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16장
211202. 삿 16:1-14
> 요약
삼손은 가사에 가서 한 기생에게 들어가니 가사 사람이 그를 죽이려 했지만 삼손을 건물을 부수고 나온다. 후에 삼손은 소렉에 가서 들릴라라는 여성을 좋아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여성에게 돈을 주고 삼손의 힘의 원천을 알아내라는 거래를 성립한다. 삼손은 여성에게 힘의 원천을 세 번이나 속이고 여성은 자신을 사랑하면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
> 묵상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이지만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인물이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블레셋에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을 진 모르겠지만 이 과정들은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여자도 정말 쉽게 좋아하고 그 여성이 하는 행동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자신의 힘의 원천을 말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기도 한다.(삿16:17) 그렇지만 난 삼손이 이해된다. 특히나 나의 20대는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상대가 어리석거나 성숙하지 않은 대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요소들이 보였어도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이고 그 감정이 충족되는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관계도 감정이란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맺었던 거 같다. 그는 눈이 빠지고 블레셋의 구경거리가 되는 비참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찾고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블레셋에 대한 심판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도 반응하신다.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의 능력이 완전 엉켜 뒤죽박죽 엉망진창 이란 생각이 삼손을 통해 들지만 동시에 그런 엉망진창의 인간한테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움을 극적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난 그런 의미에서 삼손 같은 캐릭터는 믿음 생활에 다윗과는 또 다른 소망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대체적으로 한결 같이 살아온 인물과 달리 삼손은 한결같이 자기 멋대로 정말 개망나니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도 삼손에게도 함께 하셨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보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그 자체에 신실하신 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만큼 관계 속에서 순결하고 진실 되며 신실할 순 없는 거 같다. 또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보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우린 어느 인물을 마주하던 간에 한계를 느낀다. 선지자건 예수님 이전 구약에서 완벽한 왕의 모델로 보여주던 다윗이건 간에 각자의 나약함과 한계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연약하심은 있지만 그 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사는 것을 구체적으로 모르는데 보여주고 가셨다. 성경 모든 인물들이 부분적으로 보여준 것들을 걸음걸음 마다 보여주고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참, 감사하다. 그분한테는 죽음의 순간이 엄청나게 고통스러 웠겠지만 우리에게 엄청난 역할모델이 되어주셔서 말이다.
요즘 나는 나의 되지 않는 부분에 정말 괴로웠다. 고민하다가 남편과 대화중에 내 접근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구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해내고 있는 부분을 얼마나 경시하며 날 채찍질만 했던가. 때론 내 삶에 내가 가장 가혹한건 바로 나다. 난 되는 부분을 바라보며 되지 않는 부분을 소망하기로 했다.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기로 했다. 기도만 하며 아무노력 안하는 인간도 싫지만 기도도 안하고 자기열심만 가득 찬 인간이 되는 것도 길이 아닌 걸 알고 있기에 되지 않는 이 부분을 엎드려 기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날마다 무릎 꿇고 시간을 들여 기도했느냐의 문제보다 그 부분을 두고 내가 엎드려 진 태도 또한 기도인 거 같다. 그 후 놀랍게도 괴로운 부분은 상황으로도 마음의 무거움 면에서도 해결되어 가고 있어 감사하다.
> 삶
1. 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나에게 정서적 학대하지 않기. 기도하고 그 부분이 정말 하나님의 도움이 내게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태도를 갖추는 것
> 기도
하나님, 삼손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자신을 잡아가려는 사람들을 뻔히 보고도 자기 감정에 빠져 결국 위험에 빠질까. 눈을 빼버리는 끔찍한 고통까지 겪어야 한다니 답답하고 삶을 정말 멋대로 살아온 그에게 안타까움을 느껴요. 그렇지만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을 경험했던 게 감사하단 생각도 듭니다. 젊은 날의 제 시간들이 그저 반듯하기만 했다면 내가 얼마나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싶은데, 구부러지고 아팠던 시간들이 많아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건 감사한 일인 거 같아요. 삼손의 제멋대로와 하나님의 능력이 뒤엉켜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삶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삼손에게도 끝까지 함께 하심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얼마나 소망이 되는 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정말 죄인들을 찾으러 오셨구나 싶어요. 하나님, 저도 삼손처럼 뻔히 알면서도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리스가 겪고 있는 우울증으로 인한 이상행동을 온전히 수용하기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패턴에서 일어나는 피로감도 절 지치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절 더 이상 채찍질하지 않으려고요. 나의 되는 부분을 보며, 그리고 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변화된 부분을 보며 되지 않는 부분 또한 소망합니다. 하나님, 제 안되는 부분 아시죠? 알면서도 안돼요. 그만큼 나약합니다. 주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주님,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