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앞에서 가장 두려운 것

읽을 수 있는 것의 상실

by 김혜진


정재성과 켜켜이 날들을 쌓아가며 계절을 넘고 넘을수록 나는 살아있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해서 때론 죽음이 너무 두렵다.


기독교인인 나는 천국이 어떤 모습인지 아니면 어떠한 상태인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천국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오빠가 죽는다고 상상만해도 숨이 멎을거 같다.

오빠가 천국에 간다 하더라도 내가 그곳에 갈거라 하더라도 나는 이 땅에서 오빠가 오래오래 내곁에 있다가 머리가 하얘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서 나와 같은 날 손을잡고 죽어준다면 좋겠다고 소망하게 된다.

죽음의 모습이란걸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헛되게 자꾸만 소망하게 된다.


내가 굉장히 남편을 의지하거나 남편없이 무엇하나 못하는 존재가 아님에도

아니 그보단 오히려 오빨 만나고 '이런것까지' 해내는 날 매번 새롭게 만날 만큼 난 성장하고 자립했지만

오빤 존재만으로 내게 너무 크고 소중하다.


그래서 난 죽음으로 인한 오빠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소중한건 이토록 고통스럽기도 한 거라는게 굉장히 화가나고 슬프지만 그런걸 어떡하나. .


죽음이 주는 부재가 존재의 부재랑 결부되는건 아니지만 그것은 시청각적인 채널로는 그 존재를 더이상은 경험할 수 없다는걸 의미한다.

오빠의 모습, 오빠의 목소리, 오빠냄새를 경험하지 못하는 슬픔같은거 겪고싶지 않아.


작년부터 그런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서 혼자 몇번 울었다.


오늘도 아픈건 나고 그래서 한의원에가서 맥이 너무 약하다고 해서 정성들인 전신 스트레칭과 매일걷기를 지시받고 추가로 한약까지 지어온건 난데

난 왜 이 상황에서 오빠의 죽음이 두려운걸까


나의 아픔이 오빠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라고.. 우습다.


그러나 정작 나의 아픔 앞에서는 죽음은 그렇게 가까이 느껴지지도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저 난 아픔 앞에서 가장 크고 두려운 확실한게 하나 있는데 그건 놀랍게도 ‘더이상 공부를 할 수 없다면 어떡하지?’였다.

정확히는 활자를 통한 배움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배움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지만 책을 통하지 못한다는 건 내겐 꽤나 큰 상실인가 보다.

나의 아픔이나 죽음을 두고는 남겨질 이들이나 그들이 경험하고 느낄 것들보다

그저 내가 책을 볼 수 없다는 것, 단지 그것만이 크게 두렵다니 놀랍기도 하다.


나의 관점 중 일부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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