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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건강한 직면이 이루어 지도록

출애굽기 32:1-14

by 김혜진


211015.금 / 출 32:1-14


> 요약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백성을 불안해하고 아론은 그들에게 금을 걷어 소로 하나님의 형상을 만든다. 하나님은 백성이 부패하였다고 그들을 진멸할거라 하자 모세가 주의 백성에게 진노를 돌이키라고 중재한다. 여호와께서는 뜻을 돌이킨다.


> 묵상

모세가 눈에 보이지 않자 백성은 불안해 한다. 그들이 다른 신을 믿고자 함은 아니었던 거 같고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의 다리 역할이자 리더의 역할인 모세가 보이지 않자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소로 만들고 눈에 보이게 해 자신들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싶었던 거 같다. 결국 하나님을 왜곡하는 것은 자기욕망 이었다. ‘자기를 위하여’ 그 행동들을 한 백성들. 그리고 그것을 안내한 아론. 여기서 두 리더를 볼 수 있다. 하나님과 대화하며 백성들에게 진노해 ‘네 백성’이라 칭하시고 진노하신다고 한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백성’이라 얘기하며 진노를 돌이키길 간청하는 자와, 불안에 떠는 백성들의 욕구를 수용하고 잠재우기 위해 금을 걷어 송아지를 만들도록 하는 아론, 둘의 차이는 무엇 이었을까? 심지어 그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제단을 쌓아 하나님의 절일이라고 한다. 아론이 그들의 두려움을 직면하도록 도와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요즘은 공감에 대해 생각한다. 아론은 분명 백성들의 두려움을 공감했을거다. 그리고 그들의 두려움과 욕망을 해결해 주고 싶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난 공감형 캐릭터다. 일단 얘길 들을 때는 나에게 말하는 화자의 입장에서 많이 듣는다. 그가 느꼈을 감정, 상황, 그렇지만 그런 공감이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한다. 공감은 때론 타자의 불안을 더 구체적으로 왜곡하고 형상화 게 하는 길인 거 같다. 그래서 어떤 식의 공감이 좀 더 건강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청자가 되어 대화를 듣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듣고 모세처럼 아니라고 달리 표현해야 할 것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의 분별과 적용이 내게 필요하다. 진노는 거기가 끝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벌어지는 부정적인 사건들 또한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끝나고 움직여도 늦지 않다. 기도와 지혜가 필요하다.


> 삶

1.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에 대한 청자가 될 때는 ‘그렇구나.’ 정도의 대답이 좋을 거 같다. 화자 입장에서 너무 공감하거나 상황을 분석해 좋지 않은 것의 실체를 구체화 시킬 필요는 굳이 없을거 같다. 구체화 시켜야 될 것들은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많으니 사회적인 일에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개인적인 일에는 중도가 필요하다.

2. 지금 고민하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기도하자.


> 기도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기란 너무 힘든 것 같아요. 금송아지로 하나님을 왜곡해 형상화 해 눈에 보이도록 해놓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사실 이해가 됩니다. 지금 제게 주어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사실 갈피가 잡히지 않아요. 주님, 제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부정적인 것들을 두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알게 하시고, 부정적인 상황과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 끝이자 전체로 느껴지지 않게 절 인도해 주세요. 상황, 관계를 놓고 질문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질문하고 길을 찾아가는 제가 되게 도와주세요. 자기욕망을 위해 잘못된 길을 걷지않게 하시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그 길을 밝혀 보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타자의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지나치고 잘못된 공감으로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 혹은 어둠을 구체화해 어둡게 새겨나가는 길에 일조하지 않게 제가 중심을 지키길 기도합니다. 구체적이 되어야 할 것과 아닐 것,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고 가야할 것들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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