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20110. 월 / 요3:22-36
> 요약
예수님도 세례를 베푸시고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예수님 사역의 지경이 넓어지니 요한의 사역은 축소된다. 이에 대해 묻는 유대인에 대해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선명하게 설명하고 그런 자신의 역할에 기뻐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 묵상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요한의 사역의 양이 축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사역의 본질이나 질적인 면은 축소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축소에 관심이 있는 거 같다. 그렇지만 난 요한이 예수님이 등장하셔도 예수님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역할을 유지하는 부분에 관심이 간다. 각자의 자리와 역할이 있고 그 안에서 나의 정체성과 그분의 존재를 확실히 인식한 채 발걸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떤 한 신화의 일부를 붙잡고 진실되다 믿는 것처럼 보이고 과학적으로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걸 우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타인과 관계를 쌓을 때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을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하나님은 언제나 현재의 수준에 머무르는 과학에 가두고 싶지 않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믿고 내 가치관과 신념으로 여기며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겸손이라 생각한다.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존귀한 자이며 자유의지를 선하고 능동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주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분의 존재를 내 이성과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는 겸손함을 가진 수동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오늘 요한이 예수님이 등장하셔도 상대적으로 축소된 자신의 사역에 성실히 임하며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받아들이고 그분의 크심을 찬양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작건 크건 우리의 중심이신 그분을 기억하며 성실히 임하는 것. 나보다 크신 이가 있고 그 분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그래서 그분이 말씀하시고 살아내셨던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겸손이라 여겨진다.
부디 우리의 겸손이 오만이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내고 삶으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 되길 기도한다.
> 삶
1. 오늘 주어진 하루 성실히 살아낼 것 (월말결산과 예산 세우기), 리빙박스 정리
2. 히브리어 공부 시작
> 기도
하나님, 흥하고 쇠하고의 관점이 아니라 작은 일도 성실히 임하며 참여함에 기뻐하는 제가 되게 인도해 주세요. 건강한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며 공부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결국 나의 자리가 그리고 나의 중심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인식하게 해주셔서 그 또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우리의 겸손이 집단의 이기주의가 되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차별치 않고 모두의 친구가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아프고 괴로운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게 절 인도해 주세요.