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틈타 숙소를 옮겼다.
6일 차, 2018년 2월 22일
①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 체크아웃
② 세븐일레븐에서 주유
③ 힐튼 와이키키 비치에 짐 맡기고
④ 알라모 렌터카 반납
⑤ 알라모아나 센터 호놀룰루 커피
⑥ 핑크 트롤리 2층
⑦ 힐튼 와이키키 비치 22층
⑧ 하와이 기념 셔츠, 카하라
①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 체크아웃
짐은 어제 다 쌌다. 작년 여행 때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에 이태리타월을 두고 온 나는 마지막으로 욕실을 살폈다. 두고 가는 물건은 없었다. 대신 아내가 쓰던, 220V 구멍을 110V 구멍으로 바꿔주는 검은색 돼지코를 놓고 왔다. 머리맡 스탠드에 꽂아 쓰던 걸 코드만 뽑아온 것이다. 다이소에서 사면 된다.
이동하는 날이라고 비가 내렸다. 고맙기도 하지. 체크아웃을 한 우리는 렌터카에 짐을 싣고 출발했다.
② 세븐일레븐에서 주유
처음 나오는 주유소인 세븐일레븐에서 주유했다. 지난밤 책을 보고 유일하게 복습한 내용이다. 펌프 넘버 쓰리, 피프티 달러 플리즈. 어륀지라고 해야 알아듣는다고 자랑한 이명박 정권 장관도 있었지만 웬만해선 다 알아듣는다. 혓바닥 구부릴 필요 없다. 그들이 친절해서라기보다 영어가 공용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각국 사람의 억양을 고려해준다. 베트남 사람도 하와이에 와서 홍홍거리는 영어 쓴다. 쫄 거 없다. (사진은 없다. 멀티가 안 돼서. 주유를 '잘' 하기 위해 긴장했다)
생각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가장 먼저 떠올린 단어는 ‘만땅’. 꽉 채워주세요. 원한다면 번역기 앱에 찍어 보여줄 수도 있었다. 미국에도 그런 문화가 있을까? 주유소에 들러 ‘만땅이요’ 하면 꽉 채워주는 문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후불이지만 미국은 선불이라. 포티 달러를 먼저 생각했다. 몇 달러가 적당한지 짐작하기 위해 갤런을 리터로 환산하고 주행 거리, 연료 게이지 눈금이 처진 정도를 계산했다. 캠리는 풀사이즈 세단임에도 리터당 12킬로미터의 효율을 보여줬다. 내 차, 아반떼(2007년 11월) 연비가 11에서 12 정도니까 꽤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40달러는 내가 운전한 총거리이기도 했다. 렌터카 주차장에서 가져올 때 연료 탱크는 꽉 채워져 있었으니까. 지난 나흘,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돌아다닌 시간을 생각하면(나중에 밝히겠지만 오아후 섬 전체를 커버했다) 기름값은 꽤 적게 나간 셈. 그래서 10달러를 더 붙인 것이다. 행여나 바늘이 연료 게이지 천장을 찌르지 못할까 봐.
약간 말랐지만 키가 큰 백인은 진중히 내 주문을 받았다. 영수증은 안 줬다. 펌프가 있는 데로 돌아가 주유했다. 우리나라 셀프 주유소처럼 노즐 손잡이에 '당긴 상태로 고정'시키는 장치가 없었다. 차 옆에 서서 당겼다. 기름이 들어가는 속도가 느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넘치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닐 거라 믿었지만 막상 그 가능성을 접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달러는 몰라도 50달러는 확실히 넘치는 양이었다.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노즐이 더 이상 못 넣겠다고 튕겨 나오는 게 느껴졌다. 오케이. 총 주유 량은 37달러. 세븐일레븐 주인(직원보다는 주인 같았다)이 13달러를 거슬러주고 영수증을 건넸다.
섬의 중심을 관통하는 도로로 접어들자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장관을 연출한 악마의 발톱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산맥'으로 분류되는 지형이 이곳에서는 거의 깎아지른 절벽처럼 느껴진다. 장벽 같은 그곳에 악마가 발톱으로 할퀸 듯한 골이 파여 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날, 그리로 폭포수가 흘러내렸다. 골마다 십수 군데의 가느다란 실 같은 폭포가 발생해 장엄한 장면을 연출했다.
③ 힐튼 와이키키 비치에 짐 맡기고
힐튼 와이키키 비치 주차장 입구에 진입한 나는 가족과 짐을 내려주고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지금은 태연히 서술하고 있지만 전날 밤까지도 생각이 꽤 복잡하게 돌아갔다. 가장 간단한 건 주차장 입구에 차를 정차시킨 상태에서 벨맨에게 짐을 맡기는 거였다. 그들이 그런 편의를 제공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힐튼 와이키키 비치 호텔은 무조건 발렛 파킹이다. 짐을 맡기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는데 차를 빼라고 하면…… (돌이켜보면 그 정도 편의는 제공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와이키키 도심 어딜 가나 호텔 로비 앞을 회전하는 입구엔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그래서 호놀룰루 동물원 주차장을 이용하는 걸 고려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싼 유료 주차장이고 힐튼 와이키키 비치 호텔과 가까워서. 임시로 내려놓은 짐은 아들에게 맡겨놓고 우리는 동물원으로 이동해 주차한 뒤 호텔로 걸어가 짐을 맡기거나 어얼리 체크를 하는 걸로. 1시간 안에 용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1달러만 내면 되니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하고 아들이 같이 내려 일을 처리하는 동안 나 혼자 호놀룰루 동물원 주차장에서 대기하기. 용무를 마친 아내와 아들이 동물원까지 걸어와 랑데부. 더 나은 생각이 떠올랐다. 귀찮게 뭘 …… 그냥 짐을 벨맨에게 맡길 동안 호텔 주변이나 한 바퀴 돌지. 슬슬 돌다 로비로 왔을 때 일처리가 덜 끝나 안 보이면, 한 바퀴 더 돌고. 문제는 와이키키 도심의 특성이었다. 일방통행 도로가 많다.
도로에 입혀진 회색 화살표를 보라. 그게 다 일방통행이다.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처음 와본 사람 입장에서는 진입해도 되는 도로와 안 되는 도로를 파악하는 자체가 신경 쓰이는 일이다. 어젯밤 구글 맵으로 힐튼 와이키키 비치 주변을 샅샅이 살핀 결과 일방통행이 구역별로 평등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한 번 잘못 들면 크게 도는 수가 있었다. 제길.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어려워서야 원. 아내가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네비를 두고 가지 뭐.(여기서 네비는 내비게이션이 아닌 아내 핸드폰을 말한다. 내 핸드폰은 3G다. 스마트폰이 아니다. 하와이에 갖고 오지도 않았다)
짐과 함께 아내와 아들을 내려주고 동굴 같은 호텔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경사로가 상당히 높았다. 범퍼가 안 닿게 조심히 나갔다. 네비는 작동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이유로. 길 옆에 잠시 세워 힐튼 와이키키 비치를 목적지로 설정해 재가동시켰다. 두 바퀴를 돈 뒤 가족과 재회했다. 짐을 맡기는 과정에서 체크인까지 시도된 모양인데 아내는 3층, 아니면 4층을 준다는 말에 마음이 상했다. 어깨를 떨어볼까? 멀리서 왔는데 봐달라고? 아니면 신혼여행 중이라고 우기는 건 어때? 우리보다 커버린 아들을 뒤에 두고 퍽이나. 체크인할 동안만 일행이 아닌 척하면 되지.
④ 알라모 렌터카 반납
네비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됐다. 구글 맵 내비게이션이 카우치에 누워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편한 것은 아니다. 일반 네비와 동일한 서비스 툴을 지니고 있지만 몇 백 미터 앞에서 우회전, 혹은 좌회전 안내를 받을 때 칼 같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몇 백 미터라는 거리가 감각적으로 낯설어서. 자동차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 하나밖에 없는 교차로에서 우회전, 좌회전은 그래도 쉽다. 고속도로를 막 달리다 다른 넘버 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할 때가 있는데 우측 방면이나 좌측 방면이란 개념에 정확히 대응하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그럴 때는 당황하지 말고 포기하는 게 낫다. 뒤늦게 네비의 지시에 따르겠다고 핸들을 꺾다 사고 난다.
오아후 섬 동부나 북부, 서부를 운전할 때는 길이 단순해 그럴 일이 없었는데 호놀룰루 도심은 쉽지 않았다. 차들도 엄청 빠르다. 우리나라만큼 과속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피드 리미트가 40이면(단위가 마일인데 킬로미터로 환산할 필요 없다. 속도계 단위도 마일이니까) 50은 기본이고, 60으로 밟는 차들도 제법 있었다. 내가 제일 느렸다. 일부러 느리게 운전한 게 아니라 속도제한을 칼 같이 지켰다. 딱지 끊는 데 쓸 예산이 없어서.
이 주에만 두 번째 방문이었다. 알티마 시동 키에 문제가 생겨 캠리로 교체한 바 있다. 작년 여행 때도 알라모에서 렌터카를 빌려 반납한 적이 있기 때문에 걱정은 안 했다. 방심한 탓이었을까? 이 자그마한 틈을 비집고 손해가 발생했다. 작년에는 기름 넣을 시간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연료 게이지 눈금도 천장을 찔렀다. 외부 흠집도 없고. 너무 안심한 나머지 차량을 체크한 직원이 뭐라고 할 때 ‘예스’라고 했던 것 같다. 문제없다는 표정이어서 문제없다는 답을 준 건데 남자가 단말기에서 지지직지지직 영수증을 뽑아 건넸다. 우리는 그게 지불해야 하는 값이겠거니 이해해(액수를 확인한 아내가 맞다고 했다) 사무실로 가져갔다. 안내를 맡는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우리는 아직 돈을 지불하지 않았는데 영수증을 받은 것 같다고 어필했다. 백인 여성인 직원은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뒤 한국말을 하는 직원을 데려왔다. 나는 돈을 아직 안 냈는데 영수증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말을 하는 직원은 우리가 이미 돈을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응? 언제?
차량 인수 계약서를 작성할 때 신용카드를 보여준다. 결제가 아닌 신원 조회가 목적인데 그때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해둔 모양이다. 그 정보가 입력된 단말기를 든 직원이 주차장에서 차량 상태를 점검한 뒤 바로 결제해버린 것이다. 현찰로 결제하려던 우리는(작년에는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현찰로 잘 결제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렌터카를 인수한 지점이 와이키키 점으로 달랐기 때문인 듯하다)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신용카드는 수수료가 더블로 붙는다. 신용카드 자체 수수료와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환전 수수료. 나는 신용카드 거래를 취소하고 현찰로 결제할 수 있는지 물었다. 한국말 되는 직원은 부정적이었다. 되기는 하지만 한국의 신용카드 연계 은행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 따라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어떨 때는 금방 결제 취소 사인이 떨어지지만 어떨 때는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아내는 직불 카드는 신용카드만큼 수수료가 붙지 않을 거라고 위로했다. 그래도 한 방 제대로 먹은 느낌이었다. 이제 막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타려고 뛰었다.
⑤ 알라모아나 센터 호놀룰루 커피
공항 인근 정류장에서 알라모아나 센터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아내는 행여나 내리는 데를 놓칠까 구글 맵으로 현재 위치를 파악했다. 여기만 와도 관광 백인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 이용자들은 유색 인종이 많다. 기분은 좋아졌다. 렌터카 여행 1부를 마치고 와이키키 여행 2부를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작년 호놀룰루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와이키키 도심으로 진입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도 하늘은 회색이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진한 회색이지만 상관없었다. 그때 봤던 백인 택시 기사는 레인은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라고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샤인이 샤방샤방 당신의 마음을 비춰줄 거라고. 그 기사는 아내가 로스를 정말 좋아한다고, 로스는 모든 여자가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와이키키에 있는 로스를 방문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작년엔 몰랐지만 여행기를 쓰는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아내와 아들을 보내고 나는 예정대로 호놀룰루 커피에 갔다. 차만 타면 자는 아들에게 작년 여행의 어느 한 때를 상기시켰다. 아빠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날 알지? 엄마랑 같이 테슬라 차 본 날. 그날처럼 엄마랑 즐겁게 놀다 와. 아빠는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고 있을 테니.
커피를 주문한 나는 자리에 앉아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에서 보낸 시간을 정리했다. 영수증을 날짜별, 시간순으로 거듭 정리해 번호를 매겼다. 노트북으로 사진을 정리하고 필요한 내용을 메모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셨다. 자, 어느 정도 정리를 마쳤으니 한 모금 마셔볼까. 으음, 오올! 이 맛은!
회사에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 바리스타 자격을 획득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인정하는 커피가 폴 바셋이어서 백화점에서 거의 6천 원에 육박하는 돈을 지불해 카페라떼를 마신 적이 있다. 나도 인정했다. 정말 맛있었다. 그에 버금가는 맛이었다. 잔도 이것과 흡사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유심히 봐야 할 것은 갈색 기포다. 에스프레소가 지배적으로 강하게 작용하는 카페라떼에는 흰색 우유 거품이 아닌 진한 갈색 기포가 깔린다.
우리 집 근처에서 가장 맛있는 카페파이의 카페라떼도 부글부글한 갈색 기포를 띤다.
백화점에 입점한 파사드의 카페라떼도 하트 주변에 갈색 기포가 생겼지만 약하다. 더 진하고 더 광범위하게 깔려야 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냐고 친구한테 물은 적이 있는데 콩도 콩이지만 좋은 우유를 써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시끄러운 버스에 시달렸던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커피인 줄도 모르고 작년엔 이용을 거부했다. 나이 많은 사람만 있는 게 양로원 같다는 이유로.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와이에서 마신 카페라떼는 여기가 최고였다. 안타깝게도 와이키키 점은 그렇지 않았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으나 여기와 달리 실망스러운 맛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푸드코트에 간 아내는 새로운 걸 시도해 보겠다며 일본식 라멘을 시켰는데 결과는 실망.
스테이크를 주문한 아들도 실망했다. 기내식을 먹는 느낌이었다고. 음식점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안 좋은 평이었다. 우리는 핑크 트롤리를 타고 새로 마련된 숙소로 갔다.
⑥ 핑크 트롤리 2층
핑크 트롤리 2층은 작은 횃불이 가로등처럼 줄지어 서서 이글거리는 밤에 즐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언제 타게 될지 모르고(더 버스 원데이 티켓이 훌륭해서) 타게 된다 하더라도 2층 좋은 자리를 잡는다는 보장이 없어 무조건 2층에 올라가 맨 앞자리에 앉았다. 비가 와서 조금 맞는 부분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찍었다.
⑦ 힐튼 와이키키 비치 22층
로비에 도착한 아내는 침착하게 체크인 수속을 밟았다.
룸은 22층으로 배정받았다. 촌스럽게 만세를 부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현찰 결제가 신용카드 결제보다 120달러 이상 쌌다.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한 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만 카드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를 아끼려고 현찰 지불을 택했을 뿐이다. 직원이 준 룸 카드는 세 장 중 한 장만 통과됐다. 나중에 로비로 내려와 교체해달라고 했다. 다른 직원이 내준 세 장의 카드는 모두 문을 열어주었다.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보다 좁지만 시설 자체는 훌륭했다. 어메니티도 훌륭하고.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알리 타워보다 현대적인 게 리뉴얼을 한 것 같았다.
아내는 이곳을 훨씬 더 마음에 들어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오아후 노스 쇼어를 잡은 건 지정학적 요소가 있어 단순 비교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산 전망이지만 탁 트인 풍경이 좋았다.
힐튼 와이키키 비치 호텔의 바다 전망이 우수할 것 같지는 않다. 한 블록 떨어진 관계로.
산 전망 야경이 예쁘다는 평가는 사실이다. 와이파이 하느라 야경 볼일이 없다는 게 함정. 짐을 풀고 나 혼자 늦은 점심을 했다.
알라모아나 센터에 있는 푸드랜드에서 장을 본 아내가 고른 연어 구이 도시락인데 괜찮았다. 코트야드 바이 매리어트 인근 푸드랜드보다 물건이 좋은 것 같다는 아내의 평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⑧ 하와이 기념 셔츠, 카하라
저녁엔 아들을 호텔에 두고(아들도 이 시간을 반긴다. 동굴을 즐기는 영락없는 남자) 와이키키를 산책했다. 할레이바에 있는 아일랜드 빈티지 커피를 찾았을 때 옆에 있는 셔츠 가게 옷이 예뻐 눈여겨봤는데 아내가 와이키키에도 있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카하라 옷가게. 잘 가다 좌회전을 한 번 했더니 와이키키의 화려한 밤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남대문 시장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리어카라고 해야 하나. 손수레에 진열대를 설치해 간이 매장으로 만든 거리였다. 옷이나 기념품을 팔았고 호객 행위는 없었다.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여서 딱히 들어서면 안 되는 곳에 들어섰다는 느낌은 없었지만(와이키키 도심에 이런 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 놀라웠다. 강남역 근방의 고층 빌딩 사이로 남대문 시장이 펼쳐진 격이랄까)길이 점점 좁아지는 추세였다. 아내는 당황했고 나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걷다 보면 나오겠지. 나는 길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주의다. 처음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아내는 안전한(느낌이 드는), 와이키키 특유의 화려함이 가득한 길로 안내하지 못한 나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지만 나는 뭐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내비게이션도 아직 사본 적 없다. 유턴의 황제란 별명도 있다. 광교 애견 공원에 처음 가는 날엔 유턴을 4번인가 했다. 진입로를 못 찾아서.(불법으로 막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단 직진한 뒤 되돌아온다는 의미다)
카하라 가게가 있는 거리는 작년 여행 때 와본 데였다. 며칠 전에 와본 곳처럼 생생했다. 미술품 파는 갤러리도 있는데 작년에 구경했던 사진 작품은 대충 보고 나왔다. 그 옆 갤러리에 하와이의 생동감을 표현한 회화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가리켜 얼마냐고 묻자 머뭇거리던 직원이 삼만 불(?)인가 불렀다. 다른 작품들은 프린팅인데 그 작품만 오리지널이라면서. 우리가 생각한 가격을 말하는 게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높은 가격이었다. 50만 원 정도면 생각해볼 수 있다고 생각한 우리는 '하하하' 웃으며 퇴장했다.
카하라 옷가게 직원은 친절했다. 30% 할인 코너를 알려줬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새로 출시된 옷들이 압도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옷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린 카하라 오리지널 시리즈였다. 저걸 살 수 있냐고 묻자 직원은 하하하 웃으면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사는 옷도 50년 뒤에는 액자에 걸린 것과 같은 오리지널이 될 수 있다고 덕담했다. 두 벌을 고른 뒤 2+1은 안 되냐고 어깨를 떨어봤다. 영어로 하기가 어려워(투 플러스 원이라고 하면 바로 알아들었을까?) 구글 번역기를 돌려 보여줬는데 직원은 이해 못하는 양 했다. 표정이 어두워진 걸로 봐서 우리를 도둑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두 벌 중 한 벌만 사야겠다는 생각에 저울질을 하자 넌지시 다가와 두 벌 사면 10%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콜.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300미터 앞에서 하와이에 다녀왔다고 어필할 수 있는 옷이다. 유행, 스타일, 최신 트렌드 다 필요 없다. 이건 그냥 알로하다. 와이키키를 돌아다녀보면 관광객이나 현지인 할 것 없이 남자들은 대개 이런 셔츠를 입고 다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예쁜 셔츠를 왜 하와이에서 입어? 티도 안 나게. 하와이가 아닌 데서 입어야 알로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올여름, 나는 먹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