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3.

사라져 버린 것의 등장

by 김혜진

꿈에 전남편이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안에서는 사실 그와 살았던 시간 대부분은 허무하리만치 기억나지 않는다.

그가 좋았건 싫었건 사랑했건 미워했건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웠을 지라도 그건 전체가 아니었다는 걸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냥 대부분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분명 그 안에는 소소했던 일상도 있었을텐데 내 인생의 몇 년을 부속품 같은 몇 개의 조각 기억을 제외하곤 통째로 잃어버린 기분이어서...

가끔은 그것이 상실감을 주지만 그 상실감이 다른 무수한 감정을 떠오르지 않게 해 날 괴롭지 않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좋았던 것이던 나빴던 것이던 나름의 색깔과 감정대로 난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과거의 상실은 사실 재혼에 날 더 적응하도록 도왔다 생각한다.

재혼초반은 지금보다 이전의 기억이 또렷한 것들이 몇 있었는데

그럴때면 오빠를 사랑하는 것관 별개로 대부분의 경험들은 익숙한것과 낯선것으로 구분 지어졌고, 오빤 낯선 것에 속해 있었다.

그 낯섦이 가끔은 소스라치게 어색해서 가끔씩(아니 자주) 난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즐거워하며 까르르 웃는 나의 아이들도 낯설어 어색해 했다.

내 몸과 기억, 정서는 익숙한 것에 길들어져 있어 좋은 것도 좋지 않은 것도 낯설어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어찌되었건 그 시간이 한해, 두해.

계절이 바뀌고 그 안에 별것없는 일상과 별것있는 날들이 엮어져 어느샌가 난 오빠와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익숙하게 되었다.

낯선것이 익숙해질수록 이전의 익숙한 것은 낯선것이 되더니 그마저도 자리를 내어주지 못하고 없어져 버린것이 되었다.

그래서 친구였을 때의 그는 어느정도 기억해도 남편이었던 그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무의식 어딘가는 그를 꿈으로 만난다.

오늘 꿈에도 그렇게 그가 나왔다. 대부분의 모습들은 나쁠것도 좋을것도 없는 평범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상한 지점은 우리 가족 안에 이방인으로 잠시 나타났다는 거다.

비록 꿈이지만 난 그의 위치를 이상해하며 거부감을 느낀다.

오늘도 꿈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그러나 결국 나와 그 사이 영원한 종지부를 찍게 한 존재인 '에반' 곁에 다가와 "얘가 걔구나." 하면서 머릴 쓰다듬어 줬다.

전남편은 아이를 전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 광경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꿈에서의 난 그 다정한 태도에도 온몸이 경직된다. "응. 그런데 그건 왜?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필요이상으로 난 싸늘하다.

굳이 그렇게 뾰족하게 굴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눈을 떠 생각했다.

난 가끔 그를 잊는게 서글퍼서. . 그러니까 사랑하지 않아도 한때는 남편이었고 함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이가 그저 사라져 버린다는게 서글퍼 때론 꿈으로 그를 부르는건 내가 아닐까?

그렇게 불러놓고 막상 꿈에서조차 그의 등장은 내 삶을 균열시키는 존재로 느끼는건 내가 좀 너무한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아이들로 인해 완전히 남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기에 그 끊을 수 없는 영역으로 진행되는 일들이

그를 나타나게 하고 나타난 동시에 균열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부정하며 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어쩌지 않아도 사라지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내가 어째도 사라지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전처럼 깨끗히 그를 도려내 버리고 싶어하지는 않기로.

난 과거로 돌아가 시간과 관계를 지울 수 없으니까, 지운다면 나의 아이들도 함께 지워져 버리니까.

20211230.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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