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고 낯설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요한복음 1:19-28

by 김혜진

220103.월 / 요1:19-28


> 요약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요한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다. 그들은 요한이 엘리야 혹은 선지자냐 질문하지만 요한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며 자시 이후에 오실 그분의 신발끈도 풀지 못하는 자라고 한다.


> 묵상

유대인들도 바리새인들도 요한의 정체성에 대해 물었다는 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는 행동을 하기 때문과 함께 요한의 당시 영향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향력이 없는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다면 유대인도 바리새인도 굳이 그가 세례를 베풀던 곳까지 와서 그에게 질문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한다. 요한 나름의 카리스마가 존재 했던 것 같고, 그들은 요한이 누구인지 묻는다. 요한의 정체성이 엘리야와 같은 구약의 선지자인지 앞으로 오실 이였던 그리스도인지가 궁금했던 것 같고 이런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그리스도가 올 것을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거 같다. 그것을 그냥 구약시대의 이야기로 전해 들어 막연하게 생각 했을지라도 질문을 했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역할을 할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게 아닐까?

그런데 이들은 결국 예수님이 죽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리에 속한다.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었고 어찌 보면 그의 오심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는데 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야의 이미지와 다르고 다른 길을 걸어가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거 같다. 그 걸어가는 길이 자신들이 생각하고 믿고 추구하던 길하고 상이하니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고, 자신들이 지키고자 쥐고 있었던 것들에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저마다 다르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새로운 것, 그것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라면 받아들이는게 쉽지 않은 건 모두가 비슷한 거 같다.

그런데 그게 낯설고 이상해도 하나님 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결국엔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낯설고 어색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익숙해지고 내 태도가 되게 하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싸워가는 여정이다. 이제까지처럼 잘못 가더라도 하나님이 날 인식시켜 주시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함께 와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가주실 것을 확신한다.


> 삶

1. 올해도 부지런히 큐티하고 좀 더 기도하고 그리고 공부하는 것. 특별히 2022년엔 내 동생가정을 위해 좀 더 기도하고 섬기는 것


> 기도

하나님,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언제나 기억하며 그 정체성에 맞게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만하지 않게 하시고 그렇다고 비굴하지 않게 하시며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마음이 내 안에 머물길 바랍니다. 나의 정체성을 바르게 하기 위해 내가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 날 점검하길 기도합니다. 낯설고 새로운 하나님을 알게 될 때마다 어색하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색하고 낯설지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며 수용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감히 우리 스스로 가두지 않길 기도합니다. 이제까지 절 이끌어 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절 이끌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 절 이끌어 주시고 언제나 다정히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프게 깨닫는 순간들조차 결국엔 하나님의 다정과 사랑임을 제가 확신할 수 있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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