하자면 이렇다. 내려달라는 신호를 보낸 사람이 있으니 줄을 당기지 않아도 된다.
셋이서 신나게 영어 바보 놀이를 한 뒤 버스에서 내려 5분 이상 걸었다. 미드나 저예산 영화에서 봤음직한 전형적인 미국 동네였다. 인적은 뜸하고 도로는 터무니없이 넓고 건물은 낮은. 아내는 불만이었지만 나는 좋았다.(이 경로는 내가 아니라 구글이 가르쳐준 것이다)
노드에 거의 다 왔을 때 슬리퍼를 들고 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봤다. 그 넓은 동네에 걸어서 다니는 유동 인구라고는 그 사람 혼자였다.(이방인인 우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에게도 자기만의 인생이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는 영어로 묘사돼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 문화적 요소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러한 운명의 지배를 받던 어느 날 어떤 필연적 요소에 의해 담배를 꼬나문 채 인적 뜸한 동네 길을 한국인 관광객이 지켜보는 앞에서 터벅터벅 걸어가게 됐으리라.
지난 여행 때 재미를 본 우리는 노드스트롬 랙의 노예라도 된 것 같았다. 셋 다 아침을 먹고 노드에 가는 것에 아무 불만 없었다. 아들은 신발과 생활복을 사고 나도 신발을 한 켤레 샀다. 아내는 수영복을 샀다.
아들이 고른 나이키 에어맥스는 한국에서 29만 원, 내가 고른 콜한 그랜드는 16만 원, 아내가 고른 수영복은 77만 원에 팔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 80불, 80불, 77불에 샀다.
노예는 행복했다.
아들은 발이 예민한 편이다. 작년 이곳에서 발굴한 호카를 나이키 에어맥스로 갈아 신고 있다. 호카는?
안녕.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뒤 나도 볼일을 보러 갔다. 변기는 두 칸이었다. 하나는 일반 칸, 하나는 휠체어가 들어갈 정도로 크게 만든 칸. 일반 칸에서는 인기척이 들리는 데 장애인 칸은 잠이라도 자는 듯 기척이 없었다. 덩이 다시 들어갈 정도로 기다린 뒤에야 겨우 일반 칸에서 백인 남자가 나왔다. 미국 화장실은 쉽지 않다. 와이켈레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그랬는데 여기서 또 비슷한 불편함을 겪었다. 삐져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는 덩을 잘 어르고 달래 끄집어냈다.
②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
노드에서 짜릿한 경험을 한 우리는 발걸음도 경쾌하게 길 건너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에 입장했다. 여기 방문은 아내의 숙원 사업이었다. 작년에 아내는 그렇게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못 갔던 것이다. 자, 어디 한 번 원 없이 담아 보시라고. 장바구니 타임.
처음엔 그저 그런 보통의 마켓처럼 보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신세계가 펼쳐졌다. 물이 잘 빠지는 비누 받침은 나의 숙원 사업이었다. 불과 한 달 전에 아내를 따라 들어간 *마트에서 비누 받침을 질렀지만
효과는 없었다. 여전히 물이 고여 비누가 뭉개졌다. 흐물거리고 지저분해졌다. 다른 무엇보다 쓰지도 않는 비누가 그런 식으로 낭비되는 게 싫었다. 하와이에서 단돈 7달러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대리석으로 된 컵 받침대도 질렀다. 뜨거운 걸 마실 때는 상관없는 데 차가운 걸 마실 때 물이 뚝뚝 떨어져 티슈를 받침 대신 사용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이건 실패인 게 내 책상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냄비 받침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단돈 6달러. 2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악마의 발톱에서 빵 터졌다.
우주 최강 등 긁개. 아플 때도 혼자인 게 쓸쓸하게 다가오지만 등이 간지러울 때도 혼자인 게 몹시 불편하다. 등 긁개는 솔로 문화의 시금석이다. 이거 하나만 두면 등이 간지러워 미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테이션 하지 않는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제품을 갖다 놓지 않는다.
진짜 대리석으로 만든 물건을 갖다 놓는다. 금속 소재의 제품도 금속처럼 보이지만 막상 들어보면 종이처럼 가벼운 가짜가 아닌 진짜 금속으로 만든 제품을 갖다 놓는다.
내가 산 컵 받침대와 비누 받침도 진짜 대리석과 진짜 금속을 사용해 묵직하다.
여기서 우리는 하와이 3대 미스터리 사건 하나를 연출하게 된다. 아내는 진지하게 커트러리 세트를 골랐다. 포크, 나이프, 스푼을 4명 몫으로. 집에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가방을 열어 짐을 정리하는데 포크 하나가 다른 세 개보다 사이즈가 작았다.
아내는 정말 안타까워하며 스스로를 이해 못했다. 끽해봐야 하와이를 한 번 더 가려고 무의식이 빅 픽처를 그렸다는 농담 같은 변명이 전부였는데 나는 그 의견에 반대했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러할 것이다. 아내가 2시간 가까이 집중한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에서 실수했을 리 없다. 계산대 직원도 포크와 나이프와 스푼을 종이에 잘 포장해주었는데 포크 사이즈 하나가 작은 걸 놓쳤을 리 없고. 그것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작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아내보다 포크를 더 믿어야 할 이유가 없다) 왜 작아졌는가 하는 건 영원히 알 수 없는 숙제로 남겠지만.
③ 알라모아나 센터 푸드 코트
볼거리에 취한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알라모아나 센터에 갔다. 원데이 티켓을 보여주는 데 운전기사가 귀찮다는 듯 그냥 타라고 했다. 어차피 한 정거장이라 이건가.
나는 블루 쉬림프에서 새우가 들어간 메뉴를 시켰는데(일 년 치 새우를 여기서 다 먹는다) 새우보다 스테이크가 더 맛있었다. 음식을 받아올 때 음료를 주지 않아 두 번 가야 했다. 다행히 직원이 바로 알아보고 음료를 내줬다. 안 그랬으면 그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곤란을 겪을 뻔했다. 아내와 아들은 야미에서 비빔밥과 LA갈비를 시켰다. 훌륭했다. 하와이에서 먹는 비빔밥이란 점을 감안하면.
영어가 되는 아내와 아들이 주문을 하고 나는 자리를 맡았는데 눈치가 보였다. 여기선 왠지 식판을 든 다음 자리에 앉는 분위기였다. 주문을 넣고 음식이 나올 때까지 꽤 오래 기다려야 해서 늘어진 시간만큼 무안했다.
LA갈비와 밥이 남았다. 아내는 저녁에 먹으려고 고기를 썰었다. 나중에 호텔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먹는데 훌륭했다. 밥은 컵라면 국물에 말아먹었다. 아들이 하와이에서 선정한 3대 맛집은 이렇다. 1등이 갈비 온 파이어, 2등이 마루가메 우동, 3등이 컵라면.
④ 쿠히오 비치
적당히 배를 채운 우리는 8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전 버스와 많이 달랐다. 백인 노인들만 잔뜩 있었고 도착지를 알리는 전광판이 작았으며 안내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하차 신호도 줄을 당기는 방식이 아니라 창틀에 길쭉하게 매달린 바를 터치하는 방식이었다. 내려서 보니 외관도 미끈한 게 완전히 달랐다. 옆구리에 일렉트로닉이란 글씨가 크게 있었다. 전기버스 시험판이었다.
숙소에 짐을 부린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아내는 새로 산 수영복을 입고) 쿠히오 비치로 갔다.(카메라와 핸드폰을 안 챙겨 사진은 없다) 과연 사람이 많았다. 제방을 쌓아 수영하기 좋도록 만든 해변이었다. 매트를 깔고 입수. 기온이 그렇게 뜨겁지 않은데도 물에 들어가면 좋다.
나는 무조건 자유형이다. 수영장만큼 속도가 나가지 않았다. 맨발로 다녀도 될 만큼 바닥도 좋았다. 아들을 나룻배처럼 평평하게 띄워 발차기를 시키는데 몸이 뻣뻣해졌다. 물놀이를 즐겼다. 오래 하지는 않았다. 뽕을 뽑겠다며 이를 깍 깨물고 하는 건 쿨하지 않다. 한 번 담갔으면 됐다. 물에 젖은 채 호텔로 갔다.
⑤ 숙소 수영장
근사한 자리가 있었다. 우리는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인 뒤 수영했다. 바닷물로 하는 수영장이다. 끈적대는 소독약이 없어 좋다. 힐튼 수영장은 깊다. 그래서 떠있는 걸 훈련하려 했는데 잘 안 됐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수영복을 빨아 (바닥에 수건을 깐) 옷장에 널은 뒤 30분 정도 쉬었다. 호놀룰루 커피에서 커피도 한 잔 하고 산책도 할 겸 숙소를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백인 부부 중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어떠냐고 묻는 듯해 파인 땡큐, 앤쥬? 하고 되물었다.(중학 1학년 영어를 처음으로 써먹어봤다. 다이얼로그에 나온 그대로!) 그러자 남자도 좋다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답한 뒤 너희는? 하고 물으니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고. 나는 선샤인이 러블리하다고 말해줬다. 백인 부부가 웃으며 고개 끄덕끄덕. 말도 안 되는 대화였다.
그들은 왜 내가 영어를 할 줄 안다고 간주한 걸까? 내가 우리나라 관광 온 미국인한테 우리말로 “야, 한국 오니 어때?” 하고 물으면?
⑥ 킹스 가드 박물관 파머 장터
아내는 구글 맵으로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나도 매번 같이 들여다봤다. 우리는 잘 가고 있었다. 아내는 불안감을 털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하와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시겠다고…….
가는 길에 파머 장터를 봤다. 와이키키 도심 한복판에서 장터가 열릴 줄은 몰랐는데 이게 웬 떡이냐 진입.
그 골목길이 킹스 가드 박물관 주변이었다는 건 이 글을 쓰는 지금 검색을 통해 알았다. 건물 구조가 소라 무늬처럼 똬리를 틀며 내려가는 게 인상적이었다.
과일 같은 농작물은 별로 없고 기념품 가게가 주를 이뤘다. 하와이를 기념할 만한 이미지이긴 했다.
우리나라를 기념할 만한 이미지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없다. 과거(혹은 우리의 출발점)가 빠르게 지워진 느낌이다.
‘전통’처럼 강화된 거라고는 가진 자들의 갑질 정도?
⑦ 호놀룰루 커피 와이키키 점
호놀룰루 커피 와이키키 점은 맛이 없었다. 할레이바의 커피 갤러리만도 못한 느낌이었다. 알라모아나 센터 점에서 맛본 걸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 거기서 한 것과 똑같이 주문했는데도 그랬다.
아내는 당이 떨어졌다며 하와이안 쿠키에 갔다. 시식용 쿠키를 열심히 먹은 뒤 열 개를 샀다. 그들이 정성껏 포장해준 봉지를 매장에서 뜯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었다.
지갑 파워가 출렁대는 와이키키 거리를 걸으며 노을을 찍는데
일본인 관광객이 다가와 ‘스미마센’ 했다. 이번에는 내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간주한 것이다. 영어로 픽처 원하냐, 백그라운드로 노을을 원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일본인으로 착각해 ‘쏘리’라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찍어줬다. 원모어타임 해서 한 번 더 찍어줬다. 카메라 디스플레이로 보면 그럴듯하겠지만 확대해서 보면 흔들렸을 것이다. 일부러 흔든 게 아니라 야경 사진이 원래 그렇다. 내가 버틸 수 있는 셔터 속도가 1/40초 정도인데 남의 카메라로 찍을 때는 (어색하니까)1/60초까지 확보해줘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 설정했는지 알 수 없다.
⑧ 숙소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저녁을 먹고 각자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숙소는 지극히 조용해져 오로지 TV만 떠들어댔다.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었다. NBC를 틀면 동계 올림픽이 나왔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말이 있는데 미국이라고 해서 그런 게 없는 거 아니다. 어차피 그들도 메달리스트에 관심을 갖고 방송을 편성한다. 우리가 인기 종목만 보는 건 민족성과 아무 관련도 없는, 자본주의 특성이다. 방송 전파(관심)라는 한정된 자원이 메달리스트에게만 카메라(기회)를 들이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승자(재벌, 성공한 사업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스템의 솔직한 반영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팀추월 경기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유의미하다. 이 분노는 맥락상 이전의 분노와 다르다. 코리아 웨이브를 고려하면 늦게 들어온 선수를 비난하는 게 맞다. 더 어울려 보인다. 너 때문에 우리 팀 기록이 엉망이 됐지 않느냐면서. 그런데 사람들은 빨리 간 두 사람을 비난했다. 패러다임의 대전환 시대에 들어섰음을 알린 가장 극적인 사건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